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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훔치다’와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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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훔치다’와 ‘빼앗다’

얼마 전에 충남 아산에서 복면을 한 강도가 나타나서 MG마을금고(은행)를 털었다. 속보로 방송사에서 보도를 보냈는데, 유명한 언론사에서 방송한 내용이 한결같이 “은행에 강도가 침입하여 1억여 원 상당을 훔쳐갔다.”고 했다. 혹시나 하고 다른 방송을 틀어도 똑같이 ‘훔쳐갔다고’고 표현하고 있었다. 한국의 방송사 수준이 여기인가 싶어서 한숨이 나왔다. 둘 중 하나는 그래도 바르게 표현할 줄 알았는데, “<전략>이번 사건에서 A씨는 총 1억2천488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특수강도)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제>라는 곳에서는 “8일 오후 4시 20분께 충남 아산시의 한 금융지점에 복면을 쓴 강도가 나타나 현금 1억여 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복면을 쓴 강도는 흉기로 직원을 위협한 뒤 현금 1억여 원을 챙겼고, 직원의 차를 훔쳐 타고 도망갔다. 경찰은 현재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하여 정확한 어휘로 표현하였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자막으로 보는 것이라 띄어쓰기에 조금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어휘는 잘 맞는 편이다. 우리말에서 ‘훔치다’와 ‘빼앗다’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지금 앉아서 관련 동영상과 신문자료를 보고 있는데, 대부분의 언론이 훔쳤다고 표현하고 있다. 오호 애재라!

여기까지만 해도 현명한 우리 독자들은 금방 의미 파악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훔치다’는 “1.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몰래 가져가다. 2. 문질러서 닦아내다”는 뜻이다. 물론 뒤에 있는 것은 ‘씻어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몰래 가지고 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보고 있거나, 사람들을 묶어 놓거나, 가두어 놓고, 가지고 가는 것은 몰래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ㄱ)소매치기는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틈을 타 여자의 가방에서 지갑을 훔쳤다.

ㄴ)범인들은 창고 안으로 진입해 물건을 훔쳐 갔다.

ㄷ)태호는 긴장을 했는지 연방 식은땀을 훔쳐내었다.

위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앞에 있는 두 개의 예문 ㄱ),ㄴ)은 ‘도둑질’을 의미하는 것이고, ㄷ)은 ‘문질러서 닦아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훔치는 것은 하나 있다. 야구에서 도루를 했을 때 ‘훔쳤다’는 표현을 한다.

다음으로 ‘빼앗다’는 “1. 강제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다. 2. 억지로 차지하다. 3. 법률이나 시합 등의 합법적 수단으로 상실하게 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강도질은 남의 소유를 ‘억지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니 ‘빼앗다’를 써야 함은 당연하다. 예문을 보자.

이들은 다른 여학생에게도 원조 교제를 시켜 돈을 빼앗았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에서 억지로 스마트 폰을 빼앗았다.

토지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새로운 소작인을 만들었다.

와 같이 두루 쓸 수 있다. 핵심은 힘을 발휘하든지 권력을 동원하여 남의 것을 갈취(喝取 : 다른 사람을 을러메어서 억지로 빼앗음)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도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중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단어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지, 잘못 표현한 기사에 의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광고를 보면 “여자들도 남자처럼 서서 오줌 싸자!”라는 글이 있었다. 나이 먹은 어른이 오줌을 싸면 무슨 창피인가? ‘오줌을 누다’와 ‘오줌을 싸다’도 구별하지 못하는 시절이 되었는가 하여 몹시 슬프다. 하기야 우리 학생들도 모두 “똥 사고 왔어요.”라고 표현하니 누구를 원망할까? 잘못 가르친 필자가 죄인일 뿐이다. 수원수구(誰怨誰咎)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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