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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료대란, 간호법이 '거부'되지 않았더라면…

[국회 다니는 변호사] 간호법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뜨거운 감자이기도 한 간호사법에 대해서 다루어보겠습니다.

연일 '전공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리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 때문이죠. 잘 아시겠지만,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년인구가 늘어남에 따른 의료인력 증대가 필수적인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35년까지 약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부터 충원하지 않으면 그 때 가선 사실상 '의료 아노미'상태에 빠지게 되겠죠. 그런데 의사들, 특히 미래의 기성 의료인력이라 볼 수 있는 전공의부터 파업에 나섰습니다.

전공의들이 파업하니, 정부는 복귀명령을 내리고,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엄포에 나섰지만, 이들은 현재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공의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하니, 이제 전임의(펠로우), 심지어 교수들까지 진료거부에 나서겠다고 하는 형국입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입니다.

한국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그 문제의 원인은 결국 '돈'입니다. 한국의 공공의료체계는 저수가, 저비용, 저인력, 3저에 근간한 의료체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의 의료접근성은 매우 좋습니다. OECD선진국중 1위에 속하지요.(14.7회, 보건복지부 2022년 발표) 일단 우리나라는 아프면 병원부터 갑니다. 널린게 동네 의원이니까요. 상대적으로 의사를 접견하는 비용이 싼 것이죠. 진료시간은 당연히 길 수가 없지요. 길어야 3분입니다. 기대수명이 83.5세(OECD평균 80.5세)인 것 역시 의료접근성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봐야겠죠.

문제는 비용이 싼 대신, 그만큼 의사들이 보아야 하는 환자 수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의료기관을 유지하는 데 드는 경상비+자기 인건비는 뽑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의사들은 수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선별적으로 받거나 거부할 수 없죠.(강제지정제) 이 진료수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정한 의료행위 수가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의원급 의료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무수히 많은 검사항목 등을 더해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비정상적인 의료행태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환자들 입장에서는 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사보험인 ’실손보험‘을 통해 비급여 비용을 커버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죠. 이 비용자체가 늘다보니,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비용을 통제하고, 비급여항목을 급여항목으로 전환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펼치기도 했죠.

여러 연구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의료행위의 원가를 보전받지 못한다는 것은 공·사 의료기관에서 모두 동의하는 바입니다. 의료원가의 70%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거죠. 결국, 이러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비싼 의료인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저가의 의료인력을 사용할 유인이 큽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병원입장에서는 의료행위의 수가를 높여야 하는데 예산상 제약은 있으니, 당연히 전임의 이상의 고위 전문인력보다는 저년차 의사인 전공의를 사용하고, PA(Physical Assistant)인력이라 하는 소위 의료보조인력인 간호사에게 의료행위를 주문하는 거죠.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현행 의료법상 '불법'임을 알고 있지만, 이를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만큼의 의료비용을 보전해줄 수 없으니까요.

원래 국민건강보험법이나 국민건강증진법상 건강보험료의 수입의 20%는 정부가 보전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으나, 정부가 이를 지킨 적은 없습니다. 대략 14%정도 범위에서 보전을 해주고 있을 뿐이죠. 이렇다 보니, 구멍이 난 비용을 의료기관들이 '알아서 때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모든 의료행위의 종사자들이 '공공의료'의 명분하에 어떻게든 힘들게 버텨나가고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왜 의사들이 다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몰려가겠습니까. 공공의료 자체가 힘들게 유지되고 있으니, 비급여이고 고비용인 '피부리프팅, 라식라섹, 성형수술'로 몰려가는 거죠. 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도 점점 쉽지 않다고 합니다. '강남언니'등 같은 앱에서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의료의 현재 재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니, 저연차 전공의들, 의료보조 인력들에게 강요되는 노동강도나 시간은 살인적입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22년의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 평균 주당 근무시간이 90시간입니다. 2016년에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을 국회에서 처리했을 때, 전공의들에게 약속한 수련시간은 80시간(법 제7조)이지만, 실제 이 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들은 어떨까요?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자 48만 명 중 임상간호사수는 50.9%밖에 안 됩니다. 사직율 또한 매우 높습니다. 15%가량 되고, 신규 간호사, 특히 1년차 간호사의 사직률은 거의 50% 수준에 육박합니다. 새롭게 들어오자 마자 다른 직종으로 나가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일 자체도 고되고, 일-가정 양립도 안 되고, 또 급여수준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공의 파업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은 대부분 간호보조인력인 간호사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 2021년부터 간호사들의 업무범위, 근로시간,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죠.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들은 대체적으로 반대의견입니다.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죠. 또한 직역상 갈등관계에 있는 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등까지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간호사의 하위직렬을 고착화하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결국 이 법은 지난해 4월에 야당이 단독의결처리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폐기시켰죠. 심각한 직역 간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OECD 주요 선진국에서 대부분 간호법이 없는 나라가 없고, 비정상적인 공공의료 운영체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간호사들 중 2023년 상반기에만 2000여명 가까이 미국 간호사시험을 응시한 이유가 뭘까요. 자신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데, 더 이상 나라의 공공의료를 지킬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전공의 파업 사태로, 나라가 사분오열 지경입니다.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2000명을 늘리는 것은 좋은데, 방법론이 문제입니다. 비수도권 지역인재 전형을 60%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재도 지방으로 의사가 내려가지 않으려는 것이 현실이고, 나아가 지방 자체가 소멸해 가는 상황 아닙니까? 인력을 충원하는 것 못지않게, 의료-지역생태계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대책을 내놓고 움직이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 전에, 간호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무작정 행사하기보다는, 여러 차례 타운홀 미팅 같은 방식을 통해 의사-간호사-기타 직역 간의 합의점을 찾고, 수가조정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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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박지웅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 율촌의 변호사로 재직중입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국회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며 국회 입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연구하며 오랫동안 여러 입법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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