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자폭탄·협박·폭력 난무하는 美정치, "나라 위한 애국 폭력"?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자폭탄·협박·폭력 난무하는 美정치, "나라 위한 애국 폭력"?

[장성관의 202Z] 폭력으로 얼룩진 하원의장 선출 과정

지난 10월 25일, 미 연방 하원은 21일 만에 새 의장을 선출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 이어진 회기 중 의장석 공백 기간이었다. 하원 공화당에서 지명한 의장 후보가 본회의 재적의원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명의 후보가 사퇴한 뒤에야 지금의 마이크 존슨 의원이 끝내 하원의장으로 당선되었다.

지난한 선출 과정을 통해 공화당 내 세 싸움의 민낯이 드러났다. 특히, 짐 조던 의원의 의장직 도전에서 보수 진영뿐 아니라 미국 정치의 현재 지형이 확인되었다.

공화당 내 대표 공격수인 그는 하원 내 강경 정파인 프리덤 코커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초대 의장이며, 현재는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내 우파의 지지는 견고했으나, 하원 공화당 의원 212명 중 단 124명으로부터 찬성을 받아 본회의 표결 통과는 쉽지 않아 보였다. 온건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자 조던은 지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션 해니티는 방송에서 여러 차례 조던 의원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표명했고, "제정신인 하원의원이라면 짐 조던의 의장 출마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또한 그의 이름을 건 평일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취재 명목으로, 조던의 의장 선출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의원들에게 코멘트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질문지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의 전쟁, 완전히 개방된 국경과, 또한 아직 완결되지 않은 예산을 마주하는 지금 왜 조던을 반대합니까?"라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조던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반대 입장의 의원들의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했으며, 인터넷에서는 이들의 개인 집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공유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 의원 20여 명은 욕설이 담긴 전화 메시지와 문자폭탄에 시달렸고, 켄 벅 의원은 조던에게 반대 표결을 한 이후 지역구 사무실의 건물주로부터 임대 계약 해지를 갑작스레 통보받은 사실이 전해졌다.

특히 퍼거슨 의원은 가족을 향해 수차례 살인 협박을 받아 자택과 딸의 학교에 보안관 순찰을 요청해야 했으며, 살인 협박과 폭력을 암시하는 전화를 십수 차례 받은 밀러-믹스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다른 의견을 묵살하거나 물리적인 피해로 타인을 협박하는 자는 표현의 자유를 약화시킨다"며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보다 중도적인 노선에서 조던의 의장 선출에 대한 반대의견을 주도한 베이컨 의원은 본인은 이제 이런 협박에 익숙하다며 의연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역구에 있는 배우자는 침대 옆에 장전한 총을 두고 잠에 든다고 전했다.

조던 의원은 세 차례의 표결 끝내 의장으로 선출되지 못했고, 의원총회 중 무기명 투표를 통해 후보직에서 해임되었다. 다수의 공화당 의원과 보좌관들은 그가 반대파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 오히려 반대 세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한다. 하원 의장 선출 결과와 별개로,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에 더 깊고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하원의장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짐 조던 의원(왼쪽)과 새로 선출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AP화면 갈무리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폭력 선택한다"는 말에 23%나 동의

"나라가 너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서 진정한 애국자들은 폭력을 택해야 할 수 있다"라는 말에, 응답자의 23%가 동의한다고 나타났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제목으로 2023년 10월 말 공공종교연구소(PRRI)와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같은 질문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률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경신했다.

이러한 추이는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23년 초부터 2024년 대통령선거까지 분기별로 민주주의와 정치적 폭력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 (Robert Pape)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미국 인구의 17%가량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화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선거에서 애리조나와 조지아 등 경합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투표 참여율이 보이자,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위압을 행사하기 위해 극우 성향의 단체에서 장총으로 무장한 채 투표소 주변을 수시간 배회하기도 했다. ("오픈 캐리" 정책이 시행되는 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인 총기 휴대는 불법행위가 아니다.) 같은 해에 바이든 당시 후보 측 캠페인 버스를 수주간 따라다니며 필요 이상으로 경적을 울리거나, 의도적인 급정거, 그리고 난폭운전으로 도로 이탈을 유도한 소위 "트럼프 트레인" 그룹은 소송에 피소되어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미시건 주지사 납치 사건, 1.6 의회 폭동 전날 폭탄 발견되기도

이 시기 비슷한 사건은 빈번히 일어났다. 2020년, 코로나 정책에 반발하는 무장단체 멤버를 포함한 13명이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 주지사 납치 및 정부 전복 모의 중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듬해 1월 6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낙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연방 의사당에 난입하기도 했다. 이후 그 사건 조사특별위원회에 참여한 공화당 하원의원 두 명은 낙선운동과 살인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출간된 밋 롬니 상원의원의 전기 <롬니: 성찰>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소추와 심판에 찬성을 원했던 다수의 상·하원의원들이 가족들의 안전 위협이 두려워 차마 소신을 지키지 못한 사례가 수없이 많다고 전해진다. 트럼프를 기소한 검사들과 관련 사건을 맡은 판사 및 관련 직원들 또한 비슷한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이런 폭력은 공화당 지지자들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7년,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한 괴한은 야구 연습 중인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바 있고,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동 전날 밤에는 양당의 중앙당사 부근에서 타이머가 장착된 파이프 폭탄이 하나씩 발견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자폭탄은 파이프 폭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

미국 건국의 시조들은 헌법의 구조를 설계할 때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공화주의를 선택했다. 특히, 제임스 매디슨은 감정적인 파벌들이 성급한 다수가 되어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소위 중우정치(mobrule)를 예방하고자 연방 정부 시스템에 일종의 감속장치를 여러 단계로 심어두었다. 작은 규모의 사회에서는 소통이 손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숙하고 이성적인 의견이 형성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그가 우려했던 상황은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잘못된 정보의 확산, 그리고 문자메시지를 통한 가해 위협이 난무한 오늘날 우리 사회로 실현되었다.

페이프 교수는 이런 행태가 직접 민주주의의 면모가 아니라 오히려 반민주적이라고 지적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정부, 그리고 정치적인 대립 해결 과정에서의 폭력 사용 자제라는 두 개의 민주주의 제도 구성 요건에 점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동기로 물리력 사용을 점차 용인하는 사회적 인식은 1920년대 독일 그리고 1990년대 러시아에서 관찰된 현상과 비슷하다. 이는 곧 권위주의 체제로 이어졌다.

3V 공식...밸류, 빌런, 비전

최근 이런 변화가 일어난 배경은 다양하지만, 정치인들의 메시지 전달과 프레임 방식이 큰 몫을 한다.

정치권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메세지 전달방식을 "3V 공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먼저 본인의 가치(value)를 천명하고, 그 가치를 위협하는 악당(villain)을 지목한 뒤, 거기에 맞설 비전(vision)을 설파하는 구조를 공식처럼 따르고 있다. 후원금과 표심을 모으는데 유용한 방식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불만에 기반한 정치로 이어졌다. 희망과 해결책 대신 분노와 불만 표출에 그치며, 본인과 반대입장에 위치한 사람들의 실책을 통해 얻는 반사이익에 기대는 접근방식이 당연시되고있다.

나아가 지지자와 정치인의 이익은 동일시되고, 자신의 지지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경제적 타격 등 유권자는 직접적인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많은 정치 신인들이 차용하듯, 현행 제도를 비판하는 메시지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는 선출직 정치인들은 부패하고 중앙정치의 기득권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한다며, "아웃사이더"인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대통령 출마 이유로 설명했다. 이는 칼 슈미트의 <의회민주주의 위기>에서 묘사되는 나치당의 의회 장악 배경과 유사하다. 정치혐오와 제도의 불신이 깊어질 때, 대중은 폭력적일지언정 권위주의적인 후보를 차악으로 여기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언어는 곧 폭력 행사에 대해 대가가 미미하다는 인식을 심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정당화되고 영웅시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의 결과로 체포된 사람들을 두고 테일러-그린 의원 등 일부 트럼프 지지 세력이 무고한 순교자로 묘사하거나, 2020년 8월 경찰의 흑인 운전자 과잉 진압에 대한 시위 현장에서 집회 참가자 두 명을 총격 살해한 10대 청년을 극우성향의 매체와 정치행사에서 수차례 내세우는 등의 행태는 잘못된 분위기를 이어간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2023년 9월 발간한 연구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적인 인센티브를 비판한다. 유권자로 하여금 지지하는 정치인 또는 정당이 본인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유도하고, 상대 후보나 정당이 당선될 경우 스스로의 권익이 침해된다는 인식을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전반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통해 심화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정파적 양극화는 정치 고관여층에서만 심하게 나타나는 데에 비해, 이들의 레토릭으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감정적인 양극화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대중은 정치적 찬반 여부를 공약과 정책의 내용 분석을 통해 정한다기보다, 후보의 소속 정당에 대한 반감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야유하지 마세요. 투표하세요"

제도에 대한 불신, 정치에 대한 혐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조장해서 정치적 이득을 실현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손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위해서말이다. 이런 변화는 분명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결코 소수의 명망가에 의해 주도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에서는 구원자도, 선한 독재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정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되, 그 협의 과정에서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고 목소리가 존중받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 모색과 함께, 당장 정치인들이 폭력에 대해 더 빠르고 강력하게 규탄해야 한다.

2017년 공화당 의원들이 야구 연습 중 총격 피습을 당한 뒤, 괴한이 버니 샌더스 지지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샌더스 의원은 곧바로 입장을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종류의 폭력도 용납할 수 없다"며 "극악무도"한 행위라고 표현했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2022년 여름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보장 판결 폐기 발표 뒤, 입장을 발표하며 모든 시위는 평화적으로 치러져야 하고, "폭력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라며 "협박과 위압은 표현이 아니다. 근거에 무관하게 그 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무력 충돌과 정치적 폭력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조던 의원은 본인의 하원의장 선출에 반대하는 의원을 대상으로 자행된 협박에 대해 수일간 연관성을 부인하는 수준의 입장만을 내비치며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공익과 제도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전략은 책임 있는 정치라고 할 수 없다. 불만과 반대 의견을 밝히더라도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16년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언급된 트럼프에 대해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을 향해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야유하지 마세요. 투표하세요."

우리 모두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시민으로서, 납세자로서, 유권자로서, 그리고 정치 참여자로서 함께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