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8세기 서양에서 시작된 근대 과학과 산업사회에서 시작된 문명의 전환을 알리는 비상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그것들은 AI(생성형인공지능), 팬데믹의 경험, 그리고 기후위기이다. 그중 가장 심각하게 인류를 위협하는 조짐은 기후위기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 온난화 위기를 계속 경고했지만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즉각" 행동하지 않으면, 2100년까지 "기후 지옥"의 문턱(임계점 1.5도 상승)을 넘게 되며, 결국 인류 멸종의 문턱(6도 상승)도 넘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틴데일 기후변화센터의 케빈 앤더슨은 2100년까지 섭씨 4도가 상승하면 5억 명 정도만 살아남는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붕괴, 기후재앙(폭염과 홍수 및 대형 산불), 불평등, 빈곤, 에너지 소비, 공기와 물의 오염, 숲의 파괴,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난화, 산성비, 유독 폐기물, 지구 생명은 한마디로 말해 몸살을 앓는다,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22)
로마클럽은 1972년에 <성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인류는 바야흐로 성장에서 세계적인 균형(지속 가능성)에로, 제어된 질서 있는 이행을 당장 개시해야 한다는 예언의 목소리였다. 1960년대부터 레이첼 카슨 같은 환경 운동가는 환경 파괴로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나비가 날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 것이라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환경 오염, 지구 재앙과 생태계 파괴는 결국 서양의 근대적 문명의 결과물이다. 하여 우리는 문명의 전환을 요구한다. 생태 위기를 초래한 300년 지속된 서양 문명의 속성은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에 원인이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칭해지는 르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을 주장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 문화와 자연의 이원론으로 확장했다. 근대 문명의 속성은 문화는 자연을 배제하고 자연은 문화를 배제한다. 이어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의 속성을 타자와의 교류와 사귐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와 통제로 보았다. 뉴턴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세상 지식의 체계를 정립했다. 산업 혁명과 시장 중심적 자본주의는 경제 성장을 유일한 목표로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자연 자원을 무한 채굴하고 착취했다. 자연의 개발과 경제의 성장을 현존 사회의 목표로 설정하는 한 자연의 황폐화, 지구 온난화, 생태계의 파괴는 피할 수 없고 급기야 인류의 멸종에 이른다는 경고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대외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동시발생적인 기후재난과 공급망 마비로 인해 경제가 파탄나거나 식량폭동이 일어나면, 질서유지를 위해 강력한 공권력을 요구하여 파시즘체제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환경'이 국부적이고 지엽적이며 여전히 인간중심적이라면 '생태'는 전체적이고 지구적이며 '생명'은 생태에 더하여 우주적이고 영성적이다. 따라서 환경 보호운동은 생태 인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유물론적 생태 인식은 우주적 생명 사상으로 입체적으로 통이 커져야 한다. 서양어 생명(lfe, Leben)이 주로 생명현상의 기술에 해당한다면, 동양의 생명 이해는 생(生)이 처음부터 담지한 명(命), 즉 자기 안에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가동하고 생동하는 생명력, 생명의 근원, 펑펑 솟구치는 생명의 신선한 물결로서의 생명(生命), 즉 생명감각이다. 그래서 '생명'은 동서양 사상의 만남, 유·불·선과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협력의 초점이다.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하여 기독교는 자신의 가르침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관계에서 초월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지구와 인간이 밟는 땅 위에서의 하느님의 살림살이를 통전적으로 생각한다. 통전적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의 구속사가 아니라 경제학과 생태학이 포함된 창조사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비인간, 환경에 대한 관계를 진지하게 숙고한다. 역사와 자연의 이원론에서 지구와 우주의 이야기로 확대한다.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에서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며,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뿐 아니라 흙의 형상을 닮은 존재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1972년 <성장의 한계> 이후 50주년 기념으로 2022년에 <모두를 위한 지구>가 출간 되었다. 지구는 인간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 그리고 돌과 바위가 함게 사는 '공동의 집'이다. 이 책은 다섯 가지 특별한 전환을 역설한다. 빈곤 종식, 한 불평등 해결(불평등 전환), 여성에 대한 권한 부여(권한 부여 전환), 인간과 생태계를 위한 건강한 식량 시스템 조성(식량 전환), 그리고 청정 에너지 전환(에너지 전환)이다. 한 마디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에서 어스4올 경제로의 전환, 즉 500년간 체제의 종식과 전환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태적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론인 칭의론(의화론)은 정의론인데 경제정의와 생태정의를 진지하게 포함하여야 한다. 환경의 지속 가능성과 경제 성장이 같이 갈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식하여 녹색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인류는 300년 동안 주입된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연과 땅은 통합 생태학을 통해 보전하고, 경제는 호혜경제, 지역순환경제로 가야 한다. 에너지는 탄소중립, 탄소제로, 탈탄소로 가면서 화석연료 종식의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우리도 단거리 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Flugscham, Flight shame, flygskam)을 공감해야 한다. 이제 국민총생산(GDP)의 허구성을 알아차리고, 국민총행복(GDH)를 도입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의 비중과 업무를 줄여나가 국민 행복부를 신설해야 한다.
"세상이라는 동산을 일구고 돌보라"(창세기 2:15)는 성경의 말씀이 인간의 소명이며 성사(聖事)의 특성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물질의 움직임과 식물의 사유를 인지하며 자연에 대한 성스러운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 인류에게 원초적으로 주어진 "센스 오브 원더"(레이첼 카슨)를 회복하여 물질의 성스러움 뿐 아니라 기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성스러움도 회복하여야 한다. 이것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하는 삼경사상에 담겨 있는 위대한 뜻이기도 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하늘을 공경하고(敬天), 동료 인간을 공경하고(敬人) 그리고 자연과 사물까지 같은 성심으로 공경(敬物) 해야 한다.
인간은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생존으로 '무궁인간'이다. 새로운 인간은 온갖 생명을 공경하고 모심으로써 성화를 추구한다. 여기에는 자연물의 대해탈, 물질의 영화(靈化), 온갖 생명의 성화와 기술과 기계의 성화까지 포함된다. 우리는 첨단 기술에도 영성이 있으며 시장의 성화뿐 아니라 문화의 역동적 힘인 에로스 안에는 새로운 신령이 움직이며 거룩한 육체, 성스러운 에로스 문화의 발현으로 문화, 예술의 창작력을 모아야 한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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