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이 내년 4월 10일에 치러진다. 올해 12월 12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하여 선거 레이스에 돌입한다. 한편 지난 10월 11일에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내년도 총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예비 총선격으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약 17%의 큰 차이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내년 총선의 결과를 이 보궐 선거 결과로 단언하기 어렵지만, 보수 여당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쇄신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번 보궐 선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여러 개 있었다. 우습게도, 보궐 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재등판 했다는 점이며, 동시에 강서구의 현실적 아픔과는 동떨어진 공약들을 가지고 나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강서구는 타지역에 비해서 전세사기 피해가 크게 나타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여당 후보의 공약은 명문학군의 조성, 신도시 개발 및 신산업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나마 복지 쪽은 중앙정부에서 실시하는 수준의 내용들을 되풀이하는 정도이다. 사실 보궐 선거라는 성격으로 보면 절치부심하여 구민의 욕구를 파악하고 진일보한 공약을 내세워도 승리를 예견하기 어려울텐데, 보수 정당이 늘상 추구해오던 개발과 발전 프레임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구민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총선이건 대선이건 보수 정당에서 매번 활용하는 몇 가지 프레임이 있다. 우선 최근 연이어 경고등이 켜진 가계부채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 '빌리는 사람'에 초점을 두어 결국 복지 축소와 같은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강조하며 최소한의 국가 역할을 주장해 온 대통령의 모호한 인식은 가계부채 폭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부동산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가계 대출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인 것이다. 이러한 주택담보대출은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 기조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에 화답하듯 시장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상품을 내놓았고, 내 집 마련이나 하루아침에 자산 상승의 신화에 노출돼온 서민들의 불안 심리는 정교하게 설계된 시장의 전략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나아지게 만든다는 논리는 세계화된 현시대에서 너무나 무책임한 주장이다. 당장 금리의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자유시장인가. 수출이 아니고서는 경제가 돌아가기 어려운 한국의 상황에서 자유시장은 홀로 의연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결국 경기안정을 위해 부동산 부양 카드를 선택한 것도 어찌 보면 자유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라는 모순 속에서 지난 보궐 선거를 패배한 보수 정당의 프레임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 독하게 돌아올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도, 가계대출의 부담을 안고 있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도 보수 정권의 프레임은 그다지 실익을 주지 않으나 매번 선거만 되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가난한 계층이 존재한다. 정치나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뒤로 하더라도 보수 정당이 내세우는 프레임의 근원과 그것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탐구한 레이코프·웨흘링(2018)의 저서를 빌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시장의 규칙은 인공적이다. 사례로 주식 시장이나 무역 시장과 같은 것인데, 그러한 시장 모두 나름의 명문화 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규정은 900쪽이 넘을 정도이다. 이러한 규칙은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게 몰래 만든 것이 아니다. 권한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유지보수 된다. 문제는 자유 시장이라는 용어 속에서 보수 정당의 가치가 극대화 되어, 자유 시장의 신화에 도전하는 주장은 오히려 '자유'라는 위대한 가치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불건전한 태도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보수는 자유 시장을 흔드는 적으로써 여러 개의 프레임을 만들어 두었다. 북한, 사회주의, 노동조합, 복지수급 같은 용어들이 그러한 프레임 하에서 자유를 위협하는 불온적 용어로 국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난민이나 이주민과 같은 용어도 그렇다. 심각한 저출생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감소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면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불안감을 조성하는 프레임은 보수주의가 가지는 기득권 유지의 좋은 도구이다. 중간 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은 자유 경제 체제를 수호한다고 자진하는 보수 정당의 이러한 논리에 설득 당하곤 한다.
또 한 가지는 한국 사회의 엄격한 아버지 모형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형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합법적 권위자이자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정을 지켜내는 보호자로 여겨진다. 합법적 권위자는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서 도덕적 강인함을 강조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존재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상과 벌을 줄 수 있으며 이러한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을 토대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교사의 역할을 겸한다. 도덕적 강인함과 자기 절제를 갖춘 사람이 된다면 사회경제적인 성공이 가능하다는 공식을 주입한다. 이러한 개념적 모형에서는 선후가 바뀌는 경우가 허다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절제력이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엄격한 아버지 모형 프레임은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약자와 빈곤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하는 복지 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형성한다. 자유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현대 금융화 된 시장 시스템에서 부채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중적 처벌을 부과한다. 빚에 대한 공급과 분위기 조장은 정부가 하고 있으면서, 엄격한 아버지의 탈을 쓰고 존경과 권위를 독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곤한 가정, 가장, 기업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도태되고 게으른 존재로 전락한다.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실패자의 낙인을 부여 받고, 자신들 스스로도 그러한 프레임에 자기를 몰아붙인다. 정부의 구제책은 '사람'이 아닌 '금융'에 집중되고 그것이 나라 '살림'을 '정상화' 하는 길이라고 선동한다. 국가는 이러한 엄격한 아버지가 다스리는 확장된 표상으로 기능하여 국민들의 가부장적 정서를 이용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보호자로써 정당성을 부여하는 악순환이다.
돌아오는 총선이 정권 심판이라는 감상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점철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욱 냉정해져야 할 것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재생산 하는 불안 프레임에 대한 대응이다. 이미 현실에서 무너져 내린 공산주의, 사회주의 빨갱이 노선, 한국 사회의 경제를 비롯해 사회문화를 전복시켜 버릴 것만 같은 이주민, 방탕한 기질 속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채자들, 경쟁에 도태되어 실패한 사회경제적 낙오자들, 그리고 이들 모두를 포퓰리즘으로 감싸는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은,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마비시키는 불안심리를 조장하여 표를 얻고자 하는 계책일 뿐이다. 결국 돌아와 남은 것은 주체성도, 인간성도 남지 않은 시장뿐이다. 그마저도 사람의 삶을 구속하고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대안 없는 허황된 소음만 공중으로 흩뿌리고 있는 정부이다. 부디 국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어디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시장에 나라를 넘겨주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