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주에 다룰 내용은 주세법입니다.
주세법과는 개인적으로 깊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2012년 어떤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있었을 때,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다니엘 튜더라는 기자가 '한국의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맥주 소비층은 다양해지는데, 그러한 소비층의 구미에 맞는 국산맥주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C사, H사, O사 등 3개사 맥주가 시장점유율을 9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소비자들이 다양한 맥주를 경험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입산 맥주들은 소위 '여피(Yuppie)'들의 전유물이고, 일반 소비자들은 어쩌다 기분낼 때 수입산 맥주를 맛보는 정도였던 것이죠.
대한민국의 맥주 맛이 없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시설규제. 당시에는 맥주시설 규제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1000톤(kt)이상의 시설 규모를 요구하다보니(쉽게 생각해 용달트럭이 통상 2.5톤이니 그 트럭 400개를 붙여놓은 만큼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 같습니다), 규모를 갖추지 않은 사업자가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죠.
다른 하나는 주세율이 문제였습니다. 맥주는 출고가격에 72%의 주세외 각종 세금을(주세액의 30%를 별도의 교육세로, 출고가격+주세액(72%)+교육세액(21.6%))을 합한 금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를 부과하니, 실제 출고가격보다 2배 가까운 세금을 내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출고가격이 낮은 대량생산 맥주는 단위당 세금이 싼 반면, 출고가격이 높은 소량생산 맥주는 세금이 비싸지는 셈이죠. 경쟁력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런 불합리한 세금을 바로잡자고 의원에게 건의를 드렸지요. 적어도 중소회사 맥주는 주세의 절반을 깎아주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이 안을 받았습니다. 조금 변형된 형태로 과세표준(=출고가격)을 빼서 세금을 낮추는 방법을 찾았던 거죠.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출고가격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기 보다는(이를 '종가세'라 합니다) 일정 수량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에게 적용하기 좋은 거죠. 동일한 기반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물론, 이보다 중소기업에게는 세금을 더 깎아줘야 겠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고, 이 안이 점점 발전하게 됩니다.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 과세표준(과세수량)을 낮추게 되었고, 2021년에 가서는 결국 종량세도 실시하게 됩니다. 맥주에 대해서는 1톤(㎘)당 83만4400원(21년 기준), 탁주에 대해서는 1톤(㎘)당 4만1900원(21년 기준)의 종량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뀐 겁니다. 큰 변화였죠.
소규모 맥주 업계의 노력,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결단, 소비자의 취향의 변화 3박자가 맞아 떨어진 덕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최근에는 어렵지 않게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국내 중소맥주(크래프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류산업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점차 신규 소비층인 청년층이 맥주나 희석식소주를 잘 소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새 직장에서도 예전같은 회식문화들이 많이 사라졌잖습니까? 게다가 코로나19의 영향도 컸죠. 맥주 출고량이 2017년 기준으로 182만3899톤, 약 4조983억 원 정도였던 시장규모가 2021년에는 153만896톤, 약 3조6,260억원까지 감소했습니다. 거의 15%정도 가량 시장이 줄었다고 볼 수 있죠.
희석식 소주는 94만5860톤, 3조6784억 원이었던 것이 82만5848톤, 3조5450억 원으로 소폭 줄었습니다. (2022년 aT, 주류시장트렌드보고서)
반면, 위스키와 같은 주류의 수입량은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약 2만290톤, 1억5257만 달러였던 것이 2022년기준으로는 약 2만66303톤, 2억7038만 달러까지 늘어났죠.(한국주류수입협회) 청년층의 위스키, 하이볼 열풍이 숫자로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재미난 것은 국산 주류 수출 중에서 리큐르(증류주+당분/감미료가미)의 수출 비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출액 기준 2020년 4998만 달러였던 것이 2022년 8921만 달러까지 늘어나게 되었죠.(아래 그림)
정리하면, 소비자의 트렌드가 맥주나 희석식소주를 소비하기는 하지만, 그 취향을 위스키나 각종 증류주, 리큐르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청년층의 취향이 주류 저소비, 다양한 주종의 취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류산업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국산에서 생산된 점을 강조하는 소규모 위스키 양조장들이 10여 군데 들어서고 있습니다. 모 유명 소규모 양조장의 위스키는 한 병당 가격이 거의 30만 원에 육박하고, '입도선매'하지 않으면 구매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업계와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를 정책에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입법이 필요할까요? 맥주나 희석식 소주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소비자 취향을 반영하는 증류주 양조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그 양조장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주류정책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증류주류에 대해서는 현재 주세를 어떻게 부과하고 있을까요? 앞서 본 종가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72%의 단일 주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저가의 증류주에 대해서는 비교적 낮은 세금이, 고가의 증류주에 대해서는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규모양조장에게 불리한 구조가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대규모양조장에 유리한 세금 구조 내지는 출고가격이 낮은 주류생산자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겁니다.
고유한 곡물·과실 등의 향이 잘 보존돼 청년층이 선호하고, 수출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국산 증류주류 등이 성장할 공간을 열어주려면, 그 첫 단추는 맥주나 탁주에 대해서처럼 증류주류에 대해서도 종량세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2020년에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 정부가 증류주류에 대해서도 종량세의 도입을 시도해보려고는 했습니다만,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증류주류 간에도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증류주류의 종량세는 도수에 비례해서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OECD국가에서는 저도주 저율과세, 고도주 고율과세를 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입니다. 국민건강이나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반 증류주류 종량세를 도입할 경우, 세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석식 소주의 병당 주세가격이 소폭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 다양한 증류주류(증류식 소주, 위스키, 리큐르)는 상당한 혜택을 보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국산 주류 환경이 발전하려면,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증류주류에 대해서 종량세로 전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번에 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정부에 앞서 증류주류의 종량세 전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 안입니다. 아울러 중소기업 증류주에 대해서도 50%까지 감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법안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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