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목민심서>는 1992년 출간 이래로 650만 권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2000년 소설을 원작으로 KBS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정약용 선생(1762-1836)은 시대를 앞서간 개혁사상가였습니다. 현시점에서 보면 과학자이자 발명가이면서 기업가 정신도 있고, 시도 많이 쓰셨고, 당대 시대의 문제를 꿰뚫은 사회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소설 목민심서>가 이렇게 독자들에게 많이 읽힌 까닭은 정약용 선생 삶 자체의 훌륭함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황인경 작가가 꼽은 <소설 목민심서>의 성공 이유다. 이 소설은 10여 년 동안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도서관을 같이 다니면서 사료를 찾고, 새벽부터 아이들 도시락을 싸놓고 배낭 하나 메고 전남 강진, 해남 등 정약용 선생의 흔적을 찾아 발품을 팔고 다니면서 자료를 모아 쓴 책이다. 그의 책은 풍부한 자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 영조, 정조 시대 사회상을 잘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책상 옆에 제 책상을 놓고 모아온 자료를 정리하고 원고를 썼어요. 아이들이 제 원고를 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이야기해주는 등 제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됐었죠. 당시 무명의 젊은 여성 작가가 지방에 가서 정약용 선생 책을 쓰려고 취재를 하러 왔다고 하면 다른 유명한 작가들도 정약용 책을 쓰려고 다녀갔다며 약간 무시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 말을 듣고 더 열심히 취재해서, 잘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정약용, 고선지, 안용복...시대를 앞서간 위인들에 매료되다
<소설 목민심서> 이후에도 황 작가는 <영웅 고선지>, <소설 독도> 등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에 대한 일대기에 집중했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수인 고선지 장군(?-755)은 정말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서양 전투라 불리는 사라센의 아랍 연합군과 벌인 탈라스 전투에서 패할 때까지 무려 72개의 서역 국가들을 정벌해서 실크로드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중국 등 다 찾아다녀도 이분에 대한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서 당 현종, 안록산, 양귀비, 혜초 스님 등 동시대 인물 이야기를 같이 풀어냈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단순히 그 지역을 점령하고 군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종이 등 당시 동양의 더 발전된 문물과 문화를 서양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고구려 유민들을 장병으로 훈련 시켜서 전쟁에 승리하면 그 지역에 이주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등 어떤 측면에서는 노예 해방을 이룬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등에 가면 고선지 장군 유적지가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니 고선지는 상당히 존경받는 위인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쓴 이후로 고선지 장군에 대한 연구들도 나오고 자료도 더 많이 발견돼 책을 보충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소설 독도>는 조선 숙종 때 민간인임에도 두 차례(1693년, 1696년) 일본을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낸 의인 안용복이 주인공이다. 2015년 나온 이 책은 일본의 끊임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며, 일본도 이를 인정해왔다는 사실을 소설이란 형태를 빌어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황 작가는 강조했다.
<소설 목민심서>, <영웅 고선지>, <소설 독도> 등 그의 대표작은 모두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또 시대를 뛰어넘는 개혁성, 진취성을 바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삶을 산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정약용 선생 일대기를 쓴 것은 저도 정약용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과 사회를 먼저 돌아보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제 아이들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구요. 저는 다산의 목민이 모든 사람을 섬기는 마음, 인류애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문화적 자산도 이런 정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작가는 올해부터 정약용 사상을 연구하는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차기작 중 하나로 1960-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를 주제로 한 소설 <글뤽아우프>도 집필 중이다.
주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작가에서 기업가로
황 작가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국ESG학회(회장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했다. 소설가이자 사업가인 그는 글로벌ESG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화학 플랜트, 원자력 발전, 중장비 기계, 컨트롤밸브용 다이어프램 등 다양한 산업용 고기능성 패킹·실링제를 생산하는 아이넴 회장직도 맡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에 기업 활동이 이윤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2000년 영국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 의무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고 발표했다.
황 작가는 중소기업 경영자로서 ESG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글로벌ESG협회를 만들게 된 것도 기후위기 대응은 한 국가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며 전지구적 차원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ESG협회는 현재 몽골, 리투아니아 등과 협업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ESG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고 교육을 통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고양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한국은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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