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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 도입, 또 다른 유령아동 시대 도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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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 도입, 또 다른 유령아동 시대 도래하나?

[기고] 위기 여성의 임신·출산·양육 지원이 더 중요하다

한 인물에 관한 설화나 위인전 등은 보통 출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특별히 설화의 주인공이나 위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나의 출생에 관한 일화 한 두 개쯤은 듣게 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결핵을 앓고 있었고, 엄마는 초등학교 앞에서 조그만 문방구를 하고 있었다. 그 문방구에 딸린 작은 방에서 내가 태어났다. 엄마로부터 들은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태어났을 당시 엄마와 아빠는 무엇을 했고, 어떤 병원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출생한 연월일시는 물론 한 사람의 출생과 관련된 이러한 가족 서사는 우리의 태초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태초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은 만약 가족과 반목한다면 미워할 실체가 있고, 가족을 그리워한다면 그리워할 실체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자신의 출생 정보와 가족 서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아니 박탈된 입양인들이다. 프레시안은 현재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기사를 통해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연재 속의 해외입양인들은 하나같이 잃어버린 정체성으로 평생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입양인들은 인생의 시작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친생부모의 상실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분을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특정인과 연결이 끊어지면서 제 인생에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무작정 떨어진 사람 같습니다." (요아킴 베르그 해외입양인, 프레시안 2023.06.24.)

태초의 정체성 박탈은 입양 부모가 좋은 사람이건 아니건, 입양인이 자라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건 아니건 모든 입양인들에게 트라우마가 된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가 된 크리스토퍼 배 씨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생후 1년이 빈 칸으로 남아 그 빈자리를 찾는 것이 자신의 평생 과업이라고 여러 매체를 통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근대 입양. 아동 보호 차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입양이 수십만 명의 입양인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위험이 될만한 충격적인 일을 겪을 때 '영혼이 털렸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입양은 태어나면서부터 영혼이 털린 사건이다, 육체는 있으나 마음에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공백을 갖고, 출생 정보와 가족 서사를 잃어버리고 그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은 낯선 '가족'의 영토에 배치되는 아동들은 또 다른 사회적 유령 아동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가족과 또 다른 서사를 써나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전에 잃어버린 서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6일 이른바 '보호출산제' 법안으로 불리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다. 임산부는 가명과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의료기관에서 산전 검진과 출산을 할 수 있고, 의료비는 전액 정부가 지원한다. 7일의 숙려기간을 거친 후 아기에게는 기초지자체장의 권한으로 창설된 성과 본이 부여된다. 이후 아동은 입양 보내지거나, 가정위탁이나 시설 보호를 받게 된다. 물론 창설된 성과 본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등록이 되지만 거기에는 친부모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한국 전쟁 후 입양 보내기 위해 만들었던 고아 호적과 별반 다름이 없다.

복지부는 보호출산제 운영에 필요한 연간 예산을 약 40억 원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왜 굳이 이 많은 돈을 들여 또다시 사회적 유령 아동을 만들려고 하는가? 이 돈을 임신이 위기가 되지 않도록 필요하다면 혼외 출산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위기 가정의 아동 양육을 위해 쓴다면 애초에 신생아가 복지 사각지대에 처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보호출산을 권하기 전 충분한 양육 상담을 하겠다는 조항도 포함은 되어 있다. 그러나 충분한 양육 상담을 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으로 충분한 지원이 마련되어 있는가? 위기 임산부가 거처할 주거는 마련되어 있나? 보호출산을 결정한 임산부에게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임신에서 출산, 그리고 산후관리 지원이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직접 양육하려는 위기 임산부에게도 똑같이 제공되는가? 어려움에 처한 산모가 충분한 지원이 없어서 보호출산제 하에 아기를 낳기로 한다면 그 아동들은 훗날 정부에 책임을 물으러 불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을 들고 조정을 피바다로 만들었던 연산군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회 일각에서 '임신·출산 보편적 상담지원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리에도 정부와 국회는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미혼모의 양육비 지원 등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해외입양인들. ⓒ한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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