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 삭감과 단기간 노동자 실업급여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비자발적 퇴사자 10명 중 7명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권고사직 등으로 일자리를 잃을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사측이 퇴직 사유를 '자발적 퇴사'로 임의 조정하는 등 '실업급여 갑질'로 이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였다.
27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비자발적 퇴사 경험이 있는 응답자(134명)의 68.7%는 지난 1년간 실업급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비자발적 퇴사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수령한 적이 있는 경우는 31.3%(42명)에 그쳤다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등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보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를 받은 적이 없는 퇴사자의 비율은 비정규직이 69.6%로, 정규직(65.6%)보다 높았다. 또한 15시간 미만 노동자 80.8%, 월 150만원 미만 노동자 90.9%, 5인 미만 노동자 88.9%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응답자들은(92명) 미수령 사유로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아서'(38.0%), '수급자격을 충족시켰지만 자발적 실업으로 분류됨'(23.9%) 순으로 많았다.
지난달 직장갑질 119에 제보한 A씨는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중인데 임금체불 신청하니 '권고사직'에서 '자발적 퇴사'로 정정한다고 협박한다"며 "회사가 저를 해고해놓고 문제 생길까 봐 권고사직으로 처리한 건데, 너무 무섭다"고 피해 사례를 털어놓았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 하한액 삭감을 추진하며 '시럽급여' 논란을 빚으며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여성·청년들이 '시럽급여'를 받아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는 발언으로 비자발적 실직으로 실업급여를 받던 사람들을 '시럽'과 같은 달콤한 급여를 악용하는 부도덕한 실업급여 수급자로 비하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 : '시럽급여' 논란 고용노동부 "개편, 수급자 도덕적 해이때문 아니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법의 개정이 필요한 실업급여 하한액 삭감 대신 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 삭감 방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에서 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 산정방식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규정상 1일 노동시간이 3시간 이하여도 이를 4시간으로 간주해 실업급여를 책정했는데 노동부는 이를 전면 삭제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고용보험위원회 내 운영전문위원회에서 관련 실업급여 산정규정을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르면 이번주 내로 고용보험위원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상정,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1일 3시간 이하 근무 노동자의 실업급여는 대폭 줄 것으로 보인다.
직장갑질 119는 "실직 이후 더 큰 생활의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저임금, 단시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을 축소하는 것은 생계 불안을 줄여 재취업을 지원한다는 실업급여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업급여를 줄이는 게 아니라 악질 사장의 '실업급여 갑질'을 없애고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신속히 도입하는 일"이라며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 받아야 할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사각지대 속 일터 약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조영훈 노무사도 "사업주의 고용보험 미가입, 이직사유 거짓 기재 등의 이유로 실업급여 수급대상자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모두 위법행위다. 정부가 실업급여 제도의 개선을 위해 진정으로 힘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조사결과"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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