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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분 찌개' 거절 못하는 선의를 국가는 날름 받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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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분 찌개' 거절 못하는 선의를 국가는 날름 받아먹는다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엘의 돌봄노동에 대한 고찰

과거부터 사회학적으로 '세대론'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MZ세대가 대표적이다.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 의문도 든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근무조건에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보장된 휴식시간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능력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MZ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만난 10명의 도시 속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나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MZ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속 2030 여성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편집자

엘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거주하기'에 대한 분노를 덤덤하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서울 북쪽 끝의 자취방에서 시작된 주거의 여정은 지하철 2호선 남쪽 역 인근에서야 멈췄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을 내던 첫 자취방은 방 하나를 갈라 가벽을 세운 집이었다. 7평짜리 방의 호수는 101-1호였다. 옆집은 101-2호라고 붙어있었다.

2020년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가 내리던 여름, 머리맡에 바가지를 받쳐두고 떨어지는 빗물을 받으면서 더 이상 이런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결심을 했다. 북쪽에서부터 남으로 남으로 복덕방 순례가 끝이 나질 않았다. 첫 번째 자취방과 같지 않으려면 바퀴벌레와 비가 새는 천장과 가벽으로 된 방을 골라낼 수 있어야 했다. 복도를 막아 문을 달아놓고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을 받겠다는 집도 들어갈 수 없었다. 몇 개의 자치구를 넘어 5000만 원에 50만 원의 집을 보았다. 5층짜리 빌라의 5층, 무려 15평이었다. 낡았다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청년전세대출로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미 학자금 대출이 있는데 전세대출을 얹었다. 첫 자취방의 보증금 200만 원이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가 보태 준 돈이었다.

엘의 알바노동 이력의 시작이자 야심찬 대형기획이라 할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2016년이었다. 호텔청소를 석 달, 오렌지농장에서 오렌지 따기를 두 달, 식당 보조를 한 달 했다. 호텔에서의 청소는 춥고 힘들었고, 농장에서의 오렌지 따기는 '성과급제'였는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캥거루백' 이라고 부르는 자루를 매고 오렌지를 채워 넣는, 개수만큼 돈을 받는 일이었다. 오렌지를 딴 돈으로 농장 오가는 버스비, 식비, 숙박비까지 내야 하는데 오렌지를 따는 속도가 나가는 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지막, 식당 보조 한 달을 하면서 엘은 이대로는 비행기 값은커녕, 공항 갈 버스비도 못 건지겠구나, '현타'가 왔다. 한국행 직항티켓 할인 행사를 보자마자 표를 예매하고 짐을 쌌다. 많은 워킹홀리데이 경험자들에 의하면 오렌지는 물론이고 블루베리, 딸기, 포도 같은, 농장에서 과일 따기 노동을 몇 달 이상 하다보면 고정 지출을 넘어서는 흑자의 순간이 온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에서 엘의 이주노동자 생활은 적자로 막을 내렸다.

엘은 휴학했던 대학교에 복학했다. 근로장학생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사를 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스터디카페 새벽청소를 했다. 2년간의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교사와 새벽청소 이후의 새로운 알바는 백화점의 판매직이었다. 대형 백화점 본점의 액세서리 매장, 오전에 매장을 오픈하고, 판매하고, 정산을 하는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왔다. 손님이 오지 않는 백화점에 계속 나갈 수는 없었다. 그만둬야 하는데 일하는 석 달 동안 알바비가 입금되지 않았다. 기다리면 주겠다고 해서 기다려온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노동청에 신고했다. 석달치 알바비를 받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노동청 근로감독관 앞에 앉아 있으려니 '쭈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엘은 떼먹히지 않는 알바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나랏돈 받는 알바만 할 테다'

다시 휴학을 하고 나랏돈 받는 알바를 찾았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모집 공고가 많았다. 40시간의 교육과정과 10시간의 실습을 마치면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을 준다는 활동지원사 일을 할 수 있다.

엘은 허리가 성치 않았다. 초등학생 돌봄 교사를 할 때 초등학생용 의자에 앉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학습지를 풀었다. 성인이 어린이용 의자에 앉아야 하니, 돌봄교사 2년을 마칠 때는 허리가 상시로 아픈 상태가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위해 만난 2022년 겨울, 카페 의자에 엉거주춤 앉는 엘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하면서 엘은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엘은 2021년 겨울 장애인 이용자 두 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서 회사에 가는 장애인의 출근길이다. 아침의 서울지하철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어서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이미 파김치였지만 이용자를 부축하면서 엘은 계속 걸어야 했다. 돌진하듯이 일터로 향하는 도시인들의 발걸음 사이로 첫 번째 이용자와 함께 출근을 해 낸다. 낮에는 두 번째 이용자의 집으로 가서 지원 활동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첫 번째 이용자의 직장 앞으로 다시 간다. 출근길을 되짚어 가며 퇴근을 한다. 집과 지하철역, 회사와 지하철역 사이의 거리, 지하철의 환승통로, 엘리베이터 잡기까지, 하루 걸음 수 2만보가 찍히는 날들이었다. 퇴근 후에는 저녁식사, 휴식, 인터넷 쇼핑 같은 것들을 같이 한다. 설거지를 하고, 퍼즐맞추기까지 하고 나면 힘이 바닥났다. '이 돈 받고 이 일을 할 게 아닌데' 출퇴근 지원 활동은 결국 중단했다.

엘은 첫 번째 이용자 지원활동을 그만둔 후 일 하나를 다시 구했다. 주 2일 지역아동센터 보조교사로 나간다. 방과 후 돌봄교사가 초등학교 안에서의 일자리였다면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단위의 사회복지 사업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하면서 노하우가 좀 생긴 것 같다. 넘어지면 안 되고, 다치면 안 된다, 계속 신경 쓰는 일인데도 너무 매이지 않고 아이들을 보는 눈에 여유가 좀 생겼다. "노가다 뛰는 기분으로 해요"

종일 집에서 생활하는 두 번째 이용자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거의 대부분의 일에 지원이 필요하다. 얼굴을 씻는 일, 칫솔질을 하는 일처럼 기본적인 위생을 유지하는 일에 실랑이를 했다. 바람이 온도가 바뀔 때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를 바라서 가끔은 산책을 시도한다. '싫어! 안 입어!' 이용자가 싫다고 해도 반소매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날씨에 따라 적절한 옷을 걸치고 외출하는 일은 도전적인 과제였다.

▲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전남도청

두 번째 이용자는 같은 장애를 가진 가족 둘과 살고 있었다. 이용자의 밥그릇만 씻는 것이 엘의 일이었다. 이용자 일인만 지원한다. 그러나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일인분 같은 한 솥을 끓일 수밖에 없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없다. '대쪽같이 규정대로 하려고 해도 잘 안 되죠' 한 사람만 해서는 의미가 없는, 코로나19 검사라는 난관이 찾아왔다. 이용자의 집을 나서 보건소까지 이동하고 세 사람을 달래가며 검사를 마치는 일을, 엘이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용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산동네로 향하는 비탈을 오르는 대목에서 엘의 손짓이 커졌다. 산꼭대기에 있는 이용자의 집은 네이버 지도에 10분이라고 뜨지만 실제로는 30분이 걸렸다. 엘은 보이지 않는 무엇과 싸우는 것처럼 팔을 크게 그리며 그날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바닥에서 생활하는 이용자의 집은 허리가 안 좋은 엘이 피해야 할 작업환경이었다. 이용자를 향해 굽히고 쪼그리고 마주보아야 하는 동작을 엘의 허리가 받쳐주어야 했다.

디스크가 터진 것은 2022년 여름이었다. 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였다. 왕래가 별로 없는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 카드로 수술비를 그었다. 재활 치료를 받는다고 몇 번 더 엄마 신세를 졌다. 유급병가 같은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도 어려운 일이니 무급으로 쉬는 것은 당연하다. 산재보험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손목 건초염이 와서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 맞고, 충격파 치료를 받았지만, 엘의 돈으로 해결했다. 허리디스크가 산재가 되는지 병원에 물어봤는데 기준이 있다고 했다. 이십 몇 킬로그램 이상 물체를 몇 번 이상 들었을 때라고 했다. 수술하고 치료하는 한 달, 엘의 고용주인 센터는 두유 한 박스와 '쾌차하세요' 쪽지를 보내왔다. 한 달 후 엘은 다시 계약서를 썼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은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할 법률」로 정하고, 민간 기관을 선정하여 위탁한다. 장애인활동지원기관은 관리책임자와 전담직원, 업무 공간이 있으면서 활동지원사를 15명 이상 고용한다. 2022년 정부가 정한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시급은 1만4800원. 이 가운데 기관의 운영비로 25%를 제하고 1만1100원이 지급되었다. 복지예산은 늘 빠듯하다는 것을 일깨우며, 기관과 활동지원사가 갈등하게 하는 것으로 국가는 책임을 벗어나려 한다. 2022년 최저임금은 9160원이었다. 활동지원사가 실제로 받는 시급 1만1100원에는 주휴수당, 연차수당 같은 법정수당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이라고 말 할 수 있다.(‘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사 수가 현실화해야’ 인천투데이, 2022.4.11. 보도 참조) 활동지원사는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근로기준법을 따른다.

활동지원사 임금에서 운영비를 떼는 것은 기관이 이용자와 활동지원사를 안정적으로 연결해 주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방안을 찾아주고,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하면 재교육을 해주는, 활동지원사를 '지원'하기에 그 수수료를 뗀다는 명분이다. 활동지원사는 장애인 본인 사망, 가족구성원 사망, 입원, 이사 같은 변화가 있으면 기관에 알려야 한다고 하지만, 기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오히려 '운전할 줄 아세요?'라고 기관이 물으면 못 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 활동지원사들의 생존법이다. 기관은 보험도 기름 값도 안 해준다. 장애인 이용인과 소통이 어려워 기관에 전화를 몇 번 해 보았는데 답은 늘 같았다. '잘 하시면 돼요' 상냥한 목소리에 내용은 공허했다. 엘이 한 달에 60시간 활동지원을 하고 있기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을 때도 '안 돼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근로기준법에 한 달 60시간 미만을 일하면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데 기관은 퇴직금을 주지 않을 계산법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명석한 엘의 머리로도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에서 돈을 떼는 것은 인력 파견업체들이 즐겨하는 중간착취 방법이다. 노동의 보람이나 긍지 대신 굴욕감을 느끼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엘의 말로는 활동지원사들은 임금과 운영비를 분리하고, 운영비는 기관에 직접 지급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한다고도 한다. 엘은 '기관은 우체통처럼 내 돈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우체통 모양이 돈을 넣으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사람의 노동을 초라하게 만드는 비상한 재능이 있다. 삼인분의 찌개와 삼인분의 설거지를 자르지 못하는 엘의 선의를 정부도 기관도 날름 받아먹을 뿐이다.

활동지원사의 75%가 50대 이상의 중년 여성이라고 한다. 모두가 요리고수, 청소고수는 아니라고 해도 상당수 활동지원사는 가사노동의 숙련도가 높을 것이다. 이용자와 이용자의 가족은 그 이점을 누리고 싶어 할 수 있다. 중년여성들의 노동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다. 표준화된 항목에 따른 정량의 서비스를 하라는 교육은 필요할 것이다. 엘은 청소와 요리의 굴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규정대로 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능숙하지도 않지만, 귀 기울이는 마음이 없다면 이용자만 답답한 것이 아니라 엘도 힘든 것이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육체노동에, 교감하는 마음, 돌발 상황에서의 대응, 그 밖의 판단력과 종합적인 숙련성이 필요하다. 이용자와 병원에 갈 때, 치과에 갈 때 장애인의 의료이용이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지 고심하는 마음은 시급으로는 계산되지 않는다. '서비스'일 뿐이라고 우기는 것보다 돌보는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책정하면 좋을 텐데, 엘의 고찰에 의하면 그런 희망은 아직 이른 것 같다.

엘이 활동지원사 일을 한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제일 많고, 좋은 일 한다, 봉사하는 거야? 묻는 이들이 그 다음이다. 일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돌봄이 아니에요, 서비스입니다' 활동지원사 교육의 핵심이다. '돌봄이 아니면 무엇이지?' 자문한다. (이용인이) 밥을 드시는 거 보면서 '나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이게 일인가?' 엘도 생각한다. '돌봄은 내가 돌보는 사람이 내일도 같은 모양이면 잘한 거다. 그런데, 그러면 아무 일도 안 했다고 생각한다' 일로 안 보니까, 일이 일 같지 않으니까 서류 일을 두 배로 만들었구나, 하루의 노동을 돌아보며 뒤척이던 밤, 엘은 깨닫는다. 활동일지, 주간업무보고. 서류작성 노동은 시간이 많이 들지만 무급이고, 원본을 내라고 하니 기관 사무실에 가야 한다. 서류로 보여줄 수 있어야만 일로 인정받는다.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서 하는 문서화 노동에 대해서 시급을 받는 것일 뿐, 활동 지원 자체는 무급일지도 모른다. 주 2일 나가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사회복지사는 늘 서류가 밀려있다.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회복지사를 대신해서 엘이 아이들을 본다. 지역아동센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류가 필요하다. 이 서류를 엘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 활동 일지에 오늘은 어떤 수업을 했고, 아이들은 어땠고, 기억을 해내면서 쓰느라 시간이 좀 걸리죠.'

'내 돈은 사실 서류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엘은 자신의 시급이 사실 행정 업무에서 오는 것이라는 가설을 거의 완성한 것 같았다. '그러면 시급 비싸게 받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기로 한다. 취사, 가사 지원, 요리, 옷입기, 빨래... 칸으로 나뉘어 있는 노동의 분류를 보면서 당신이 세 시간 동안 한 일을 적으라고 하는 직업이 있을까? 돌봄은 아직 비용을 지급받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지역아동센터 교사, 20대 여성 엘의 시급제 일자리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친 사회에서 '필수노동'으로 발견되었다. 2022년 겨울 엘의 디스크가 다시 터졌다. 수술하고 두 달 만에 재발했다고 수술비를 할인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엘은 버티는 쪽으로 결정했다.

* 이 연재는 2022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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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언제나 감탄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 할 수 있는 건 말, 쓸 수 있는 건 글,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는 건 조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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