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해 줄 것을 당부한다."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 1박2일 집회를 비난할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5월 25일~26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법원 앞 1박 2일 노숙문화제는 월례 행사처럼 오랫동안 이어져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도 없던 기자들에게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전화가 걸려와 문화제를 취소할 수 없느냐고 읍소했습니다. 대통령 한마디 때문에 수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진행했던 문화제를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숙 문화제 첫째 날인 25일은 생일이었습니다. 문화제 영상과 노래와 발언을 점검하느라 거의 날 밤을 새웠습니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줘야 했습니다. 1, 2심 모두 현대차, 한국지엠, 아사히 등 대기업 사내하청이 불법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이 5년 넘게 서랍 속에 쳐박아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문화제를 위해 영상도 준비하고 공연도 준비하고 문화제답게 많은 것을 고민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앞에서 경찰이 갑자기 LED 방송차를 끌고 갔습니다. 덩달아 저도 끌려가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집회와 문화를 기획하면서 이렇게 잡혀간 일은 이명박, 박근혜 때도 없었습니다.
생일상을 유치장에서 받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한 6년 전 겨울. 저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비정규직·해고노동자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캠핌촌’을 꾸리고 5개월을 살았습니다. 매일 리어카에 음향 장비를 실어 날랐습니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들의 외침을 작은 무대와 마이크를 통해 알렸습니다.
촛불 정부가 들어섰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작은 무대와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일터를 빼앗긴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아픔과 절규는 노래와 영상이 되어 길거리 문화제의 밤하늘을 수놓았습니다. ‘마이크’가 없는 힘 없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집회 현장에 한 번도 나와보지 않은 이들이나 지껄이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입니다. 문 정부의 경찰은 코로나 해고를 멈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수도 없이 잡아가뒀습니다.
그런데 집회 신고의 의무가 없는 문화제를, 시작도 하기 전에 박살낸 것은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었습니다. 문화기획자를 잡아 가둔 것도 윤석열이 처음입니다. 문화제는 집시법 제15조의 예술, 오락에 관한 집회에 해당해서 신고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구나 관혼상제에 해당하는 건설노동자 양회동열사의 추모문화제와 분향소는 경찰이나 정부에서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경찰청장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한 이유입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문화제 해산은 처음
30년 동안 수많은 공연과 집회, 사회적 마음을 모으는 희망버스와 문화제를 기획했습니다. 수 많은 열사들의 추모제와 이소선 어머니, 백기완 선생님,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의 장례식을 연출했던 저로서는 문화공연과 추모문화제까지 폭력적으로 막는 경찰과 정부의 행태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가두고 막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작은 목소리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모여 크게 울릴 수 있을 때 이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비정규직들의 설움과 아픔, 분노를 드러내고자 하는 문화제를 다시 기획하려고 합니다. 다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찍히더라도 야만과 독재의 시간으로 되돌리려 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저항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많은 문화예술 선배님들과 벗들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2017년 광화문을 지켰던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과 비정규직들이 다시 6월 9일 대법원 앞에서 “지키자 민주주의!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거리 문화제를 진행합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손 모양 대형 상징물과 함께 우리의 목소리와 몸짓이 민주주의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울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꼭 필요한 곳, 많이 아픈 곳, 불의에 대한 단죄와 연대가 필요한 곳, 권력과 자본에 맞서 저항이 필요한 곳이 이전에도 앞으로도 문화기획자인 저의 자리입니다. 30년 노동과 문화의 현장을 지켜온 바로 그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는 일을 폭력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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