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각계 시민사회에서 "정치·사회가 퇴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9일 국무회의에 나선 윤 대통령이 "과거 정부의 비정상 정책"을 강조하며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노동, 여성, 주거, 문화 등 사회 각 분야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부터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정책이 퇴행하고 불평등은 심화됐다'는 취지의 평가를 일제히 쏟아냈다. 노동·여성 등 분야에서 정부가 강경하게 외쳐온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는 오히려 각계 박한 평가의 주된 요인이 됐다.
여성계에선 정부가 취임 전부터 '여성가족부 폐지' 등 극단적 정책을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백래시와 여성혐오를 땔감처럼 활용"해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8일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논평'을 내고 지난 1년의 정부 기조를 "반 여성, 반 성평등, 반 민주주의의 1년"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특히 윤 정부 출범 이후 "행정추진체계 내의 젠더 전담관이 축소·개편되었고, 여성커뮤니티센터 등 공간은 폐쇄되고, 성평등 사업 예산이 삭감되면서 성평등 실현을 위한 추진 동력은 사라지고 있다"라며 "이는 수십 년간 성평등한 조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왔던 모든 노력을 무화시키는 명백한 과거로의 퇴행"이라고 평했다.
또한 이들은 △주 69시간 근무제 발표 △외국인 가사도우미법 발의 △노조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 등 정부가 보여준 "노동혐오"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계층이 바로 "노동취약계층과 여성노동자"라며 "윤석열 정부는 채용부터 해고까지 노동시장 안에 버젓이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더욱 강화하는 가부장적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노동·농민 단체들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각 분야 73개 노동·시민단체들은 9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은 독선과 폭주, 퇴행과 후퇴의 시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노동단체들은 △물가상승률(5.1%)과 비교해 사실상 삭감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률(5.0%) △주 69시간 근무를 가능케 하는 유연근로시간제 등을 구체적인 문제로 지목하며 "장시간 과로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문제의식을 정부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들 또한 "윤 대통령은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던 쌀값에 최소한의 보장방안이 담긴 양곡관리법을 '사회주의 포퓰리즘'이라며 이땅의 농민들과 입법부를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다"라며 "정부가 도탄에 빠진 서민들의 절박한 외침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부의 행보를 비판했다.
정부 출범 이후 "주거권이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한국도시연구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좌담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는 무능·무지·무책임으로 자산불평등을 심화하고 주거권을 후퇴시켰다"고 강조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특히 정부 출범 이후 '반지하 참사', '전세사기 피해' 등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축소(연간 13만호에서 10만호로)"하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국민 누구나 따뜻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는 나라'는 구호에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계는 "윤석열 정부 이후 K-블랙리스트가 부활하고, 문화민주주의는 실종됐다"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문화연대 등 문화예술 단체들의 연대체 '블랙리스트 이후(준비위원회)'는 이날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1년 규탄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정부는) 국정운용 가치로 '자유와 공정'을 강조하고 있으나 '윤석열차' 사건을 비롯하여 검열 사건이 계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창작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등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올해 4월 국회사무처가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에 '전시회를 위한 로비 사용 허가' 조항을 신설하여 사실상의 "사전검열을 제도화"한 일 등 지난 1년간 이어진 '윤석열 정부 1년 검열 일지'를 작성해 발표하기도 했다. 윤석열차 검열 사건을 포함해 지난해 5월부터 올 4월까지 수집된 정부·지자체 주도 검열 사건의 수는 총 13건에 이르렀다.
또한 이들은 정부 출범 이후 문화정책의 성과지표가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배제한 채 오직 가시적인 수치(수출액, 관광객수, 참여율 등)로만 환원"되고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한 홍보업체가 되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여한 국무회의의 모두 발언에서 "제가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 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라며 외교, 안보, 경제 분야 등에서의 성과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 한계점에 대해서는 "거야(巨野) 입법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던 점도 솔직히 있었다",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됐다"는 등 야권을 비판하는 형식의 발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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