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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복을 찾아서, "나를 아낀다면 보령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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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복을 찾아서, "나를 아낀다면 보령에 살자"

서미경 보령시 자치행정과 주무관

봄이다.

보령에서 느끼는 첫봄.

바다에, 들에, 산에 온통 봄기운이다.

패션업계에만 25년을 몸담았던 서울내기인 나는 지금 보령시청 새내기 공무원이다.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25년이 아닌 125개의 시즌을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살아 낸 나의 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 

성취감에 도취되어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의 삶이었다.

어느 순간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를 다른 방식으로 아끼고 싶었다.

문득문득 꿈꾸던 전원에서의 휴식 같은 삶에 대한 목마름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WHY NOT?  

우선 사표를 냈다. 오랜 일을 그만두었으니 ‘시원섭섭’할 만도 한데 그 표현이 무색하게 시원만 했다. 그 순도 백 퍼센트의 시원함에 살짝 당혹스러운 나 스스로에게 ‘후회 없을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하며 토닥토닥.

제2의 인생을 꾸릴 보금자리를 찾기로 했다. 풍요로운 들판이 있는 농촌이길 바랐다. 

거기에 언제고 넓은 품으로 나를 받아줄 바다가 있는 마을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나 더, 겸허함을 가르쳐주는 산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건, 의료서비스가 용이하고 서울에서 멀지 않아야 했다.

참 욕심도 많다 하겠지만 짧지 않을 두 번째 인생을 온전히 살 곳인데 바람이 왜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역시 나의 요구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곳은 쉽게 찾기지 않았다.  

들과 산이 좋으면 바다가 없고, 바다가 좋으면 풍요로운 들이 아쉬웠다. 

어쩌다 들과 바다, 산까지 좋으면 서울에서 너무 멀었다.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채 겨울이 되었고 늘 그러했듯 보령으로 김장을 하러 왔다.  

보령엔 친척 언니가 계셨고 난 십 년 넘게 김장을 하러 보령에 왔다.

올 때마다 마을 분들의 따뜻함과 유쾌함에 김치뿐만 아니라 뿌듯하게 넘치는 행복감까지 가져가곤 했다. 

좋은 건 늘 가까이에 있다더니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구. 

보령이었다!

내가 찾던 그곳. 풍요로운 들과 바다(무려 대천해수욕장이다)가 있는, 그리고 성주산이 포근히 감싸주는 곳. 게다가 서울과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 아산병원 등 종합병원까지 있는 도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보령에서 살 운명이었는지 바로 매입할 수 있는 부지도 마침 있어서 땅이 녹기 시작하는 즈음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서울과 보령에 오가며 열심히 집을 짓고 그해 8월 드디어 보령시민이 되었다.

집을 지으면서 이런저런 허가 건으로 보령시청에 갈 일이 많았다. 

보령시청을 방문했을 때의 첫 느낌은 ‘활력’이었다. 그 곳엔 관공서답지 않은(?) 밝음과 젊은 활력이 있었다.

업무처리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이들은 당연히 행정 처리도 빨랐다. 이들의 일상이 ‘워케이션(휴가지 원격근무)’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반한 나는 결심했다. 내 인생 두 번째 직업은 보령시 공무원으로 하자!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30년 만의 녹록지 않은 수험 생활을 마치고 2022년 일반행정직 공시에 합격하고 보령시청 공무원이 되었다.

보령 하면 가장 먼저 대천해수욕장과 머드축제를 떠올린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뿐만이 아니다. 봄이면 눈이 시리게 흐드러져 마음을 흔드는 대한민국 최고의 주산 벚꽃 길. 가을을 더 빛나게 하는, 더 이상 선명할 수 없는 노랑의 청라 은행마을, 경춘가도는 비교도 안 되는 미산 보령호길......

물론 야근도 하고 하루하루가 바쁘다. 시민들을 위한 직업인데 편할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집에서, 직장에서 몇 발짝만 나서면 이런 아름다운 곳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른 아침 대천해수욕장의 부드러운 패각분 모래를 밟으며 산책하는 기분이란......

하루하루가 보령의 선물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언제였던가 싶게 보령살이에 푹 빠졌다.  

서울에서 내내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과 비염은 보령의 맑은 공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선한 해산물 등 풍부한 제철 먹거리 덕에 더 좋아진 건강도 보령의 선물 중 하나이다.

당연히 용기가 필요했다. 평생을 살았던 서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낯섦, 일을 그만둔 후의 상실감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

사실 50 넘은 나이에 새로운 조직의 막내로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령시청에 들어와 보니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나의 보령시 공무원 선배들은 따뜻한 프로였다.

업무에 대한 문의는 물론 낯선 보령살이에 대해서도 사려 깊게 답을 주고 안내해 준다. 

업무에 최선을 다하며 활력 넘치는 선배들과 함께하다 보니 적응 기간이 뭔가 싶게 6개월이 지났다.

인생은 늘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하고 그때마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바람을 일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나의 이번 용기는 대성공이다.

나를 아낀다면 보령에 살자.

제2의 인생을 워케이션으로 채우고 있는 나는 보령의 행복한 새내기 공무원이다.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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