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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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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감옥

[시로 쓰는 강원도 철원지역 민간인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인민군 감옥*

인민군 감옥1

-세개의 감옥

월하리 새우젓 고개 옆

급수지 아래 지하에는

인민군 감옥 세 곳이 있었다

산그늘이 깊은 그곳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미군 폭격을 피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요새였다

치안대에서 활동한 사람

인민군에 입대하지 않은 청년

남쪽으로 피난 가다 잡힌 가족들

1호실, 2호실 감옥 밀어 넣고

인민군 사무실

취조실, 고문실로 연결 된

3호실 감옥으로

죄수들을 불러서

혹독하게 조사를 했다

그래도 감옥이라고 하루에 한번씩

돌피로 만든 주먹밥 한 덩어리

구정물 한 컵을 배식했는데

더 달라고 하면 발길질이 날아 왔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요리 기름집 아저씨는

자기 검정고무신에 오줌을 받아먹고

현장에서 즉사 했다

인민군 감옥2

- 잉어밥, 가물치밥

제3감옥에서는

날마다 취조가 이어졌다

끌려 나간 사람들은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정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고문이 시작 되면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들이 작성한 서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장을 찍었다

조사가 끝나면

눈을 가리고 세 명씩 철사로 묶었고

총알이 아까워서

칼로 찔러서 숨통을 끊었고

모가지를 잘라서

급수탑 주변에 대강 묻었다

몸뚱이는 미군 폭격이 없는 밤에

학저수지에 던져 버렸고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온 사람들이

잉어, 가물치가 뜯어 먹고

우렁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시체를 건졌지만

목이 없어서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육십년이 넘은 지금도

학저수지 둘레길을 걷다보면

사람 냄새를 맡은 가물치 잉어들이

대가리를 내밀고 몸을 뒤집고는 한다.

인민군 감옥3

- 미군 조종사

수도국지 감옥에는

미국 폭격기 조종사

대위와 소령 두 명이 있었다

면도를 하지 못해

노란 수염이 얼굴을 덮었고

파란 눈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있어서

갈기를 휘날리던 숫사자 같았다

철원 시내 폭격을 하러 왔다가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했다고 하는데

철사 줄에 묶여 들어온 그들은

언제나 'I am hungry'를 중얼대서

같은 죄수들은 헝그리 군인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허기에 지친 그들은

헝그리 소리도 못하고 있었는데

면회를 나갔던 치안대장 출신 김씨가

미숫가루를 얻어와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경험이 많은 한국 죄수들은

조금씩 입안에 넣고

침으로 살살 녹여서 먹었는데

너무 배가 고팠던 미군 대위는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목이 막힌 헝그리 대위는

팽이처럼 몸부림치면서

물을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인민군들은 못들은 척 외면했고

목이 막힌 그는 질식사 했다

그래도 미군이라고

목은 자르지 않고

수도국지 근처에 고이 묻어 주는

특급 대우를 받았다

인민군 감옥4

-최종회

“국군이 포천까지 왔다는데...”

면회를 나갔다 온

관전리 떡집 아저씨의 한 마디에

인민군 감옥은 화색이 돈다

이제 풀려 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고 격려를 한다

인민군들도 죄수들에게는

신경도 안 쓰고 짐을 싸기에

이리저리 바쁘다

하루에 한번 주던

돌피가 섞인 주먹밥을 안 주는 것도

툭하면 발길질을 해대던

율리리 머슴 출신 간수 녀석이

잔뜩 풀이 죽은 모습도

수감자들에게는 좋은 징조이다

폿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고

트럭에 짐을 실은 인민군들이

도망치듯 떠나고 정적이 흐른다

이제 집으로 가는 구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흰쌀밥에 쉰 김치라도

쭉쭉 찢어 마음껏 먹겠구나

기대감으로 점점 조급해지는 무렵

드디어 급수지 지하 감옥문이

설겅설겅 열리고

낯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아뿔싸, 수십 명의 인민군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정조준하고 있다

*유용수 체험 전기소설 『고향 철원 실버드나무꽃 한 쌍』을 근거로 씀.

▲ 강원도 철원 수도국지. ⓒ정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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