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정치 없이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관점에서는 권력구조와 상관없이 입법부에서만 법을 개정하고 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회의 행정부 감시 견제 기능도 의회의 존재 이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광의의 정치에 해당하는 관료의 행정 행위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한국정치에서 문제적 기구는 정당이 주축이 된 국회다. 결국 핵심은 왜곡된 정당정치다. 정당을 배제한 현대정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의 공천이 소수의 당내 파워 그룹의 전유물로 전락한 공천제도의 개혁 없이는 정당의 왜곡된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천제도가 정당체제 왜곡의 주범이라 해도 정당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 역시 긴요하다. 정당의 운영 행태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당정치의 정상적 작동은 기대할 수 없다.
첫째, 대통령제에서 정당이 강한 기율과 중앙집중적 관료 체제로 운용되는 것 자체가 기형적이다. 국회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이면서 대선 캠프에 줄 서는 것도 정치 희화화의 요인이다. 정당이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고 상대 정당과의 적대적 대치를 정당의 생존 요건으로 하는 정치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도 대통령제의 기본 원리와 맞지 않는다. 의회와 행정부의 융합이라는 내각제의 대전제도 없는 권력구조에서 이러한 제도가 운영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셋째, 비례대표의 증원과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도의 개편이 정치개혁의 요소라고 보는 인식도 위험하다. 비례대표는 내각제를 발전시켜 온 유럽의 국가들에게 해당하는 제도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오히려 양대 정당의 기득권 정치를 강화시킬 수 있고 비례대표 확대는 정당의 소수의 파워그룹의 권력만을 강화시킬 수 있다.
넷째, 헌법상에 부여된 특권인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모든 이가 동의하는 진부한 주장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밖에도 숱한 제도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위의 몇 가지 사안들은 정권의 성격 및 지향과 무관하게 선결되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들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대척에는 이러한 암적인 요소들의 작동으로 대치는 더욱 강화되고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은커녕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각자도생의 '전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공존한다. 현실적이기만 한 정치도, 이상적이기만 한 정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정치와 이상주의 정치가 상호보완적일 때 양자는 의미를 찾는다.
여당과 제1야당의 끝없는 대립은 쟁점과 담론이 거세된 그들만의 박제된 싸움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혐의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공방이 정치의 주제가 되는 정치가 정상일 수는 없다.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결과를 초래한 지금의 상황은 단순히 '정치의 사법화'라는 말로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집권세력이 포용을 발휘해야 한다. 집권당의 당 대표 경선이 당내 민주주의보다는 당정일체라는 명분으로 경선에 개입하는 행태로 미루어볼 때 야당과의 협치는 상상할 수 없다. 여권이 이 대표 수사와 거리를 두고 당내 경선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정치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여당의 명예대표로 할 수 있다는 여권 일각의 생각은 퇴행적이며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여당의 의석이 비록 소수이지만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행사하기에 따라 정치개혁과 정치복원에 결정적 규정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야당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경직되고 당 대표에 종속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단 '친윤'을 중심으로 당정 관계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대통령 권력이 개혁에 천착하고 정치 복원에 복무한다면 '합의제 정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연장인 여야의 적대적 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다.
정치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이슈들은 정치적 현실주의의 철학을 받아들인다 해도 투표자가 인내하기에 임계점을 넘고 있다. 이념을 준거틀로 하는 정치적 쟁투도,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투쟁도 아닌 3류 정치를 대통령이 나서서 포용과 감동의 정치로 물꼬를 틀 수 없을까. 이제 '똘레랑스'라는 고전적 명제를 시도할 때가 됐다.
집권당 경선에 드리운 음영을 거둬내고, 야당이 거부하더라도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을 보인다면 최소한 지금의 적대적 대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승리는 언감생심이다. 집권연대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털어내는 순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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