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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이래로 가장 험난했던 美 하원의장 선출 과정…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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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이래로 가장 험난했던 美 하원의장 선출 과정…왜?

[장성관의 202Z] ⑨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간극 확인된 공화당의 자중지란

미 연방의회는 홀수 해마다 2년간의 새 회기를 시작한다. 미 헌법은 각 회기의 시작을 홀수 해 1월 3일 정오로 지정해두었다. 평소 회기 첫날은 새 학년도 개학식과도 같이 진지한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지나간다. 하원의장을 선출하고, 모든 의원들의 취임식을 거행한 뒤, 의장을 포함한 다수당 지도부에서 새 회기 운영 규칙 (rules package)을 표결에 부친다. 논쟁과 난항이 있다면 보통 이 마지막 지점에서 생기는데, 이번 제118회기는 일주일 동안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평소 하원 의장 선출은 형식적인 절차다. 양당 교섭단체 의장 (공화당은 이를 하원 공화당 컨퍼런스, 민주당은 하원 민주당 코커스라 부른다. "교섭단체 의장"은 원내 대표와 원내 총무 뒤 서열 3위에 위치한다)이 자당 서열 1위 의원을 의장 후보로 추천·지명하고, 본회의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의장에 당선된다. 다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당 서열 1위 후보가 선출되는 것이 당연시된다. 소수당에서는 단합의 의미로 자당 원내대표에 투표하는 것이 관례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이하 직함 생략)가 평생 눈독 들였던 하원의장 의사봉을 드디어 쥐는 듯했으나, 그의 과반수 득표까지 무려 나흘간 15차례의 표결이 치러졌다. 하원의장 선출에 한 차례 이상의 투표가 치러진 것은 1923년 이후 꼭 100년만의 일로 당시에는 9번의 투표를 거쳤다. 10 차례 이상 투표를 거친 의장 선출 과정은 이번을 포함해 미국 역사상 여덟 번 있었고, 역사상 가장 긴 하원의장 선출과정은 무려 133회의 투표를 거친 1856년에 일어났다. 이번 투표는 남북전쟁 이후 가장 긴 선출과정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하원은 세 개의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쩌면 지금 하원 또한 사실상 세 개의 정당으로 이뤄져 있는지 모르겠다. 단 10석 차이로 다수당 지위에 있는 공화당 내 친-트럼프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House Freedom Caucus)가 이번에 그 세를 과시하며 매카시의 의장 선출을 저지했다.

헌법에 따르면 하원의장이 선출된 이후에만 하원의 업무 진행이 가능하다. 이는 의원들의 취임을 포함하는데, 의장이 선출된 1월 7일 오전 1시 전까지는 연방하원의원 전원은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법안 처리와 상임위 배정, 본회의장에서의 의사 진행 발언에 대한 속기록 삭제 절차, 사소하게는 본회의장의 냉난방 온도 조절까지 나흘 가까이 진공상태로 유예됐다.

최대 21명까지 늘어났던 공화당 '반란표'…6명은 끝까지 매카시 거부

제118회기 연방 하원은 공화당 의원 222명과 민주당 의원 21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장 선출에는 정원 435명의 과반수인 218표가 필요하다. 때문에 매카시는 공화당에서 4표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하는 경우 선출될 수 없다. 총 열다섯 차례 표결 동안 민주당은 의원 212명 전원이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에게 투표한 것에 반해, 공화당에서는 이탈자가 오히려 늘어났다.

1차 투표에서는 19명이 프리덤 코커스 전 의장인 앤디 빅스 의원을 포함 여러 후보를 지지했고, 2차 투표와 3차 투표에서는 각 19명과 20명이 짐 조던 의원을 지지했다. 짐 조던은 프리덤 코커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현재 하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 공화당 의원이다. 그는 여전히 친-트럼프 강경 입장에 서있음에도 현재 하원 공화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프리덤 코커스와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

4차 표결부터 6차 표결까지는 초선의 흑인 하원의원 바이런 도널즈 (Byron Donalds)에게 이탈표가 모두 향했으며, 여기에는 1표의 기권 (present)표가 추가되어 이탈자는 총 21명이 되었다. 5차 투표부터는 매카시에 대한 지지 철회 의사를 밝힌 중진 의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2차 표결이 진행될 때야 이탈자들은 매카시에게 투표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매카시가 민주당에서 도움을 요청해 이 사태를 타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하기도 했다. 2016 대선에 출마한 적 있는 존 케이식 (John Kasich) 전 오하이오 주지사도 이 방안을 적극 지지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매카시에게 찬성표를 던지지 않더라도, 기권표를 던지거나 표결에 참석하지 않는 방법으로 과반수 기준 수치를 낮추는 방법이다. 실제 투표 첫날, 본회의장에서 일부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포착되어 이 가능성에 더 불을 지폈다.

특히 애리조나의 폴 고사 (Paul Gosar)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AOC)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크게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사는 AOC 얼굴을 한 괴물을 죽이는 모습을 담은 애니매이션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하원에서 견책 (censure) 조치를 받고 모든 상임위에서 사임 당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매카시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고, 지난 3년간 매카시의 리더십에 가장 적극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맷 게이츠 (Matt Gaetz) 의원도 같은 날 AOC에게 접근했다.

매카시가 민주당에 "표를 빌리는" 가능성이 제기됐던 이유는 오하이오주 하원, 뉴욕주 상원(2001년) 등에서 실제로 민주당과의 협력으로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의장이 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카시와 공화당 지도부는 협상을 통해 매카시에게 투표하지 않은 공화당 의원 20명 중 14명의 표를 끌어왔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지지표를 던지지 않은 공화당 의원은 총 6명으로, 이들은 대신 기권표를 던져 과반수 기준선을 낮췄고 매카시가 당선될 수 있었다. 15차 표결 시작 전 트럼프는 이 중 두 명의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종용했다. 하지만 이 중 한명인 맷 로젠데일 의원은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건네준 전화기를 받지 않으며 트럼프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트럼프 종용에도 매카시 거부한 프리덤 코커스…수단으로 전락한 트럼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선거 구호) 움직임에 앞장선 이들 사이에도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피즘이라는 이념과 트럼프라는 인물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근거는 이렇게 늘어가고 있다. 트럼피즘의 지향점이 트럼프의 성공이 아니듯, 단적으로 공화당 지도부와 프리덤 코커스가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의 종용에도 매카시를 끝내 지지하지 않은 의원들에게도, 또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한다"고는 했지만 취임 연설에서는 그에 관련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던 매카시에게도 트럼프는 일종의 수단일 뿐 아닐까.

매카시와 공화당 지도부는 지난 9월, 하원에서 압도적인 의석 차이로 다수당이 될 것이라는 예상 아래 "미국에 대한 헌신 (Commitment to America)"라는 어젠다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 비리 의혹에 대한 조사특위 설치, 멕시코와의 국경 보안 강화를 비롯해 지난 2년간 통과된 다수의 법안을 무력화할 조치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소위 "문화 전쟁" (culture war)에 관련된 의제 말고는 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난 2015년 공화당에서 새로운 의장 후보를 찾을 당시 매카시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데이빗 잘리 (David Jolly) 전 하원의원은 "매카시가 권력을 원한다는 것 외에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하며, 당내 혼란의 시발점을 그의 탓으로 돌렸다.

프리덤 코커스의 지향점이 더 큰 권력 이외에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다수가 반대를 철회하는 조건 중 밝혀진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프리덤 코커스 추천 의원 복수를 운영위원회 (Rules Committee;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과 본회의장에서 관련 토론·투표 규칙을 정하는 전권을 갖는 상임위.)에 보임할 것

• 앞으로 공석이 발생하는 공화당 우세 지역구에서, 맥카시와 행보를 같이하는 슈퍼팩에서 예비선거에 자금 집행을 하지 않을 것

• 의장 사퇴 신청 (motion to vacate the chair) 의사진행에 필요한 최소 동의 인원수를 현행 5명에서 1명으로 낮출 것

•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사안을 검토할 시간을 최소 72시간 보장할 것

• 각 법안에 대한 수정조항 (amendment) 추가에 있어 모든 평의원이 운영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서 직접 표결 요구할 권리를 부여할 것

일부 의원들은 추가로 본인들을 당내 운영위원회 (steering committee;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사보임에 대해 투표하는 일종의 확대 지도부)에 배정할 것을 요구했다고도 알려진다. 위 내용은 모두 티 파티 (Tea Party) 물결을 타고 하원에 대거 입성했을 때부터 공화당 내 강경파에서 요구한 사항이며, 베이너 의장이 사퇴한 뒤 차기 의장을 정할 때도 프리덤 코커스의 지지에 같은 조건을 내세웠다. 그들은 지도부에 속한 "소수의" 의원들이 민의를 무시한 채 하원을 움직인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프리덤 코커스에 더 큰 권한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내 양극화 부추기는 예비선거제도…의원들 인터넷 통한 개인 정치에만 골몰

보수와 진보 사이의 양극화만큼 양당 내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기디언 라핫 (Gideon Rahat) 교수는 그 주된 이유로 예비선거제도 (primary election)를 꼽는다. "예비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후보들은 그들에게 자금이나 유권자를 조달할 수 있는 특정 인물들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주장하며 "현행 [미국] 예비선거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다. 이런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지역구 유권자가 아닐 수도 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비선거에서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당 지도부와 굳이 발맞춰 정치활동을 할 이유가 없게 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일레인 케이막 (Elaine Kamarck)은 개인의 목표와 당의 목표가 분리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인터넷 모금을 꼽는다. "인터넷은 [선거]과정에 있어 정말 통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 대신 리얼리티 TV쇼 같은 요소를 추가했다"며 온라인에서 관심을 끌 수 있는 후보는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매카시의 의장 선출 과정 중, 맷 게이츠의 선거 캠페인에서는 매카시를 앞으로도 저지할 수 있게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번 의장 선출 과정에서 프리덤 코커스에서 요구한 사항이 하원 내에서 평의원들과 지도부 사이 장벽을 크게 낮춘 것은 사실이다. 이를 통해 양당의 원내대표들만 보이는 정치에 비해 더욱 민주적인 입안과정을 조금이나마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깎아내린 방식으로 점수를 따는 실망스러운 모습이나 "나는 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제안과 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각자의 영달과 권력 대신, 산적한 미국 사회 문제의 해결과 민생을 위해 이렇게 열띤 토론과 협상을 추진할 수는 없을까.

베이너 의장의 후임이었던 폴 라이언 (Paul Ryan) 전 하원의장은 취임을 하며 본인의 비전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반대하는 정당 (opposition party)이었다. 하지만 미국 시민들을 위해 결과를 만들 거라면, 우리는 제안하는 정당 (proposition party)가 되어야 한다."

▲미국 하원의장 선출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끼리 몸싸움을 우려해 말리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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