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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았다"

대법원의 '정당방위' 판결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입장문 발표

대법원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묶여 있던 30억 원을 풀어주었다. 불법 시위라 해도 경찰의 불법적 과잉 진압에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77일간 공장에서 옥쇄파업을 진행했다. 경찰은 노동자들을 강제진압 과정에서 헬기를 동원해 최루액을 분사했을 뿐만 아니라 하강풍을 옥상 농성 노동자들에게 직접 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새총 등으로 경찰의 진압에 저항했고, 헬기 등 일부 장비가 파손됐다.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배경이다. 대법원은 시위 진압에 동원된 헬기 파손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3년 동안 속앓이 해온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래 입장문 전문을 게재한다.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 파업을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국가에 10억원대 배상금을 물어내라고 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경찰이 헬기로 최루액을 분사하거나 하강풍을 옥상 농성 노동자들에게 직접 쏜 것은 위법일 수 있다며 헬기 파손 책임까지 노동자들에게 물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집회·시위가 불법이라 해도 경찰의 불법적 과잉 진압에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라는 취지다.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판결 직후 과거 '쌍용차 사태'를 이끌었던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등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입장>

우리가 죽었다

폭력적인 너무나 폭력적인 우리는 죽었다. 헬기를 부수고 기중기를 파괴하고 자살특공대로 매도당했던 우리는 죽었다. 데모 할 시간에 돈이나 벌어라 조롱 받았던 비참했던 우리는 죽었다. 가족 관계가 끊기고 연줄마저 날카롭게 잘린 그 틈 사이로 우수수 생명들이 빠져 나갔음에도 약해빠진 정신력을 지탄 받았던 강성노조 우리는 죽었다. 살인미수와 불온서적이 나뒹굴고 빨갱이와 폭도로 피 칠갑 되었던 그 우리는 죽었다. 과격하고 잔인한 인간들의 무모한 공장 점거가 산업 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기강까지 무너뜨렸다던 숱한 요설 아래 짓밟히고 깔린 채 특정 시기에만 호출 당하던 그 우리가 죽었다. 동료들이 죽어 가면 언제까지 시체팔이 하냐는 비아냥 듣고, 복직하자 떼 법이 이겨 나라 기강이 무너졌다 한탄하던 가진자들의 안주거리, 그 우리가 죽었다. 눈물은 감성팔이가 되고 피눈물은 동정팔이로 폄훼되었으나 투쟁은 또 과격하다 시비걸더니 정작 죽음 문제에서는 나약함으로 규정 내려져 어떤 것도 시비 거리가 되고 권력 쥔 자들의 눈에 박힌 까시였던 다면적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실체 없던 우리가 드디어 죽음을 맞이했다.

주문

헬기 및 기중기 손상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2022년 11월 30일 쌍용차 국가 손배 선고 대법원 판결 주문 내용이다. 불법파업일지라도 경찰장비(헬기 30미터 저공비행, 최루액(20만 리터) 살포, 헬기 하강풍 이용한 진압등)를 위법하게 사용하면 경찰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선 일체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기중기 사용에 있어서도 본연의 목적 이외에 사용했고 특히 기중기 손상으로 인한 휴업손해에 대해서도 피고가 손해를 예견하기 어려웠기에 특별손해로 봐야 한다는 점과 20% 책임제한의 범위를 벗어나 80%까지 일방적으로 인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불합리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대법원 선고에서 쟁점은 파업 현장에 불법적으로 난입해 아수라장을 만든 헬기와 기중기 손상에 대한 책임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있느냐 여부였다. 2심 판결 이후 6년 5개월, 쌍용차 파업 이후 13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은 불법파업일지라도 그것은‘정당방위’이 네 글자 안에 모두 담겼다. 

우리가 살았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국가 손배 해법 마련에 고심하던 경찰청으로서는 큰 걸림돌 하나 완벽하게 제거하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쌍용차 파업은 관련된 사람들의 책임 범위 구획 정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서로서로 배임이라는 모순적 주술에 걸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결국 13년을 끌었고, 그 사이 30억원까지 손배금액이 불어났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경찰과 법무부의 고심도 이해가 간다. 관련 근거가 없다보니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본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청장 후보자 또한 대법원 판결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낸 배경이다. 2018년 경찰청장의 공식사과 이후에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맥이 같다. 지난 2022년 8월 경찰청 국가 송무과와 실무 협의에서 확인한 것처럼 대법원 판결은 실무협의와 경찰청의 판단에 빠르게 스며들 것으로 판단한다. 해법 찾지 못한 행정부에 대법원이 근거와 당위성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불법적 경찰 장비 사용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선 경찰은 물론 국가손배 해법 없어 고심했던 경찰청에게도 하나의 기준이 마련 된 셈이다. 경찰도 산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실무적 절차에 하루 속히 접어들자

대법원 판결로 경찰은 이 사건 국가손배에 대한 배임 혐의에서 벗어났다. 파기 환송의 법 취지와 근거에 따라 빠르게 당사자들간의 만남을 통해 나머지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경찰은 지난 과거를 거울삼아 경찰의 위법한 법 집행으로서는 더 이상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수도 초대 받을 수도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빠르게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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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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