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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한국어 교원 투쟁이야기 ②] 한국어 강사들은 '입'이 없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진 2020년 3월 이후, 하늘길이 막히고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은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교원 조합원들은 계약직 38명 전원을 무기직으로 전환했고(서울대), 학교와 단체협약, 임금협약을 체결했습니다(연세대). 10년도 넘게 묵은 계약서를 새로 썼고(경희대), 부당해고에 맞서 대법원까지 갔다 복직했습니다(강원대). 엔데믹이 가까워진 2022년 10월, 한글날을 맞이하여 팬데믹 기간 한국어교원의 투쟁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요즘 한국 노래와 드라마,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데 출발이 되는 것이 '언어'이다. 따라서 한국어 교육은 한류 문화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외국인을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들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1959년에 설립된 국내 최고(最古)의 교육기관이자 자타공인 최고(最高)의 교육기관이다. 십여 년 전부터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급증하였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은 교내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수차례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우수 한국어교육기관에 주는 상도 여러 번 수상하였다. 그러나 한국어학당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새 건물을 지으며 발전하는 동안, 강사들은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묵묵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입이 없는' 존재들로 취급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만성적 저임금 상태는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생존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 교육계 전반에 영향을 주어 전체 한국어 강사들을 열악한 상황으로 밀어 넣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노조가 설립 설립되기까지 이렇게 싸웠다

2019년 6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노조가 설립되었다. '민주노총 대학노조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지부' 이것이 우리 노조의 이름이다. 노조 설립이라는 높은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크고 작은 고비를 넘어왔다.

출발은 정년 문제였다. 법적 정년이 연장되었음에도 학교 측은 수십 년 전 자의적으로 만든 강사규약을 내세워 정년 연장을 거부하였다. 강사들은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고용 형태가 무기계약직이며, 당연히 정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교 측에 정년 연장을 요구한 끝에 법적 정년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이후 강사들은 연차 수당 미지급 문제를 제기하였고, 노동청 진정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 2021년부터 연차 수당을 지급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어학당 강사들이 무기계약직 노동자임이 분명해지고, 매년 관행적으로 작성하던 계약서를 따로 쓰지 않게 되었다.

'정년 연장과 연차 수당 투쟁'에서 강사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마침내 노조의 설립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어학당에서 30여 년을 근무한 한 강사는 '내가 퇴직할 때까지 어학당에 노조가 생길 줄 몰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노조 설립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강사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입'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노조가 설립되기까지의 투쟁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노조 설립 후 처음으로 2020년 임단협을 통해서 10여 년간 동결에 가까웠던 임금도 약간이나마 상승하게 되었고,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등 강사들의 복지 및 처우 개선 그리고 노조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하나의 힘'으로 단결하였다

우리 사회 전반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내고 있지만, 한국어 강사들에게도 지난 3년은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유학생 수가 줄어들고 대면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강사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로 생활을 꾸려가야 했다. 강사들의 시수를 보장하고자 수업 당 학생 수를 줄인 타 대학과는 달리 연세 한국어학당은 수업 시수를 보장하려는 어떠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수익을 올렸으나 다른 분야에서의 손해를 핑계로 강사들의 임금인상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줄어든 시수로 인한 어려움은 온전히 강사들만의 몫이 되었다.

노조는 2022년의 임단협 투쟁을 통해서 강사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학교는 그간 강의 외에 진행되는 여러 업무에 강사들을 무상으로 동원하였다. 수십 년간 진행되어온 수업 전 교안 회의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노조가 합당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자 어학당은 교안 회의 폐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그리고 시험 출제와 채점 등 강의 시간 외에 수행되는 노동을 '근무시간 외 노동'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자, 학교는 시험 방식을 온라인으로 바꾸고 강사들을 시험에서 배제해 버렸다. 어학의 기본인 말하기 시험을 없애고, 이미 치러진 중간시험과 수행평가 점수를 폐기하는 등 교육기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태는 학생들의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오랜 명성과 신뢰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강사들은 학교의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에 반성을 촉구하고, 강사들의 권리와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에 나섰다. 출퇴근 시위와 농성, 파업 등의 투쟁이 계속되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피켓을 들고, 퍼붓는 빗속에서 현수막을 걸고 학교의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노조 집행부는 한복을 입고 세종시에 있는 교육부 앞으로 찾아가서 우리의 투쟁을 알리기도 했다. 연세대의 개교기념일에는 상복을 입고 총장공관 앞으로 행진을 하기도 했다. 기념식 파티가 진행되는 담장의 밖에서 강사들이 애타게 외치는 목소리가 그분들에게 들렸을까?

사실 '투쟁'이라는 말도 '파업'이라는 말도 강사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강사들이 낯선 단어에서 느껴지던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 서 있는 '동지'들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파란색 노조 조끼를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집회장에 나온 날. 강사들은 서로의 밝은 얼굴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면서 '우리'의 힘을 확인하였다.

우리의 투쟁은 외롭지 않았다. 음료수를 전해주며 격려하시는 행인들, '어떻게 선생님들의 투쟁을 도울 수 있냐'는 학생들의 말 한 마디가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외국인 학생들도 '우리는 정당한 임금을 받는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다' '우리 선생님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기자회견(2022.5.13.)과 지지 성명을 통해 응원을 보내주었다. 외국 대학교의 한국어학과 교수님이 지지를 표명해 주시고,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시던 미화방호 노동자분들께서도 함께 우리의 구호를 외쳐 주셨다. 타 대학 어학당 선생님들의 지지와 연대의 발언들은 빗물처럼 마음에 스며들었다. 지치지 않는 강사들의 투쟁 그리고 많은 지지와 연대에 힘입어서 투쟁 89일 만에 임단협은 타결에 이르게 되었다.

2022년 임단협의 승리는 모든 순간순간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이다. 108명 조합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격려하고 소통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 왔다. 유튜브(<연대하는 한국어 선생님들>), 인스타그램(@yskliunion)을 통해 어학당의 활동을 홍보하고, 집회 때마다 다양한 기획행사가 진행되는(조끼 꾸미기 대회, 백일장 등) 시위의 현장은 축제에 가까웠다. '혁명을 하려거든 웃고 즐기며 하라'는 로렌스의 시 구절처럼, 한국어학당의 시위는 강사와 학생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하는 즐거운 공동체의 장이었다.

한국어학당 노조가 이렇게 낙관적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자신감과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사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의 마음을 보태 주신 분들 덕분이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할 말'을 한다

2022년 임단협이 타결되었지만 한국어 교육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강사들을 옥죄는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 열악한 근로 여건과 불안정한 지위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 '강의외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안정된 수업 시수가 보장되지 않아 다음 학기의 생활을 걱정해야 하고, 수업 시간 사이에 발생하는 대기 시간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산적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생계가 꾸려지지 않는 급여를 지급하면서 강사들의 열정만 강요하는 노동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사들의 투쟁은 강사들의 권익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학생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한국어학당이라는 공간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다. 한국어학당은 수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언어문화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풍부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창조적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어학당들이 학생들을 인격으로 대하는 품위 있는 교육기관,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임금을 주는 직장, 세계인들의 신뢰하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어 교육계의 발전이 강사들의 '피, 땀, 눈물'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대우와 지위의 개선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앞으로 한국어 교육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대우와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도 강사들은 이 직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보람, 학생들 대하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라고. 어느 선배 강사는 이런 말을 하셨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내 딸이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동료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가 뜯어말렸다. 그런데 이 일은 너무나 값진 일이고, 나는 이 일이 자랑스럽다. 내 딸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라고 격려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사랑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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