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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구진 산성’이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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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구진 산성’이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져

낙동강 동쪽에 있어 삼국시대 방어 거점 역할 추정

비화가야의 토기편 출토

창녕 비화가야 세력에 의해 축조된 성벽

경남 창녕군은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구진 산성이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졌다.

구진 산성은 낙동강 동안에 우뚝 솟아있는 구진 산(해발 308미터) 정상부를 감싸는 태뫼식 산성(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산성)이다.

산성의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9개의 진을 펼쳐 왜군을 물리쳤다고 해 붙여진 것으로,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구진산성 전경ⓒ창녕군

구진 산성은 지리적으로 낙동강 동쪽에 있어 삼국시대 방어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접한 신라의 성산산성, 고곡산성과 함께 고대 창녕의 낙동강변에 대한 방어체계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보존상태는 임야로 관리되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묘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8년~2019년 정밀지표조사와 2020년 시굴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로 토제(土堤)를 활용한 가야시대 토목기술이 확인됐고, 성벽 내부에서는 5세기대 비화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돼 창녕 비화가야 세력에 의해 축조된 성벽인 것이 밝혀졌다.

창녕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더불어 비화가야의 종합적인 복원을 위해 생산유적, 성곽 유적 등 여러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진 산성 발굴조사는 비화가야 역사 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비지정 가야유적 조사연구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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