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8일. 뜨거웠던 천막농성장을 뒤로 하고 지난 800일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싸워준 아시아나케이오 동지들과 연대 동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일터로 돌아간 지 두 달여 흘렀다.
낯선 현장, 모든 게 어색하기만 한 시간은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새벽 첫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함께 싸웠던 동지들을 남겨둔 채 홀로 복직하게 돼 마음이 무거웠다. 천신만고 끝에 현장 복직은 이뤘지만, 아직 법적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터 회복' 요구했더니 '일터 지옥' 만든 회사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닫히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렸던 공항·항공산업 노동자들은 일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부쩍 높아졌다. 내가 일하고 있는 케이오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부터 회사는 마지막 무기한 무급휴직자에 대한 복직, 희망퇴직자에 대한 리콜(재입사)을 단행했다. 또한 신입사원과 아르바이트까지 모집해 부족한 인원을 채우려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섰던 회사는 수요회복 이후에도 고용회복 노력에는 미적지근했다. 결국, 현업 복귀한 인원들 가운데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노동자는 단 한 명뿐이다.
복직한 두 달 새 내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모습은 그랬다. 마른 걸레 쥐어짜듯 하청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알뜰히 쥐어짜 흠뻑 땀에 절은 작업복은 마를 날이 없었다. 이렇듯 '일터 회복'이라는 이름 뒤에는 '일터 지옥'이라는 끔찍한 현실이 감춰져 있다.
회사가 코로나19 위기를 틈타 민주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휘두른 정리해고의 칼날은 안 그래도 취약한 하청노동자들의 권리 상태를 더욱 후퇴시켰다. 복직한 첫날부터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복직 투쟁 시기 따뜻한 연대를 통해 실감했던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의 힘을 현장에서도 하루빨리 되살려야겠다는 다짐이 점점 깊어만 갔다.
부당해고 원직복직자에게 내민 재입사 서류
물론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역시나 복직 첫날부터 회사는 어이없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을 꾸몄다. 아시아나케이오 관리자는 내가 첫 출근을 하자마자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근로계약서, 입사지원서, 신규채용자를 위한 안전보건교육 관련 서류였다.
그리고 내게 부여된 사번도 문제 중 하나였다. 나는 2014년 6월 5일에 아시아나케이오에 입사했고 사번은 22301이다. 2020년 5월 11일 회사의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연이어 부당해고라고 판정·판결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부당해고를 철회하지 않았고, 원직복직을 하라는 내용증명서 한 통으로 해고 노동자들을 우롱했다. 급기야 복직 첫 날부터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라면서 내게 또 하나의 사번을 내밀었다.
회사가 내게 부여한 새로운 사번은 22708이다. 800일 가까운 복직투쟁 끝에 현장으로 돌아온 나에게 새로운 사번을 교부하고 신입사원으로 일하길 종용하는 회사의 태도에 다시금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아시아나케이오에서 근무한 지 햇수로 9년 차다. 그런데도 회사는 나더러 신입사원 대우를 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는 엉터리, 깜깜이 인사고과를 매겨 표적해고를 밀어붙였던 회사가 '부당해고'라는 법적 판단은 물론, 원직복직한 나의 근속마저 전면 부정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회사는 모순덩어리인 자신의 태도를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다. 벌써 복직 석 달째이지만 나는 정식사원의 월급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를 지급받고 있다. 한사코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은 지금 당장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직 노동자의 지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코로나 정리해고 2년 5개월, 이제는 끝내야 한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 1심에서 거듭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지만, 회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 2심까지 갔다. 그 선고일(중노위 재심판정 취소 행정소송 2심 판결 선고기일)이 9월 28일이다.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했던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세 명의 해고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정년을 맞이했고 끝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모든 책임은 금호문화재단 전 이사장 박삼구가 져야 한다. 아시아나항공기 청소노동자 김계월의 사번 22301을 제대로 부여하고, 거리에서 정년을 맞은 해고 노동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제라도 진정한 사과에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억울하게 부당해고 되어 2년 5개월 동안 고통에 시달렸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온전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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