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했음에도 '프리랜서' 신분으로 인해 고용 불안 및 퇴직금 미지급 등의 피해를 겪어온 스포츠산업 노동자들이 프로스포츠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 공동청원에 나선다. 사측이 책임 회피를 위해 산업 종사자를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위장' 계약하는 스포츠업계 노동 현실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4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프로축구 유소년 지도자 등 스포츠산업 노동자와 함께 112개 프로스포츠 기업 및 69개 체육단체에 대한 근로감독 공동청원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회사의 구체적 업무 지시를 받음에도 근로자가 아닌, 3.3%의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사업소득자로 계약한 스포츠업계 종사자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근로자지위확인 진정 참여자도 모집한다.
권리찾기유니온 하은성 노무사는 "프로스포츠 업계 종사자는 예외적으로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로 계약할 수 있으며, 업계 특성상 한정된 취업시장으로 인해 사측이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등 만성적인 고용불안 시달린다"라며 "기업들은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유소년지도자를 비롯한 선수단 업무 종사자들을 사업소득자로 위장 계약해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등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스포츠산업 노동 현황을 진단했다.
프로스포츠 기업들이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시나 지방노동위원회의 '노동자성' 인정 판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권리찾기유니온 정진우 사무총장은 "유난히 스포츠 산업에서 대기업들이 '노동자성' 판단을 무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스포츠산업 노동자와 권리찾기유니온이 국정감사, 집중기획 근로감독 실시 등 공개적인 활동에 나서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4년간 부산아이파크 유소년 감독으로 일해온 최우정 씨(가명)는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관련 기사 ☞ 14년 일한 감독에게 '프리랜서'라며 퇴직금 안 준 부산아이파크 축구단 ) 계약서상 업무 외에도 구단의 지휘·감독을 받아 상시로 업무를 수행했으나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지난 6월 부산고용노동청 북부지청은 최 씨에게 미지급한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는 최 씨가 계약서상 업무인 유소년 지도뿐만 아니라 구단이 지시하는 축구교실 등 사용자가 업무 내용을 결정했다는 점을 고려해 최 씨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부산아이파크 축구단을 운영하는 HDC스포츠에 퇴직금 미지급 등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을 시정하라는 행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6년간 전남 드래곤즈에서 유소년지도자로 근무한 현성빈 씨(가명) 또한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현 씨는 "아이들이 지내는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관리를 했고, 모든 일과는 구단에서 정한 스케줄에 따라 이루어졌다"라며 "그러나 구단 측은 구단이 업무를 강요한 적 없고, 계약서상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현 씨를 비롯한 전남 드래곤즈 소속 코치진은 지난 3월 근로자지위확인 진정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사건을 대리한 하 노무사는 "업무 내용도 사용자가 모두 결정하고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들을 사측 지시로 수행해왔다"라며 그럼에도 "지노위는 구단이 사업소득세 공제하고 임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을 통상의 근로자와는 지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유소년지도자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등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프로스포츠 산업 내 사측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는 주장이다. 전남드래곤즈 유소년지도자들은 재심을 신청해 14일 중앙노동위원회 심문회의를 앞두고 있다.
서울지노위의 근로자위원인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 또한 이러한 판단에 대해 "노동위원회·노동청·법원 등이 변화하는 노동환경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의 노동자 기준만 가지고 판단해서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라며 "새로운 노동시장에 맞춰 새로운 접근법을 가져야 스포츠업계 노동자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스포츠 업계 또한 '위장' 프리랜서 계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기 인터넷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등에서 프로 구단을 가진 DRX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감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으나 중앙노동위는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e-스포츠 구단 소속 코칭스태프의 노동자성이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DRX 측 또한 중노위의 판단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까지 간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DRX 사건을 대리한 이언 변호사는 "전성기가 짧은 e스포츠 업계의 특성상 회사가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소송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 당사자들이 나서기 꺼린다"라며 "선수들을 포함해 선수 출신의 코치진 등까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스포츠 업계에서 굉장히 자주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프로스포츠 산업이 기존 노조나 '노동자성'이 금기시되는 문화를 탈피해야 전체 스포츠 산업 발전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는 "고액 연봉 선수 중심으로 프로스포츠가 운영되지만 그런 선수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유소년 지도자부터 트레이너 정비사 등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고유 역량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라며 "스포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프리랜서라는 교묘한 장치에 은폐되면 스포츠 전체가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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