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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은 총체적 인권유린"…35년만의 국가 진실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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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은 총체적 인권유린"…35년만의 국가 진실 규명

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확인된 사망자도 100여명 늘어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린 형제복지원 사건이 35년 만에 결국 정부의 방관으로 발생한 인권유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39차 위원회를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5년 만에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의료문제 및 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등을 밝혀냈다.

▲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로 접수한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5월 조사 개시 이후 1년 3개월 만에 첫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형제복지원 설치와 운영에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확보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수사‧공판 기록과 부산 각 경찰서 소장 ‘즉심사건부’, ‘구류자명부’, ‘소년범죄사건처리부’, 각 시설별 아동카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카드 등을 비롯해 보안사 문건, 정신과 약물 투입 목록 등을 입수해 진실을 밝혀냈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는 2021년 3월 11일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를 기각하면서 밝힌 “단순히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특수감금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만을 문제로 삼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단편만을 보는 결과”라며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으로 명예회복과 정부 조치를 통해 피해자 아픔이 치유되어 사회 통합 실현을 기대한다”고 한 점에 따라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번 진실규명에서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1975년 12월 15일 제정)의 위헌‧위법성도 확인했다.

해당 훈령은 부랑인이라 지목된 사람을 어떠한 형사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군‧구청과 경찰이 합동으로 구성한 부랑인 단속반으로 하여금 수용시설에 보내 기한의 정함이 없이 강제수용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내무부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최종 657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수치이며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응급 후송 중 사망(DOA, Dead On Arrival) 등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망진단서도 조작한 것으로 확인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1984년에는 최대 435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의 사망자 수는 일반 사망보다 높게 나타났다. 조사 결과 1986년 한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당시 일반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0%였다. 결핵사망률은 더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29.2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 형제복지원 수송차량. ⓒ형제복지원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 정인데 이는 1년 동안 342명(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 총 395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에는 정신과 전문의약품으로 정신분열증과 양극성장애 치료제인 할로페리돌, 간질성 경련 및 부정맥치료제인 디펠과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바리움, 달마돔 등도 포함돼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보안사령부 문건을 확보해 보안사가 형제복지원을 집중관리한 사실도 확인됐으며 국가안전기획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도 최초로 공개됐다.

또한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 위반자를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사실도 밝혀냈다.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한 대가로 자립적금을 형제복지원이 미지급하거나 착복한 내역도 확인됐다.

이번 진실규명에서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보건사회부가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하여,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냈다.

또한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해야 하고 국회는 2022년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관계기관에 이번 권고사항을 통지하고 이번 진실규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실규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단계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3건의 시설 강제수용 신청 건이 접수되었으나 당시에는 시설수용 문제를 ‘국가범죄’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임을 종합적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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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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