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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생태계를 위한 정책, '리더'보다는 '피더(feeder)'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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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생태계를 위한 정책, '리더'보다는 '피더(feeder)'가 되어야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기업가적 재순환(entrepreneurial recycling)이 이루어지는 지역과 장소의 중요성

계속되는 경제 불확실성과 고용불안에 취업보다 창업을 선택하는 2030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외부 환경 요소 뿐 아니라 대기업 조직의 경직성을 회피하고 혁신적이면서도 유연한 워라밸 을 원하는 청년세대의 선택이 영향을 주었다.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ICT의 힘을 받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벤처붐이 일었다면 2020년 전후 지금 다시 스타트업 열풍으로 제2 벤처붐이 도래했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새로움(novelty)' 창출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본래 창업에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주로 새로운 기업 형성을 통해 기업가정신이 발현되기 때문에 창업과 창업가가 핵심 연구대상이다.

과거 기업가정신 연구는 창업가 개인의 특성, 창업의 단계별 성장과정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점점 창업의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창업 환경 및 생태계, 지원 시스템, 기업가정신 정책 및 프로그램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지역적 측면이 중요해진 것이다.

기술 발달로 많은 부분에서 거리의 제약이 극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들이 여전히 테헤란밸리, 판교와 같은 특정 장소를 선호하고 있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 혁신지역인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 중 하나가 지속적인 창업과 성장의 선순환이고 이를 위한 생태계 조성이 지역의 혁신에 있어 핵심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창업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이를 통해 혁신적 스타트업이 성공하면서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식과 혁신이 지역에 누적되어 순환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창업생태계에서 기업가적 재순환(entrepreneurial recycling)의 중요성

창업생태계에 대한 관심 증가로 학술적 측면에서는 '기업가적 생태계(Entrepreneurial Ecosystems)'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창업의 지역성과 공간성,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해지면서 경제지리학과 공간경제 분야에서 창업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많아진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업가적 생태계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개인적 차원에서 기업가, 인재, 롤모델(멘토) 뿐 아니라, 조직적 차원에서 정부 및 공공지원기관, 대학, 지원서비스, 금융기관, 성공한 스타트업, 기존 (대)기업, 물리적 하부구조 등이 중요하다. 또한 제도적 차원에서는 창업에 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나 지역에 뿌리내린 기업가정신의 역사와 같은 문화적 요소, 창업 지원 제도나 규칙, 글로벌 접근성을 포함한 시장 기회나 수요 등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 그림. 창업생태계 구성요소와 프로세스 (출처: 구양미, 2022, Entrepreneurial Ecosystems(기업가적 생태계) 개념과 시사점,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여기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이 '기업가적 재순환(entrepreneurial recycling)' 과정이다. 사람, 자본, 아이디어가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순환하는 것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 생태계에서 또 다른 스타트업이 창출되고 성장할 수 있다.

창업가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멀지 않은 곳에서 목격해야 창업의 길을 선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있는 지역에서 많은 창업이 이루어진다. 특히 한번 이상 연속적으로 창업하는 기업가들은 롤모델에 그치지 않고 다른 창업가들에게 실질적 조언을 하는 멘토가 되거나 엔젤 또는 벤처자본가로서 실제 투자자가 되기도 한다.

성공적 롤모델의 존재,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실질적 재투자로 이어지는 멘토십이 지역에서 작동하는지가 결국 지역 간 창업 환경, 기업가적 문화의 핵심적 차별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한편 기존 기업의 성공적인 엑시트 혹은 실패 이후에 해당 기업을 떠난 유능한 인재들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하거나 스케일업 또는 기존 기업에서 다시 일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블랙베리(Blackberry) 사례나 핀란드의 노키아(Nokia) 충격 이후 기존 기업에서 일하던 기술 인력들의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가 이를 보여주는데, 단순히 스타트업이 증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경제적 토대를 바꾸는 구조재편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이 성공한 스타트업과 창업가 뿐 아니라, 실패한 기업과 창업가 역시 창업생태계의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창업생태계 정책 : 리더(leader) 보다는 피더(feeder)로서

이와 같이 창업에 있어 지역과 장소가 중요해졌다는 것은 정책 개입의 가능성을 높였다. 정책을 통해 창업가들에게 유리한 지역과 장소를 조성하면 성공적 스타트업의 창출과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성공 이후 전세계적으로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이를 모방하는 정책을 펼쳤고, 수많은 ○○밸리, 실리콘△△이 탄생했다. 그러나 지역과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정책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고 기업가정신 전문가인 다니엘 아이젠버그(Daniel Isenberg)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2010)에 실린 글에서 성공적 창업생태계를 위한 9가지 처방을 제시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실리콘밸리 모방을 중단할 것'이고, 두 번째가 '각 지역의 여건에 맞는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다.

또한 신생벤처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오히려 자금지원을 신중히 할 것을 강조하고, 인위적인 클러스터의 구축 보다는 유기적인 성장을 지원할 것을 주문하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창업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 개입은 물론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물리적 공간 제공, 자금 지원에 치중된 일방통행식 정책은 건강한 창업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창업에 우호적인 환경, 실질적인 창업 교육, 기업가 네트워킹과 협업 커뮤니티 지원, 멘토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즉 기업가적 재순환 과정이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한 차원 높은 창업생태계 정책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창업생태계를 주도하거나 성장을 이끌어가는 선도자(leader)가 아닌, 생태계에서 자연발생적인 네크워크와 커뮤니티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자(feeder)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훨씬 더 어렵지만, 창업생태계는 정책에 의존적이지 않고 자립·자생해야 한다는 점은 모든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 저자소개

구양미 교수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교수로 재직중이다. 클러스터와 산업입지, 창업생태계, 인구고령화와 산업도시 쇠퇴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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