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시로 쓰는 민간인 학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부쳐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부쳐

비릿비릿한 전두환 신군부의 총검에

피의 기억이 아직도 훈장처럼 번득이던

강토와 산하가 온통 군홧발 아래였던

1981년, 8월 16일 일요일 새벽 01시 30분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월곶3리

육군 제99여단 168연대 2대대 7중대

일명 달월부대 1소대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

명치 끝 상방 1cm 좌방 3cm 지점에

60도 아래로 꺾여 지나간 관통총상을 입고 숨진

그러나 청천벽력 자살로 망연자실 자살로

군조작사 군조작사 군조작사 당한

군번 81-02769 22세 고 윤병선 소위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수십 년 목구멍에 얹혀있던 한을

끝내 삭히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부모님은 가루가 되어 땅속에 묻히셨고

남겨진 유일 유족 친동생 윤 씨는

40년째 해원의 날만을 염원하고 또 염원하며

40년째 진실규명 투쟁에 앙가슴을 졸이는 윤 씨는

그도 어느덧 60살이 된 나 윤중목 씨는

두 눈 부릅떠 뇌성처럼 꾸짖어 명하노니

꾸짖고 꾸짖고 꾸짖어

명하고 명하고 명하노니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대한민국의 경찰은 들으라!

대한민국의 군대는 들으라!

미합중국의 주둔군 또한 들으라!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오름 오름 제주의 한라산에서

이어 이곳 여순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잇닿은 보성 고흥에서

백운산 지리산 큰 산 아래 또

광양과 구례에서

그뿐이던가

대전 골령골에서 청주 분터골 도장골에서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산청 함양에서 곧바로 넘어 거창에서

6·25전쟁 전후 이 형극의 땅 반도의 수수 많은 곳에서

그리고 80년 마침내 광주에서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모의했던 학살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수행했던 학살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자행했던 학살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조작했던 학살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은폐했던 학살

당신들 못되고 못난 손으로 인멸했던 학살

숱하디숱한 학살 학살 학살 학살

콸콸 뿜어나오는 피에 땅껍질이 물컹해졌던 학살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환하니 해밝은 대낮에건

천지사방 컴컴했던 한밤에건

어질 량 자 양민들 등에다 대고 배에다 대고

꿈벅꿈벅 그 순하고 겁먹은 눈동자에다 대고

무참히 무참히도 총을 갈긴

무참히 무참히도 대검을 꽂은

감히 국가라는 이름의 당신들 당신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한집안 식구를 마당에 전부 끌어내 찌르고 쏘고 또 쏘고

그리곤 우물 옆에 거적때기로 둘둘 말아놓은 시신들

한동네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지서 공터에 다 모아다

다시 골짜기로 끌고가 집단총살 암매장한 시신들

장작 무더기에 층층이 눕혀서 기름으로 불태운 시신들

당신들 국가폭력의 광포한 놀음질에

처참하게 절통하게 도륙이 난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죽인 자도 죽은 자도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던 인간사냥

그 개죽음 떼죽음 그 개죽음 떼죽음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시신 더미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도 엄마를 보고도

큰누나와 둘째 형 이쪽 또 외삼촌을 보고도

남편을 보고도 아아 자식새끼를 보고도

장성한 자식새끼 쭉 뻗은 눈 뜬 시체를 보고도

나는 이 사람 모르는 거요

나는 이 사람들 모르는 거요

얼굴을 돌리며 쉬쉬쉬 숨겨야 했던 죽음

이내 떨어져 내리는 뚝뚝 피눈물을 감춰야 했던 죽음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사명을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소임을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본분을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도리를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철학을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정신을

국가가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양심을

그 음흉스럽고 간악스러운 웃음 밑에

모조리 짓뭉개고 팽개쳤던 당신들 당신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대한민국의 경찰은 들으라!

대한민국의 군대는 들으라!

미합중국의 주둔군 또한 들으라!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긴긴 세월 삭히고 삭힌 진혼의 넋두리마저

독사 같은 무리들이 사방 둘러친

높다란 담벽에 걸려 후두두 바닥으로 질 적마다

고인은 고인들대로

또 유족은 유족들대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죽어야 했던 죽음

그러나 숨골을 후비며 스미는 한 맺힌 통곡 소리에

아직도 잠들지 못한 죽음

아직도 죽지 못한 죽음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낡고 닳은 위패 앞에

유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늙고 주름진 얼굴 앞에

엎디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오직 뼈로 우는 고인 앞에

창자로 우는 유족 앞에

조아려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바로 당신들 못되고 못났던 그 손으로

고인과 유족이 쏟은 피와 눈물과 한을 꾹꾹 찍어

써 내려가는 한 자 한 자 속죄와 해원의 언어가

백 장 천 장 빼곡하게 채워질 때까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국가가 정녕코 국가다워야 하는 국가의 이름으로

당신들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가는 들으라!

▲ 2021년 6월 29일,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 본회의 의결 장면. 이날 오후에 안건 상정된 법안은 재석의원 231명 중 찬성 225, 기권 5, 반대 1표로 통과됐다. Ⓒ소병철 의원 시각자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