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하반기 국회 원(院)구성 협상과 관련, 더불어민주당이 기존 합의에 따라 법사위원장직을 양보하는 대신 사법개혁특위 구성에 협조하라는 제안을 내놓은 데 대해 국민의힘은 '국회의장·법사위원장 먼저 선출하자'는 역제안을 들고 나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법사위를 반환할 생각이라면,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과 법사위원장을 먼저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 동시 선출로 합의 이행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반면 민주당의 '사개특위 구성' 제안에 대해서는 "원구성 협상에 '검수완박 협상'을 끼워팔기 하고 있다"고 거부의 뜻을 명백히 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검수완박 악법 파기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여야 합의가 국민(뜻)보다 우선일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권 원내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자꾸 국회의장단을 선구성하자는 제안을 했고, 법사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기겠다는) 합의 정신을 지키겠다고 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진정성이 있다면 우리 제안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합의대로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는 데에 동의한다"며 "그 대신 국민의힘도 양당 간 지난 합의 이행을 약속해 달라"고 했었다. 이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는 대신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축소 방안 동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 후속 입법을 위한 국회 사법개혁특위 구성 협조 등을 촉구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이날 권 원내대표의 '역제안' 시점까지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권 원내대표는 전날인 2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검수완박에 반대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제기했는데 그 부산물인 사개특위를 어떻게 받느냐", "사개특위를 받고 헌재 제소를 취하해달라는 게 (민주당의) 2가지 조건인데 그건 검수완박을 추인하는 것"이라면서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은 불변"이라고 했었다.
민주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국회 정상화를 대다수 의견으로 채택해 박홍근 원내대표가 협상을 제안했는데 이 제안을 신중히 검토해 보지 않고 거절하는 모습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과연 원구성, 국회 정상화를 고민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우 위원장은 "야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양보를 쉽게 거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 권 원내대표는 너무 고압적이고 일방적"이라며 "애초부터 국회 정상화에 의지가 없던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우 위원장은 권 원내대표의 필리핀 특사 일정 등을 거론하면서 이같이 비판하고 "지금 국회가 정상화되고 있지 않은데 집권당 원내대표를 특사로 임명하는 대통령은 뭔가. 대통령도 국회 정상화에 관심 없는 것 아닌가"라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겨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후 국민의힘의 '국회의장-법사위원장 선(先)선출' 제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게 받을 (만한) 것이냐"며 "벽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강한 불쾌감을 보였다. 다른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기존 입장에 비춰보면 권 원내대표 제안은 수용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박 원내대표는 앞서 비대위 회의에서는 "통 크게 양보한 야당에게 일방적 굴종만 강요하는 건 협치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며 "공표한 대로 오전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국민의힘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경고했다. 박 원내대표는 "몽니와 억지로 국회 정상화를 거부한다면 우리로서는 민생·경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는 국민 명령을 무겁게 새기며 다수당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의 이같은 말은, 국민의힘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의장단 선출에 나설 수 있다는 압박이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아침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전까지가 시한"이라며 "(답이 없다면) 그렇다면 저희 민주당이 그런 상황에 대응한 대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계획이 있지만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요구하고 국민의힘이 거부하고 있는 사개특위 구성은, 지난 4월 22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의 이른바 '검수완박 중재안'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 중재안에는 △법률안 심사권을 가진 사개특위를 구성하고 △구성은 13인으로 하되 위원장은 민주당이 맡으며 △특위에서 중대범죄수사청 등 수사 체계 전반에 대한 법 개정 작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은 기존 원구성 합의가 존중돼야 한다면 여야 원내대표가 서명한 이 중재안도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이미 중재안은 자신들 측에서 파기를 선언한 만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개특위가 사법개혁 관련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면, 해당 분야를 관할로 하는 법사위의 권한이 그만큼 줄어들게 돼 사실상 법사위 권한을 제한하는 효과가 나게 된다.
민주당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수정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즉각 시행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면 차기 국회(22대 국회)에서부터 시행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열려 있는 입장"(진성준, MBC 라디오 인터뷰)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기왕 법사위까지 양보한 판에 원구성부터 마무리짓고 사개특위 등 문제는 추후에 다시 얘기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름대로 지도부도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원구성을 하는 데 있어서는 법사위원장을 넘겨주기로 한 이상 그 이외의 조건들은 부대조건으로 걸지 않는 것이 저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며 "빨리 원 구성을 해야 된다. 그리고 사개특위 구성에 관한 건은 당연히 국민의힘이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원구성 문제와 연계할 성질은 아닌 것 같다고 저는 생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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