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메지골에 부는 바람
원추리 꽃 곱게 피던 그날
메지골의 7월을 그대 아시는가?
해질녘까지 총성과 비명 아우성치던
살육의 골짜기 메지골을 아시는가?
주검은 흙 되어 꽃으로 피어나도
피맺힌 내 영혼은 왜바람 되어
살육의 골짜기 서럽게 떠돌다가
통곡의 소낙비 되어 내린다네.
사람들이여,
부디 다투지도 물어보지도 말아다오.
산야에 피어나는 붉은 꽃 푸른 꽃
누가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지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땅의 생명들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로 자유로울 때
나, 비로소 꽃바람 되어 돌아오리.
메지골에 무심히 피고 지는
풀, 꽃, 잎사귀들 어루만지는
명지바람으로 돌아오리.
*왜바람: 방향 없이 이리저리 마구 부는 바람
*꽃바람: 봄에 꽃이 필 무렵 부는 바람
*명지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서산시 성연면 메지골은 6.25 전쟁 시기에 보도연맹, 인민군 부역자 등의 이유로 민간인들이 집단학살을 당한 곳이다. 성연면에서 5대째 살고 있는 김 아무개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경 트럭을 타고 온 경찰이 노끈으로 묶인 사람들을 줄줄이 메지골로 끌고 들어 간 후 하루 종일 총소리가 났다고 한다. 사건 당시 유해는 대부분 유족이 수습했지만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유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희생자 중에는 좌익 경력의 전향자도 있었지만, 보도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입했거나 자신이 가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일반 농민, 심지어 독립운동가도 있었다고 한다. (출처: 서산시대(2019.08.02.)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