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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과 2030 여성들의 '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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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과 2030 여성들의 '조용한 혁명'

[창비 주간 논평] "초유의 성별 투표 현상, 정치인 간담 서늘하게 한 새로운 지각변동"

지난 대선에서는 투표의 향방이 유권자 성별에 따라 뚜렷하게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이 선거사상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은 이미 여성 대통령을 당선시킨 경험이 있으며, 여의도 정치에서도 여성 대변인, 여성 당대표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전환을 만들어낸 투표를 '종이 돌'(paper stones)에 비유했던 정치사회학자 쉐보르스키(A. Przeworski)의 표현을 잠시 빌려보자. 소수의 유명 여성 정치인이 '돌을 맞는' 위치에 있었다면, 다수의 무명 여성 유권자들은 '돌을 던지는' 주체라는 점이 큰 차이다. 비록 청년 여성들이 선호한 후보가 승리하지 못했지만, 초유의 성별 투표 현상은 제도권 정치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새로운 지각변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과정 전후로 두 가지 계기가 눈에 띈다. 첫 번째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이다. 정부 예산의 0.24%밖에 쓰지 않는 작은 부서, 지난 20여년간 여러차례 존폐 논란에 직면했던 여성가족부 문제가 2022년에 특히 젊은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뇌관이 된 맥락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안전 문제의 부각이다. 대선 직후 스프레이, 경보기, 가스총 등 호신용품 주문량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한 후보의 당선을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안전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와 젠더 폭력, 이 두가지는 '안티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둘러싼 이른바 젠더 갈등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인터넷과 SNS를 달구었던 키보드 전사들의 논란이 선거판으로 옮겨지면서 증폭된 것이다. 혐오의 정치, 젠더 갈라치기에 기댄 정치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만, 현실적 표 계산의 저울질은 수면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티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의 대립, 이대녀와 이대남의 반목처럼 표면화된 젠더 갈등의 겉모습만 주목한다면 20대 대선에서 던져진 '종이 돌'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닐까.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2001년 이후 지난 20년간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일단을 보여주는 기초자료(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각년도 결과)로 20대 여성과 남성의 경제활동 변화를 살펴보자. 2001년 전체 한국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9.4%였고, 2021년에는 53.8%로 증가했다. 20년 동안 4.4%의 증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밋밋한 변화로 보인다. 하지만 2030 연령대의 경제활동추세에서는 흥미로운 변곡점들이 발견된다.

2001년 당시 2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1.2%로 20대 여성(59.7%)을 확연히 앞질렀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계속 늘어나면서 2012년에 이르면 20대 남녀가 거의 같아진다(남성 62.8%, 여성 62.9%). 이후 20대에서 경제활동의 성별 차이는 없어지고 오히려 여성이 소폭 역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2021년에는 20대 여성(63.9%)이 20대 남성(60.4%)보다 더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두번째 변곡점은 2019년이다.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이 꾸준히 증가한 끝에 2019년 처음으로 20대 여성에 근접하며(20대 여성 64.3%, 30대 여성 64.1%), 이후 30대 여성의 활발한 경제활동 추세는 유지되고 있다. 20대에 열심히 저축해서 30대에는 안정된 결혼생활로 접어드는 이른바 결혼퇴직, 출산퇴직의 생애경로가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경제활동참가율 추이는 지난 20년의 변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혹자는 20대 남성의 고통을 강조하며 '구조적 성차별이 사라졌다'는 주장을 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취업이 곧 20대 남성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근거가 부족하다. 30대 남성의 경제활동이 지난 20년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3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1년 95.0%에서 2021년 90.7%로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20대 남녀나 30대 여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다. 단순한 경제활동참가율 수치만으로 고용의 질까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성별에 따라 생애전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즉, 20대 남성은 30대가 되면 혹시 달라질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만, 20대 여성들은 다가오는 30대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 3월 10일 자 KBS <특집 KBS 뉴스광장> 화면 갈무리.

최근 연구과정에서 인터뷰했던 2030 여성들의 삶 이야기는 이러한 통계수치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찾고 있던 22세 여성은 '황혼결혼'이 꿈이라고 말해서 연구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여성의 설명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경제적 여건을 갖추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고, 또 한때의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려면 마흔, 쉰이 지난 후 천천히 결혼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한국의 부모들은 딸 아들을 가리지 않고 최선의 교육투자를 해왔으며, 자녀들이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기를 원한다. 성장한 딸들은 자신의 능력을 살려 취업해 경제적 독립과 경력 축적을 이루길 원한다. 황혼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생애경로는 후기청년기 연장과 비혼 여성가구수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혼적령기가 흐려지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혼자 살더라도 안전한 사회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결국 젠더 폭력이나 범죄로부터 안전한 일상에 대한 관심은 경력 추구, 독자적 삶을 원하는 여성 시민들의 필요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육아휴직 후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30대 워킹맘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다가 아이를 낳고 1년 후 복직한 여성이었다. 좋은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느냐며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막상 복귀 후에 부딪친 현실은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그걸 어떻게든 뛰어넘으려고 야근도 하고 회식에도 참여하면 '저 여자는 왜 아이를 버리냐' '엄마는 참 대단하지만 아이가 불쌍하다'는 식의 비아냥을 듣는다고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직장은 다니지만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워킹맘들을 많이 만났다.

결국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늘어났지만, 그 의미를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만 취급하는 풍토는 바뀌지 않고 있다. 여성의 취업은 돈을 벌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고, 혼자 사는 것은 자유를 원하는 자의식이 강해서이며, 워킹맘은 직장에 올인하지도 못하면서 자녀 양육은 소홀히 하는, 한마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예외적 존재로 취급받는다. 21세기 저성장사회에서 경제적 주체로서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여성들의 욕구와 목소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아직 부족하다. 청년 남성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젠더 갈등을 제로섬 게임처럼 묘사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후순위로 밀어내려는 시도는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

20세기 산업화의 결과로 대다수 여성들이 유급 노동에 참여하고 남녀 모두가 노동자 생애주기를 살아가는 사회적 전환이 일어났다. 학자들은 이를 '젠더 혁명'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일을 원하는 여성들은 취업·결혼·출산의 시기를 조정하거나 선택을 변경하면서, 또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규범적 비난이나 보상에 대응하면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생애경로를 개척하며 21세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의 다양한 선택을 과거의 규범에 기대 비난하거나 '혐오'하기보다는, 이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인정의 정치가 필요하다. 여성가족부 폐지나 성평등 정책 축소는 이러한 사회적 인정에 역행하는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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