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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이 "피 토하는 심정"이라 한 이 곳, 입정동 철공소 골목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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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이 "피 토하는 심정"이라 한 이 곳, 입정동 철공소 골목의 마지막

완전 철거 후 고층건물 지어지는 세운3-2구역 입정동 일대 마지막 상인들의 이주

"막혔어?" "막혔네"

을지로3가역 인근 골목에 들어서던 시민들이 막힌 길을 확인하고 돌아서 나왔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인 중구 '입정동 철공소 골목'. 곳곳에 높은 가림막이 세워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상인들과 시민들이 지나다니던 골목이었다. 입정동 일대는 철공소 상인들의 막바지 이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인들은 가림막이 세워지기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짐을 옮겼다. 마지막까지 영업장을 지키다 빠져나온 상인들이다.

철공소 골목이 속한 세운 3-2구역은 작년에 '관리처분인가'가 마무리됐다.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정비 단계를 마무리 한 것이다. 인가 이후 상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이주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된다. 구역 내 건물들은 완전히 철거되고,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 용도의 고층 건물과 공원이 들어올 예정이다.

입정동에서 30년이 넘게 철공소를 운영해 온 '동진알곤용접' 한진호(64)씨도 최근 이주를 마쳤다. 그는 사업구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37년 전부터 일을 시작한 한 씨는 만들어 달라는 건 '다 만들어 주는' 일을 했다. ⓒ프레시안(이상현)

37년 전부터 일을 시작한 한 씨는 "만들어 달라는 건 다 만들어 주는" 일을 했다. 최근까지도 졸업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이 찾아와 부품을 부탁했다. 3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일한 덕분에 최근 찾아오는 학생들의 교수도 한 씨에게 졸업 작품을 맡겼던 이였다.

한 씨는 시행사 측에서 마련한 대체 영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체 영업장이 있는 가건물은 세운 3-2구역 내 공원 부지에 마련됐다. 28일 만난 한 씨는 새롭게 이주한 공간에 붙일 가게 간판을 작업하고 있었다. 한 씨의 새로운 작업장은 113호라는 간판을 달았다.

"아쉽지. 거기 계속 있으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원래 있던 짐도 다 버리고 기계나 공구들이나 좀 가져왔어."

원래 한 씨의 영업장은 입정동 105번지 '대진정밀' 건물이었다. 한 씨에게 기술을 알려준 친형의 가게도 같은 건물 바로 옆에 있었다.

형제가 있었던 대진정밀 건물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축자산'이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이하 보존연대) 안근철 활동가에 따르면 대진정밀 건물은 1936년도 지도에도 기록돼 있다. 과거에는 병원, 여관 등으로 쓰였고 최근까지도 철공소와 다방 등이 영업을 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의 '근현대 건축자산'(명칭번호 근43)에 선정됐다. 한 씨는 이 건물에서 30년 넘게 철공소를 운영했다.

"예전부터 소문은 있었지. 저거는 딱 봐도 일제 건물이라고 다들 말했어. 딱 봐도 달랐거든. 또 저기가 옛날 이명래 고약(종기 치료제)의 발원지야. 다 알고 들어갔지."

대진정밀 건물은 상인들의 이주가 완료된 직후 해체되고 있다. 상인들과 지역 활동가의 요청으로 완전 철거는 면했다. 시행사의 보존계획에 따르면 건물의 입면(외면)의 벽돌을 떼어다 문화제 보존 업체에서 3년간 보관한 후, 새로운 신축 건물의 모서리에 붙일 예정이다.

그러나 보존연대는 "서울시의 보존계획 작성 요구가 있었음에도 시행사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보존계획만을 수립했다"고 비판했다. 기존 건물의 고유 분위기를 파괴한다는 지적이다. 보존연대 장현욱 활동가는 "기존 위치 보존이 안 된다면 다른 공개 공지 지역에 건물을 복원한다거나 기존 골격을 유지하면서 건물을 짓는 형태의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철거에 들어서는 대진정밀 건물의 모습. 일제시대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진정밀 건물은 서울시가 선정한 근현대 건축자산이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대진정밀 건물은 상인들의 이주가 완료된 직후 해체되고 있다. 시행사의 보존계획에 따르면 건물의 입면(외면)의 벽돌을 떼어다 문화제 보존 업체에서 3년간 보관한 후, 새로운 신축 건물의 모서리에 붙일 예정이다. ⓒ프레시안(이상현)

한 씨도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씨와 수십 년 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은 흩어졌다. 골목을 지키던 상인들 중 일부는 문래동으로, 2층에 있던 수정다방은 바로 옆 철거예정 건물로, 한 씨 형제를 비롯한 철공소는 가건물로 이동했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같이 축제를 하던 이웃들이다.

"여기는 옆집도 모르면서 지내는 곳은 아니었어. 가게에서 뭐를 먹더라도 들어와서 한잔 하고 가라고 부르는 동네지. 같은 건물 2층 다방도 많이 갔어. 마룻바닥이 옛날 일본식 바닥이라서 특이했지. 다방에 직접 가서 먹으면 2000원이고 시켜 먹으면 1000원이라서 시켜 먹기도 했어."

보존연대에 따르면 입정동 철공소 골목 내 상인들의 이주는 마무리 단계다. 장 활동가는 "시행사에서 작년부터 손해배상이랑 소송을 많이 했었다"라며 "상인들도 3월까지만 해도 이제 버티시다가 최근에 짐을 다 뺐다"라고 전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시행사가 마련한 임시 영업소에서 2년간 영업한다. 이후 세운상가 인근 산림동에 서울시와 한국주택토지공사가 건설하는 '상생 지식산업센터'로 옮겨가서 10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다.

장 활동가는 "그래도 제조 분야는 대책이 마련되어 쫓겨나다시피 빠져나간 다른 구역 상인들보다는 준비가 된 상태로 나왔다"라면서도 "지식산업센터 이주를 희망하지 않거나 소송 등 법적 다툼이 힘든 상인들은 합의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폐업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철공소 골목이 속한 세운3-2구역에는 서울시 생활유산인 '을지면옥'이 여전히 영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을지면옥 관계자는 "정당한 보상을 위한 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가게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옆 건물 석면 철거를 진행하고 건물 진입로 바로 옆까지 아시바(비계)를 설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시행사가 마련한 임시 영업소에서 2년 간 영업한다. 이후 세운상가 인근 산림동에 서울시와 한국주택토지공사가 건설하는 '상생 지식산업센터'로 옮겨가서 10년동안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 ⓒ프레시안(이상현)

반복되는 재개발의 악몽..세운의 미래는?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 논의는 1970년대부터 지속됐다. 1977년 을지로 일대의 주업종인 전자⋅전기 업종이 도심 부적격 산업으로 지정되고 물리적 노후화가 지속되면서 재개발 논의는 반복적으로 제시되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운상가와 그 일대의 개발 방향은 달라졌다. 오세훈 시장의 2009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박원순 전 시장이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면서 대단위 통합 개발에서 171개 구역으로 세분화한 개발로 바뀌었다. 세운상가는 존치되고 인근 지역은 '도시재생' 구역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되는 구역의 철거형 재개발은 지속됐다. 3-6,7구역을 비롯해 철거되는 구역에는 오피스텔, 아파트, 업무시설 등 고층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 시장은 작년 말 세운지구를 둘러본 후 시정연설에서 "세운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작년 말에는 새로운 세운상가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세운지구 정비 및 관리방안 수립 용역'을 시작했다. 보존연대는 "구체적으로 계획은 발표 안됐지만 과거 오세훈 시장의 통개발 방식의 재개발로 돌아갈 위험성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주가 시작된 세운3-2구역 외에도 3-3, 3-9구역 내 상인들은 최근 '영업권 보상계획 열람공고'를 통지받았다. 보존연대는 세입자 대책이 완벽히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본격적인 세입자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영업 중인 을지면옥 옥상에서 본 주변 건물 풍경. 을지면옥은 시행사와 보상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을지면옥 주변은 석면 해체 작업을 위한 비계가 설치됐다. ⓒ프레시안(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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