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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이제 빨간약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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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이제 빨간약의 시간입니다

[김창훈 칼럼]  

바이든이 푸틴을 '전범'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맹비난했다. 상대국가의 수반을 전범이라 칭한다는 것은 외교관계의 단절까지도 고려한 말일 것이다. 드디어 거대한 체스판을 두고 패권국들끼리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구한말의 조선을 세계정세에 지극히 어두웠던 청맹과니로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지금의 한국인들도 국제정세에 관한 한 구한말 조선과 다름없다고 판단한다. 구한말에는 여러 패권국들이 상호견제, 경쟁했기에 다른 정보 다른 관점이 조선인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패권일극체제가 작동하고 있고 여기에 보조를 맞춰서 서구주류미디어(MSM)들은 이 세계시스템에 우호적인 정보만을 발신하고 있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한국인들은 21세기 청맹과니가 되어 간다.

서구주류미디어가 전하는 우크라이나 보도는 실체적 진실과는 그다지 관계없다. 유로마이단 에 미국이 개입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하다못해 유튜브에서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 <Ukraine on fire(불타는 우크라이나)>만 보아도 사태의 전후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구언론의 말만 들으려 한다. 왜 그럴까? 주류 언론이 만들어 놓은 가공의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그다지 다루지 않는 몇가지 사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3월 27일 오후 서울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우크라이나 민족과 러시아 민족이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국가(nation state)에 익숙하다. 구자정 교수(대전대)는 우크라이나민족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탈린이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생각한 스탈린 헌법은 각 하위 민족국가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주의연방이었다. '민족의 무덤'으로 불리던 제정러시아의 구시대적 모습을 탈피하기 위해 러시아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개별 민족들의 자결권을 옹호했다. 조선의 항일투사, 호치민 등 억압받던 약소민족의 지도자들이 사회주의 소련에 경도되었던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천년 이상을 민족과 국가가 일치했던 조선이나 수백년 민족공동체 경험이 있었던 베트남은 오히려 드문 케이스였다는 점이다. 민족은 있으나 국가로서 성립되어 본 적도 민족공동체의 경험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소련은 민족국가를 만들어내었다. 구자정의 논문 <소비에트 연방은 왜 해체되었는가>의 한 문단을 인용해 보겠다. 

"소련측의 주장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소비에트연방에 가입했다고 세계만방에 선전되던 이들 독립주권 공화국들의 존재 속에는 실상 심각한 모순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는 소수민족 독립국가로 소비에트 연방에 자발적으로 가맹한 주권 공화국들 대다수는 맑시즘에 의거한 과학적 민족분류에 의거하여 소비에트 정권이 만들어낸 인공적 발명품이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다른 국가들을 바라볼 때 늘 하는 실수가 다른 나라들도 한국처럼 오랜 민족국가의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것이다. 푸틴의 연설 전문에 나타나는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가 만든 국가"라는 생각이 정답은 아닐지언정 완벽하게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인들의 오해가 발생하는 또 다른 지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이다. 유태인이 대통령인 나라에 '왜 탈나치화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돈바스지역 러시아계에 대한 강간과 학살로 악명을 떨친 민병대조직 아조프대대(Azov battalion)를 후원한 이는 다름 아닌 유태계 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였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한다.

2014년 5월 2일 우크라이나 남서부 항구도시에서 네오나치들은 평화롭게 시위하던 친러시아시민들을 공격했다. 시민들은 노동조합건물로 피신했고 네오나치는 이 건물을 불태웠다. 46명(비공식 116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사건 관계자를 찾아내지도 기소하지도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 비극적인 날에 맞춰 극우민족주의자들이 나치의 문양인 볼프산겔(Volfsangel)휘장을 휘두르며 오데사 시가지에서 기념행진을 한다. 한국의 경우를 대입하면 광주진압군 부대원들이 5월 18일에 광주 시가지를 행진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오데사학살은 이들이 저지른 수많은 잔혹행위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상식적 의미에서 전쟁 훨씬 전부터 정상국가가 아니었다.

다음은 나토에 대한 느슨한 생각이다. 얼마 전 전쟁사로 유명한 유튜버의 영상을 봤다. 전쟁사를 전공해서 요즘 핫한 분이다. 이분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분의 생각은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텐데 왜 가입을 막느냐는 것이었다. 전쟁사를 전공한 분답지 않은 답변이었다. 나토는 착한 서구민주주주의국가들의 모임이라서 먼저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판단은 진실일까? 현재의 사태를 촉발하는 데 있어서 나토의 동진이 결정적 방아쇠였음은 분명하다. 나토가 민주적 국가들의 통제를 받기에 괜찮다는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나토는 이미 UN안보리의 승인도 없이 유고내전에 개입해 한쪽을 악마화하고 희생시킨 전력이 있다. 1999년 나토는 인도적 개입을 천명하고 총 78일간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한 '인도주의적 개입'이었지만 코소보 내전 이전까지는 미국은 코소보해방군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었다. 코소보해방군에게 무기를 지원한 건 누구였을까?

나토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앞서던 리비아를 철저히 파괴했다, 나토가 리비아를 침공한 명분도 인도주의였다. 그들은 리비아내전 중 발생한 비인도적 행위를 전부 카다피 탓으로 돌렸다. 한국인들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는 특이한 사회를 수천년간 경험해 오기에 잘 모르지만 제3세계 대다수의 국가는 수많은 부족들이 얽히고설켜서 갈등을 겨우 봉합해가며 꾸려나가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반정부세력에게 누군가 무기를 지원했고 내전이 발생했다. 양측 모두 절대적 악도 절대적 선도 아닌 상황에서 나토는 특정 한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분쇄해버린 것이다. 이후 리비아는 무정부상태가 되어 노예시장이 등장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토 회원 국가들 대부분은 소위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이다. 민주주의를 행하는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낸다는 정치학의 민주평화론이 이들 내부에서는 통용되는 진리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민주국가들이 특정 시기에 특정 국가를 낙인을 찍은 이후 괴물로 변해 지목된 대상을 향해서 무제한적 폭력을 휘두른다. 자신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인도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는 것이다. '인도주의'라는 단어 하나가 이들이 행하는 모든 폭력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코소보전쟁에서 잔인한 행위를 한 것은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모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는 세르비아만을 콕 집어 공격한 것이다. 서구주류미디어는 수많은 기사를 통해 공격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했다. 티토주의가 번성했던 유고, 그린북이라는 책을 통해 제3세계 사회주의를 주창했던 리비아, 수도 다마스커스 한복판에 김일성공원이 있을 정도로 사회주의성향이 짙은 시리아, 이런 나라들이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없었다면 나토와 서구의 과녁이 되었을까?

나토의 중심은 미국이다. 나토의 이런 전력 때문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유일한 주권자가 되고 지배하기를 원하는 세계 질서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일극 세계를 건설하는 길에 러시아라는 형태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글로벌리서치>의 마이크 휘트니(Mike Whitney) 칼럼 'NATO Wants a Ground-War in Ukraine?'에서 재인용)

이런 생각은 러시아측 생각만도 아니다. 노엄 촘스키는 독립언론 <트루스아웃(Thruthout)>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멕시코가 중국이 운영하는 군사 동맹에 가입하고 중국 군대와 합동 기동을 개최하고 워싱턴을 겨냥한 무기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멕시코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토가입과 관련해 워싱턴이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주권'이라는 주장은 훨씬 나쁩니다.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극복불가능한 장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냉전전략의 설계자였던 조지 프로스트 케넌(George Frost Kennan)은 나토 확대는 비극적 실수라고 말했다. 저명한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John Joseph Mearsheimer) 코넬대 교수도 <이코노미스트> 칼럼을 통해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가입시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 나토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에 전쟁의 책임은 푸틴이 아니라 나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이 칼럼을 여기까지 편안하게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조만간 한반도에서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푸틴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후 미국 미사일이 배치되어 모스크바를 겨냥하는 것이다. 미루어 생각해보면 중국이 사드 배치에 왜 그토록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는지 이해갈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 촉발한 중국의 안보 불안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한국이 사드기지를 자발적(?)으로 설치할 '주권'에만 몰두한다. 우크라이나와 상황이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 앞에는 두 종류의 약이 주어진다. 진실을 외면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안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파란약, 현실 너머의 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빨간약 두 가지 약이다. 우리들은 서구언론이 만들어낸 파란약 세상 속에서 지난 70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패권 경쟁 시기에는 진실을 직시할 빨간약이 더욱 필요하다. 진실에 눈을 감으면 또 다른 구한말의 시대가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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