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화했다. 안철수 전 후보는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소신으로 삼으면서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외쳐왔지만, 거대양당의 힘에 여지없이 굴복했다. 거대양당이 앞 다퉈 내세우는 정권재창출론, 정권교체론, 사표론, 통합정부론 그리고 새로운물결과 국민의당 전 후보가 단일화 명분으로 세운 '단일화를 통한 다당제 견인론' 등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 전 후보의 포부 가능할까?
단일화는 없을 것이라며 제3지대 정당으로서 다당제 연합정치의 소신을 지키겠다고, 선을 그은 안철수 전 후보의 말은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뒤집어졌다.
그는 국민의힘 안에서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민의힘을 실용적인 중도정당으로 변모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합당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다당제의 소신을 지킬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당정치에 대한 무지거나 착각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 좋은 정권교체'라는 불분명한 명분을 앞세우고 자리 나눠 먹겠다는 속셈이다.
사전투표 전 마지막으로 집계된 한국갤럽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한다. 40%가 넘는 대중의 지지율이 나오는 큰 정당이 일부 작은 기득권 세력만 바라보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 실용적인 중도정당이 못 되어서가 아니라, 일부 작은 기득권 세력만 챙겨도 선거 시 당선권의 지지율 확보가 가능한 구조, 즉 양당 독점 정치가 민심을 겁박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후보의 포부는 이뤄질 수 없다. 단일화 효과는 실용적 중도정당이 아니라 기득권 정당의 강화로 귀착될 뿐이다.
통합정부? 야합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단일화는 연합정치의 방법 중 하나지만, 맥락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단일화와 합당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1990년 김영삼은 "3당 합당은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한 차선이었다"면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심정"으로 3당 합당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당 합당'은 김영삼의 대권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3당 합당'으로 인해 민주화 세력은 보수대연합에 귀속되었으며, 지역주의 구도가 굳어졌다. 더욱 큰 문제는 기회주의적 풍토가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내렸다.
역사는 '3당 합당'을 야합이라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2022년 안철수 전 후보는 국민의힘과 단일화로 중도층을 보수대연합에 귀속시켰다. 다당제 연합정치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정면 역행하면서, 공고한 양당 독점 정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가 무엇을 얻어냈는지와 무관하게, 제3지대 정치와 중도지지층은 유린당했다. 안철수 전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는 '야합'이라 표현해야 마땅하다.
정치교체의 시작은 민심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 또한 정치개혁을 거듭하여 공약하고 있다. 정치개혁의 필요조건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와 국회 의원정수 확대다. 멀지 않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선거제도 개혁 국면에서 의원정수 확대가 되어야 개혁이 완성될 수 있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외면했다.(☞ 관련 기사 : 2020년 4월 21일 자 '민주당의 세 가지 잘못, 이번에 선거법 개혁 반드시 완수해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결선투표제와 의원정수 확대를 두고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한국 대통령제는 권위주의적 통치관행과 소속정당에 대한 강한 지배력, 국무총리의 존재와 의원의 각료 겸직, 국정감사권, 정부의 법안 제출권 등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로 귀결된다.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라는 빅 이벤트에 모든 역량과 개혁과제가 집중된다. 문제는 대선 이후까지 개혁과제에 대한 관심과 정치적 역량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혁은 언제나 민심에서 시작한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하면, 2차 결선투표를 한다. 1차 투표에서는 소신투표를, 2차 결선투표에서는 1위 2위 후보가 다투므로 자연스럽게 후보군이 좁혀진다. 1차 투표에서 민심 그대로 대통령의 지지도를 보이면, 거대양당도 제3지대 정당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다음은 의원정수를 확대하여 비례의석을 충분히 확보한 후,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국회를 개혁해야 한다. 다당제 연립정부는 그 다음 순서다. 정체성이 분명한 정책 정당들이 공존하면서 정책 교류를 하는 방식으로 꾸려나가야 연립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 큰 정당에 작은 정당이 흡수되어 세력의 위계에 따라 자리를 나누는 통합정부와 다르다. 다당제 연합정치의 연립정부는 작은 정당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비토권을 행사 할 수 있다. 정당 정체성과 세력이 그대로 온존하기 때문이다.
정권교체의 대의? 사표의 의미를 재고한다
한국에서 '정권교체'는 마법의 선거 용어다. 막강한 정부 권력을 심판하는 심판자로서 국민을 호명하지만,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정치 세력이 정권을 주고받는 데 악용하는 용어다. 문제는 정책 지속가능성과 합의재민주주의 정치 문화를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87년 이후 공고한 양당 체제의 역사가 반증하듯,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정치 문화는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정부 창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치적 경쟁 상대의 패배가 곧 재기의 조건이 되는 정치 구조 속에서, 비타협과 적대로 일관하는 여야, 조정과 합의를 통한 합의민주주의보다 포퓰리즘이 효과적이다. 지지자 중심 팬덤 정치가 자리 잡는다.
정권재창출론, 정권교체론은 허망하다. 거대양당이 민주공화국을 사실상 '독점'하며 정권을 주고받아온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되짚자. 한국 사회에서 사표의 개념은 재정립되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낮더라도 정책과 정당의 정체성이 분명한 제3지대 정당이 얻는 표는 사표가 아니다. 권력창출이 국가 공동체 발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만 거듭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더라도 살아있는 표가 아니다.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공포와 적의로 결집 되는 표. 그 표가 바로 사표다.
진보 없는 민주대연합으로 정권재창출이 이뤄지든, 보수대연합으로 정치교체가 이뤄지든 성공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단일화를 통한 다당제 견인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정치에 절박했던 것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지지율이라 할지라도, 기득권 양당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지지율을 견지하는 제3지대 정당 존재 자체였다. 양당 독점 정치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견결한 다당제의 의지가 절박하다는 의미다.
*본 칼럼은 <오마이뉴스> 선거제도개혁연대 연속 기고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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