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사에서 순식간에 번진 불길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태국 국적의 30대 외국인 근로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
대피과정에서 쓰러져 온 몸에 화상을 입게 된 원인으로 현재까지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폼'이 꼽히고 있다. 난연성 우레탄폼도 있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돈사와 같은 시설에서는 난연성 제품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읍의 돈사 화재 현장 주변에는 불난 돈사 등과 같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외국인 근로자 등도 다수 작업에 나서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가연성 제품 사용에 대한 규제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일 전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인 8일 오전 10시 49분께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있는 A영농조합법인의 돈사에 화재가 발생했다.
총 18개동에 달하는 돈사 가운데 3개동에 시뻘건 화염과 유독가스가 쉴새 없이 새어 나오는 등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할 정도였다.
불이 나자 돈사 농장장인이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려 했지만, 진화에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발생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 선착대는 거센 불길과 연기를 뚫고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후발 소방대원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각각 5대 씩의 펌프차와 물탱크차를 비롯해 굴절차, 구조차, 구급차 등 20여대의 장비가 도착했고, 50여 명에 달하는 소방대원들이 본격적인 진화에 돌입했다.
진화 시작과 함께 돈사 내부에서 대피를 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근로자 4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소방·구조대원들은 곧바로 이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긴 뒤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4명이 근로자 가운데 태국 국적 근로자(30)는 전신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상태가 심각한 점을 고려한 소방당국은 즉시 닥터헬기 출동을 요청했고, 중상 근로자를 태운 닥터헬기는 곧장 서울의 화상전문치료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도착과 함께 곧바로 화상 치료를 받은 태국 근로자는 현재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2도 화상은 진피층까지 손상돼 1도 화상(피부 표피층만 손상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피부색이 빨갛게 변하고 감각이 예민해짐)보다 통증이 더 심하게 물집이 생긴다.
그와 함께 화재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나머지 3명 근로자 가운데 베트남 국적 근로자(34)는 목 부위에 화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네팔 근로자 2명(31·32)은 허리와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중·경상을 입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대피를 방해했던 것은 다름이 아닌 돈사 내부 단열재로 사용된 우레탄폼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레탄폼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물질이다. 가연성이 매우 높고 연소점이 낮은 물질인 만큼 작은 불씨 하나에도 눈 깜짝할 사이 불길에 휩싸이게 하는 불쏘시개나 다름없다. 여기에 연소되면 사이안화수소(HCN, 다른말로 청산) 등의 유독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화염보다는 질식사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 유독가스는 치사량의 3배 정도로 알려져 있다.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화재감식이 진행돼야 정확한 화인 및 인명피해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레탄폼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더해진 것으로 소방당국 등은 예상하고 있다.
화재 당시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분석하면, 돈사 내부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황토색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분명 우레탄폼이 불에 타며 내뿜은 유독가스임이 확실해 보인다.
우레탄폼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 제품이 있지만, 일반 가연성 우레탄폼과의 가격대비가 큰 만큼 돈사 등과 같은 시설 자재에는 불에 잘 타는 제품이 대부분 이용되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이 우레탄폼으로 인해 불길과 피해를 더 키운 사례로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2008, 사망 40명, 부상 17명)를 비롯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2020, 사망 38명, 부상 10명),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2014, 사망 8명, 부상 110명), '용인 SLC 물류센터 화재 사건'(2020, 사망 5명, 부상 8명) 등이 있다.
한편 정읍 돈사 화재에서는 돈사 3동이 불에 타고 새끼돼지(자돈) 5000마리 정도가 불에 타 죽는 등 약 4억 6000만 원 상당의 피해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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