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알기] ‘가렵다’와 ‘간지럽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알기] ‘가렵다’와 ‘간지럽다’

중국 영화에서 어린 태자가 가려워서 울고 있었다. 아마도 아토피성 피부염에 걸렸든지 진드기에 물렸든지 그런 종류인 것 같았다. 앞에 무슨 화면이 나오는지 보지는 못했는데, 대화를 유추해 보면 개와 놀다가 진드기가 옮은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전반적으로 보면 태자의 피부가 워낙 약해서 늘 피부병을 달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토피가 심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밑에 자막을 보니 “어머니, 간지러워 주겠어요.”라고 했는데, 화면에 나오는 태자는 울고 있었다. 물론 간지러워서 웃으면서 울 수도 있지만 태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울 정도라면 간지러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가려워서 우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 중에도 ‘가렵다’와 ‘간지럽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영어 표현을 봐도 ‘가렵다’도 ’itchy’고, ‘간지럽다’도 ‘itchy’로 나와 있다. 서양사람들이야 표현을 다양하게 할 줄 모르니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렵다’와 ‘간지럽다’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가렵다’는 “근지러워 긁고 싶은 느낌이 있다.”는 뜻이고, ‘간지럽다’는 “1.살갗에 살짝 닿거나 스칠 때처럼 웃음이 나거나 견디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2.미묘하고 야릇한 느낌이 있다 3.계면쩍고 어색하다”라는 말이다. 느낌 자체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예문을 통해서 살펴 보자.

   발가락이 가렵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재인용)

   무좀 때문에 발가락이 근질근질 가렵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재인용)

   그야말로 현란의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 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이상의 <날개>)

위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렵다’는 긁고 싶은 느낌이 있음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혹은 ‘못 견딜 정도로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느낌이 있다.’는 뜻도 있다.

한편 ‘간지럽다’의 예문으로는

   봄비가 내린 뒤에 땅을 만져 보니 보드라운 흙살에 손끝이 간지럽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재인용)

   낮이 간지럽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재인용)

   어찌나 아양을 떠는지 귀가 간지러워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재인용)

와 같은 것들이 있다. 위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간지르다’는 “무엇이 살에 닿아 가볍게 스칠 때처럼 견디기 어렵게 자리자리한 느낌이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참고 견디기 어렵다”, “몹시 어색하거나 거북하거나 더럽고 치사하여 마음에 자리자리한 느낌이 있다”는 말이다. 사실 자리자리한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독자들의 감각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나가 발바닥을 간질이면 동생들은 하하 웃으면서 몸을 꼰다. 그때의 느낌이 자리자리한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간질이다’라는 단어도 있다. 위에서 누나가 나의 발바닥을 ‘간질여 주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살갗을 문지르거나 건드려 간지럽게 하다”라는 뜻이다. 흔히 ‘간질러 주었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간질여 준 것’이 맞다.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말들이 자주 어법에 벗어난 것들이 많은 것은 기초를 바르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래에도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중략>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 주어라.”라고 하는데, 이것도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라고 해야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노랫말을 만드는 사람들은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야 한다. 우리 모두가 틀리게 되는 계기가 바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일어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개 껍데기(껍질은 틀린 말) 묶어 그녀에 목에 걸면…”

   “그것은 우리의 바람(바램이 아님)이었어…”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간지러’가 아님) 주어라.”

라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끼니 어찌 된 일인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