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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코로나 이후'를 고대하는 관광객이라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노룬산시장'을 찾는 관광객에 주목하라

관광객은 관광객을 싫어한다

코로나19로 세상이 혼란해지기 전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여행자였다. 연구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해외여행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카페 몇 곳을 둘러보며 최신 정보를 얻고, 여행의 꿈을 키우곤 했다.

그때 여행 카페에서 꽤 높은 빈도로 볼 수 있던 글 중의 하나는 '한국인이 많은/적은'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런 글에서 한국인이 없거나 적은 곳은 대개 '이색적인', '추천할만한' 여행지로 그려졌고, 곳곳에서 들리는 한국어는 여행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치부됐다.

여행을 꿈꾸는 한국인이 모여 있는 여행 카페에서 '한국사람 많이 없는 관광지 어디 없나요?' 같은 질문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는 어쩌다 여행 중 만나는 자국민을 이토록 싫어하게 됐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다른 여행자들이 좀처럼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곳에 가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난 역시 진정한 여행자야'라며 뭔가 모를 우월감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뒤섞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관광객이 다른 관광객의 존재를 편치 않게 생각하는 건 비단 우리나라 여행자만의 생각도, 최근 들어 발생한 현상도 아닌 것 같다. 서구의 관광 연구자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관광객이 명소에 몰려있는 다른 관광객의 존재를 불편해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관광객이라는 사실 자체를 싫어한다는 점을 이야기해왔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관광이 대중적으로 보편화한 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 관광 역사의 절반에는 관광객의 자기혐오가 아로새겨진 셈이다.

'현지인과 함께', '현지인처럼' 여행하기

관광객의 이러한 자기혐오는 관광이 변화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더 새로운 곳, 더 색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관광의 대상이 확대되고 다채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 간 관광객은 더는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공유숙박 호스트의 집에 머물면서, 아침에 일어나 동네 카페에서 커피에 샌드위치로 브런치를 해결하고, 골목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민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 언뜻 보기엔 별로 '관광객 같지 않은' 일상적인 행위를 경험하는 것이 최근 관광객의 선호에는 더 부합할는지 모른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특정 도시에서 '한 달 살기'와 같은 여행 패턴은 '서유럽 4개국 9일'과 같은 문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패키지 관광의 정반대에서 오늘날 관광객의 선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비록 관광객이라는 신분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최소화하고 관광지의 일상에 녹아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여행 정보들도 이에 맞춰 '현지인과 함께', '현지인처럼' 활동하는 여행의 미덕을 설파한다.

이러한 여행에서, 관광객에게 주민은 중요한 지역 정보 제공자가 된다. 경복궁에서 무엇을 하고, 명동에서 무엇을 사고 먹을지는 가이드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신림동 사람들이 어디서 여가를 즐기고, 상계동 사람들에게 소문난 맛집이 어딘지는 주민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사정에 어둡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이 일상적 경험을 통해 획득되는 '암묵적 지식'을 제공해 줄 주민을 만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도 살고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나 붙잡고 '여행 정보를 내놓으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민의 일상으로 관광객을 이어주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

이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이 하나의 대안이 된다. 카우치서핑(Couchsurfing), 에어비앤비(Airbnb), 잇위드(Eatwith)와(각주1) 같은 온라인 여행 플랫폼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관광객과 주민이 연결되는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관광객과 주민은 중개인 없이 온라인에서 직접 만나 식사를 같이하거나, 방을 나눠 쓴다. 관광객은 주민과의 만남을 우연한 사건에 기대지 않고, 사전에 계획할 수 있다. 이른바 로컬(local)이라 불리는 주민과 만남이 중요한 오늘날의 관광에서 온라인 여행 플랫폼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온라인 환대 교환 네트워크(online hospitality exchange networks)로도 불리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은 현지인과 만남을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만듦으로써, 관광객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여행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각주2) 따르면, 사용자(게스트)들은 플랫폼을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갈 수 없거나, 생각하기 어려웠던 목적지를 방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지인과 개인적인 접촉 기회를 얻음으로써 더욱 참신하고 진정성 있는 관광 경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온라인 여행 플랫폼의 등장은 관광객이 주민을 만나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기존에는 어려웠거나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지역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통해 여행 중 현지의 주민과 함께한 경험이 몇 차례 있다. 호주 멜버른에서는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준 숙박 공유 호스트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동네 시장에서 함께 장을 보고, '스테이크 만들기에 좋은 부위 고르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집에서 함께 요리하고, 식사했다. 호텔에서 숙박했다면 경험하기 힘든 것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만난 로컬 호스트와는 마드리드의 퀴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스페인에서 성 소수자의 삶을 엿볼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아마 혼자서는 감히(?)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조차 하기 쉽지 않았을 장소들이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현지 대학생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그들이 하교 후 즐겨 가는 곳에 가고, 즐겨 먹는 것을 함께 먹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대혼돈의 세상'처럼 보이던 '오토바이 천국' 호찌민 길거리를 요리조리 달렸던 경험은 짜릿했고, 다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어 맥주와 색이 비슷한 자스민차를 '대학생 맥주'라 부르며 마시고 논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연구차 만났던 서울의 로컬 호스트들도 각자 로컬로서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어떤 호스트는 동네사람이 아니라면 서울사람들도 잘 모를, '자신의 단골 시장'인 노룬산시장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또 다른 호스트는 한남동과 보광동 언덕배기의 '뉴타운 예정지'에서 '조만간 재개발로 사라질 나만의 서울'을 소개한다.

이전엔 관광의 대상으로 좀처럼 고려되지 않았을, 주민에겐 너무도 흔한, 너무도 일상적인 곳들이 온라인 여행 플랫폼 그리고 주민 호스트의 등장으로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한 관광 자원이 없다고 여겨진 곳에서 거대한 자본의 투입 없이도 관광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깜빡이고 있다.

일상의 매력으로 준비하는 포스트 코로나 관광

UN세계관광기구(UNWTO)는 코로나19에 대응해 관광객이 더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한편,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보다 책임감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관광의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각주3)

이런 변화는 앞으로의 관광에서 지역 주민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관광객은 지역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많고, 따라서 지역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얕은 상품으로는 관광객의 흥미를 이끌 수 없다. 온라인 여행 플랫폼에서 주민이 제공하는 상품은 주민의 일상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역 고유의 매력에 기반하며, 지역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광역시‧도 관광공사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공모전을 열어 주민의 일상적 활동을 토대로 만든 관광 상품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서울관광재단은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직접 개설해 주민과 관광객을 연결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관광두레' 사업을 통해 지역 자산을 토대로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 관광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이 큰 업체로 공급자도 소비자도 몰리는 플랫폼 경제의 특성상, 관에서 주도하는 후발주자의 추격이 쉽지 않고, 관광두레 역시 사업의 진척이 원활하지만은 않지만, 추진의 방향은 옳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활성화된 새로운 방식의 여행, 이를테면 '랜선 여행', '무착륙 관광 비행' 등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기에 오히려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별다른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하던 시절이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 여행은 이내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공한 사업가의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격언이 어쩌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 각주

1) 카우치서핑(www.couchsurfing.com)은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공간을 제공하는 비영리 온라인 커뮤니티이고, 에어비앤비(www.airbnb.com)는 (시작 당시를 기준으로) 숙박 공유 사이트이며, 잇위드(www.eatwith.com)는 식사를 함께하거나, 쿠킹 클래스, 푸드 트립 등을 함께 하는 소셜 이팅(social eating) 사이트이다.

2) Stors, N. and Kagermeier, A., 2017, The sharing economy and its role in metropolitan tourism, In Gravari-Barbas, M. and Guinand, S. (eds), Tourism and Gentrification in contemporary metropolises, London: Routledge.

3) UNTWO, 2021, COVID-19 AND TOURISM 2020: A year in review, https://www.unwto.org/covid-19-and-tourism-2020.

■ 저자소개

김주락 박사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BK21 4-Plus 미래국토공간 혁신 교육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끊임없이 국내‧외를 누비고 다니면서 #관광 #장소 #로컬을 키워드로 상상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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