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째를 맞고 있다. 성인으로 당시 참전했던 많은 이들은 참혹한 전장에서 산화했고 생환한 이들도 이미 망백(望百)을 넘기게 됐다. 정규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이들은 제대로 된 군번과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전사에 남아 있지만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갑작스럽게 전장으로 보내진 이들의 기억과 기록은 희미하다.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영화와 일부의 기록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그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한 가여운 넋들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고 역사의 전면으로 자꾸 소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종환은 1932년생으로 올해 아흔 살이다. 만18살이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그는 전주북중학교(현재 전주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졸업을 불과 얼마 앞둔 상급반 학생인 그는 그해 7월 퇴각하는 국군의 소집령에 응해 교복을 입은 채 한반도 남단을 거쳐 경북 영천의 전투에 참전했다가 고립되어 탈출한 뒤 다시 치안대에 붙잡히는 등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는 후일 다시 군에 입대해 장교로 복무하고 다시 예편해 공직자의 삶을 살다가 정년퇴임했다. 일흔 살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학도병으로 6·25참전한 사실이 인증되어 2005년 참전유공표창을 받았다. 이 기록은 당시 그가 국가보훈처에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남겨둔 기록이다. <프레시안>은 최근 그의 자택을 방문해 참전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록에서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표현을 가다듬어 이를 5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기록되지 못한 채 점차 잊혀가는 수많은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며. <편집자주>
눈앞에서 목격한 친구의 허망한 죽음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제일 먼저 희생된 사람이 유영근이라고 하는 친군데 노송동에 살았어.
그는 아주 생활이 어려워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친군데, 이 친구가 20m쯤 앞에 가다가 적의 박격포 직격탄에 맞았어. 비명소리도 없이 순간에 날아 가버린 거야. 그걸 나는 목격했지. 그러니 정신이 아찔하고 멍해지면서 다리 힘이 쭉 빠지더라고. 그렇게 전쟁의 서막이 열렸어요.
그러고 나서는 기어가다시피 구부리고 산등성이로 올라갔는데 우리 소대장이라는 중사가 지시하는 대로 산 능선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엎드려 있는 거야.
이제 사격 명령만 내려지면 쏘아야 하는데, 이제 초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 목표가 잘 뵈지도 않고, 저쪽에서 쏘는 박격 포탄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아.
그런데 박격 포탄이 날아올 때는 쉭~ 이런 소리가 들려. 그런데 그놈이 자기 정면으로 올 때는 소리가 안 들려. 그런데 옆으로 비켜가는 놈은 쉭~ 하고 소리 내며 날아가. 그래 소리가 들리면 안심이야. 그런데 소리 없이 정면으로 날아오는 놈이 언제 나를 때릴지 모르거든. 친구가 전사하는 것을 금방 눈앞에 보니 말이야. 그렇게 차츰차츰 전선의 첫날밤이 깊어졌어요.
각 병사는 산개해 가지고 10m 간격으로 엎드려서 있어야 하는데 무서우니까 ‘이리와, 이리와!’ 하면서 같이 뭉쳐있고, 그러다 소대장이나 고참병이 보면 호되게 화를 내며 ‘이놈 새끼들 죽으려고 그러느냐. 어서 흩어지라’고 호통 쳤지. 밤이 점점 깊어가면서 서로 총격전이 가열해졌어.
처절하게 아름다운 전쟁터의 밤
총알에 예광탄이라는 게 있어. 불꽃처럼 불빛이 주~욱 끌려가는데 낮에도 보이지만 특히 깜깜한 밤에 총을 쏘면 빨간불이 쫘~악 나가. 그런 것 영화에서도 봤겠지. 그런데 그 예광탄의 역할이 뭐냐 하면 지휘관이 적의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
또 각 병사들이 자기가 쏘는 탄도를 정확히 확인하는데 효과적이고 또 적의 시설물에 화공할 때도 예광탄을 쏴요. 그런데 적도 그 예광탄을 쓴다고.
그러면 깜깜한 밤에 말이여. 이쪽에서 쏘고 저쪽에서 쏘면 빨간불이 교차되면서 마치 불꽃놀이 같이 처절하게 아름답게 수를 놓지.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참 아름답구나.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그 광경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아요.
그 순간 ‘전장에도 문학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야! 얼마나 아름답냐. 내가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받는다면 전쟁같이 멋있고 아름다운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 그렇게 참 처절하게 아름답더라고….
적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그쪽을 쏘는 거지. 밤에는 적이 기어 올라올지 모르니까 산 밑에다 쏘고…. 날이 새자 적의 움직임이 파악되니까 다시 대오를 정비하고 사격선을 전진 이동시키는 등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어. 최전방 능선의 포진상태가 이쪽 산에는 제 1대대, 저쪽 산에는 제 2대대, 3대대가 연해서 포진하고 있는데 만일 적이 돌파를 했다 하면 뒤로 이렇게 돌아서 포위를 당하거든.
그러니 다른 부대도 신속히 후퇴를 해서 위험을 모면해야 해요. 그 당시 인민군은 여러 전선을 돌파해서 적을 다 섬멸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선을 교란시키고 빨리 부산까지 밀고나가 전선을 장악하느냐가 초미의 전술이었다고 들었어요.
벼락치기 통신병이 되어 대대장 곁에서
다음날 고지에 기어오르는 적을 수류탄 세례로 가까스로 막아냈고, 우리 학도병도 반절 정도의 인명 손실을 보는 대격전을 벌였지. 그런 전투가 3일간 계속되었지.
그래 정리를 해보면 20일에 대구를 출발해서 21일 오후에 영천, 영천에서 다시 신령으로 배치되고 의흥 지구 산악전에 배치되어 그날부터 3일간 치열한 전투를 했구먼.
그런데 사흘째 밤에 문제가 생겼어요. 대대 본부에 있는 통신병이 전사했어요. 통신망을 마비시켜서는 안 되니까, 대신할 수 있는 병사를 골라 그 기능을 살려야 할 처지였어요.
이번에 배속된 학도병 중에서 좀 똑똑한 놈을 골라서 통신병 역할을 시키기로 하고 골라보는데 우리가 자원했지요.
“너 어디 다녔어.” “전주 북중 다녔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너희들 이리와 여기 통신기기 조작법을 배워!” 배워서 벼락치기 통신병이 되었지.
술과좋고 안주 좋다, 기생 보내라
그리고 그 고참 병사가 실제로 시범을 보이더만. “여기는 단골집, 여기는 단골집” 무슨 말인지 꼭 장난하는 것 같았어요. “이웃 술집, 감을 잡았으면 응답하라. 감을 잡았으면 응답하라.” 모든 대화가 암호로 통하였지.
“여기는 이웃 술집. 이웃 술집. 감 잡았다. 단골집은 말하라.” “술 좋고 안주 좋다. 기생 보내라.” 장난을 하는가 했어.
그랬더니 기생 보내라 하는 게 ‘빨리 포를 쏘아라.’ 하는 미리 약속된 암호였지. 처음에는 웃음이 나와서 못하겠더라고 자꾸 반복 연습해서 숙달이 되었지요.
나는 대대본부에서 대대장 밑에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최전방 산꼭대기 능선에서, 대대본부 요원으로 우리 둘이 배속된 거지. 날아오는 포탄에는 맞을 수 있지만, 소총 사격대상에서는 벗어나, 한시름 덜게 되어 좋아했는데 이걸 담당하니까 밤새도록 잠을 못 자는 거야. 왜냐하면 신호가 울리면 바로 수화기를 들고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졸더라도 둘이 교대로 졸며 통신기를 지켜야 했어.
안 가면 총살이다
그 다음날인데 전화 오는 것이 좀 불안한 내용이 오더라고 전황이 안 좋은 모양이야. 전선이 뚫려서 적이 후방으로 침투해 포위상태에 들어갔다는 연락이야. 대대장이 장교들을 모아 상의한 끝에 후퇴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전선에 산개해 있는 각 중대 소대 전원을 여기까지 후퇴를 시켜라 이거여. 그런데 중대 소대가 무전이 안 통하는 거야. 전령을 보내야겠는데 대대 전령도 행방불명이니 만만한 것이 신병이잖아. “야! 너희들 이리와. 너희들 오늘 낮에 있었던 그 산능선 알지. 너희 둘이 가서 거기에 있는 소대장 만나 가지고 빨리 여기까지 후퇴를 시켜라.” 그게 우리에게 갑자기 떨어진 추상같은 작전 명령이었어. 아이고~ 그냥 죽을 것 같더니만…. 캄캄한 밤에 길도 없는 산을 넘어 찾아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
겁이 나서 둘이 총만 메고 저만큼 내려가다가 바위 뒤에 숨어 앉아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고참병이 우리가 갔는가 안 갔는가 보러 졸졸 따라 왔다가 우리가 거기 있으니까 “이것들 죽고 싶냐”고 해서 “아이 밤에 뭣이 보여야 가지요.”하니까 “여기서 저기 북쪽으로 반듯이 이 방향이다. 이 방향으로 저 별하고 맞추어서 걸어가. 거기에 절벽이 있더라도 가야해. 너희는 군인이야. 반듯이 걸어가. 안가면 총살이다.”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더듬더듬 산을 내려갔어. 산을 내려가서 저쪽 산으로 다시 붙어서 올라갔지. 가시덤불에 찢기고 긁히고 코피가 터져 출혈이 낭자하고 그래도 생사의 기로에서 극도로 긴장하니 아픈지도 모르고 초인적인 힘이 솟아 움직였지.
천신만고 끝에 ‘아마 이 산이겠지.’ 하는 산까지 갔는데 있어야할 우리 아군이 하나도 없어요. 불길할 정도로 고요하고 무섭대요. 아마 전멸했거나, 일찌감치 후퇴했거나 어느 쪽이건 아군은 없었어요.
저기서 우리가 엉거주춤 살피고 있는데 전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데 바로 인민군이 가까이 와 있는 거야. 안되겠다 싶어서 오던 길로 돌아서 남쪽으로 내려왔었지.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잠시 쪼그리고 앉아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불과 한 20m쯤 될까. 우리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인민군이 살살 내려왔던 모양이야.
우리의 인기척이 나니까 뒤에서 살금살금 접근해서 갑자기 따발총을 쏘면서 “와~”하면서 막 쫓아 내려 오더라고. 산 능선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그대로 죽게 생겼어. 그래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민군들이 능선을 따라 총을 쏘며 돌격해 내려가더라고. 그래서 그 위험은 피했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민군 포위망 속에 갇히고 말았지.
산 능선마다 인민군이 포진하여 흩어져 있을 국군 낙오병이나 패잔병을 제압하기 위하여 소련제 따쿵총을 쏘아대니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날이 훤히 새기 시작하더라고. 주변을 살펴보니 저 아래 쪽에 계곡이 보였어.
거기까지 내려가자 우리 대대본부가 있었던 고지에서 거꾸로 이쪽이 총알이 날아오더라고.
인민군이 벌써 거기까지 다 점령한 거야. 그래 꼼짝 못하고 계곡에 숨어 엎드린 채 총을 피했지. 한나절을 거기서 꼼짝 못하고 있었는데 저녁 해걸음판이 되니까 조용해지더만. 그래 논두렁을 타고 저쪽 남쪽 산, 아군부대를 찾아가야 하는 데 움직이면 주변 산 이곳저곳에서 집중사격 가해오는 거야. 아마 그때 아군 낙오병들이 많이 흩어져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남쪽을 향해서 가려는데 갈 수가 없어. 계속 딱꿍~ 딱꿍~ 가끔가다가 따발총을 드르륵 드르륵 갈겨 쏘는 거야. 이미 남쪽에도 인민군이 다 있는 거야. 아군 대대본부가 있음직한 산도 인민군이 이미 점령해 버렸어. 그 당시 한국군의 사기는 완전히 제로야. 왜냐하면 부대편재에 장교가 몇 명 안 돼 지휘체계가 안서고, 전부 학도병이나 강제 징병한 시골청년들이 있기 때문에 전투경험이 전혀 없고 무기를 다룰 줄 몰랐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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