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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국가의 몸값에 집착하는 '올림픽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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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국가의 몸값에 집착하는 '올림픽 시스템'

[창비 주간 논평]

토오꾜오올림픽 개최가 이제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호주 소프트볼 대표팀은 이미 일본에 입국했고, 야구와 축구 등 한국 대표 선수단도 백신을 접종하고 출국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시선은 아직 차갑다. 일본 국내에서도 올림픽을 다시금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긴급사태 상태에 있고, 2011년 후꾸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에 대한 의구심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개최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올림픽의 몸값' 때문이다.

올림픽의 몸값 1

오꾸다 히데오의 소설 <올림픽의 몸값>(은행나무 펴냄)은 1964년 토오꾜오올림픽의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다. 토오꾜오대 대학원생인 주인공은 올림픽에 반대하며 테러를 계획한다. 작가는 이러한 행동의 배경으로 화려해져 가는 토오꾜오의 경관 이면에 저임금 일용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이, 날로 명확해지는 빈부격차가, 그리고 토오꾜오와 지방 사이의 격차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 속 1964년 올림픽은 그 이면을 감추어냈다. 22개의 간선도로가 인구를 분산시켰고, 그와 연결된 단지주택은 중산층의 현대적 생활을 보여주는 쇼윈도가 되었으며, 신설된 지하철과 모노레일은 도시의 면모를 현대화시켰다. 올림픽을 앞두고 개통된 세계 최초의 고속열차 신깐센이 더해지며 토오꾜오에는 풍요와 질서의 외관이 그럴듯하게 들어섰다.

그렇게 치러진 올림픽은 일본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작동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가 되었다. 1960년 안보투쟁 당시 드러난 일본 진보세력의 막강한 힘은 올림픽을 통해 한풀 꺾였다. 사람들은 이제 3C(컬러TV, 자동차, 에어컨)라 불리는 소비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극한의 훈련을 통해 여자배구 금메달을 만들어낸 다이마쯔 히로부미 감독의 <하면 된다>(1964)는 시대를 대변하는 책이 되었다. 1960년 당시 이께다 하야또 총리가 10년 후 달성하겠다 약속했던 국민소득 2배는 8년 만에 실현되었다. 이처럼 1964년 토오꾜오올림픽은 토오꾜오와 일본의 몸값을 높인 메가 이벤트였다.

2006년 토오꾜오도지사 이시하라 신따로오는 다시 한번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새로이 떠오르는 아시아 국가들과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아시아 도시들 사이에서 1964년 올림픽을 계기로 굳혔던 '아시아 대표' 토오꾜오의 위상 및 일본의 위상을 재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올림픽의 몸값 2

1980년대 이후 올림픽의 몸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공장이 떠나간 자리에 금융과 서비스 산업 엘리트들을 유치하고자 했던 서구 도시들은 올림픽을 활용했다. 1992년 올림픽을 위해 해변의 빈민가를 리조트로 바꾼 바르셀로나는 이후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예외적이었던 1964년 토오꾜오의 대대적 도시 개조가 1988년 이후 일반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직접경비는 9000억 원이었지만 인프라 투자에 사용된 간접비용은 2조 3000억 원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직접경비는 서울과 비슷했지만 간접비용은 직접비용의 10배였다. 이후 대회를 치를 때마다 두세 배씩 뛴 대회 경비는 40조 원 넘는 비용을 지출한 2008년 베이징과 50조 원을 넘긴 2014년 소치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2018년 평창의 경우에도 4조 원이 넘는 직접경비와 9조 원이 넘는 간접경비를 썼다. 2020년 토오꾜오올림픽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17조 원을 지출한 상태다.

미디어가 발전하고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IOC는 방송중계권료와 스폰서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다. 대회별 중계권료를 산출하기는 어려우나 2020년 토오꾜오올림픽의 TV중계권료는 약 3조 5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내외 스폰서십에서 발생하는 수입 역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예측된다.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경우 이 금액 중 상당 부분을 IOC와 토오꾜오가 배상해야 한다. 올림픽 개최에 대해 일본 정부보다 IOC의 입장이 훨씬 강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토오꾜오의 몸값과 일본의 몸값을 높이려던 일본 정부는 올림픽의 몸값에 저당 잡혀 올림픽 개최를 향한 위태로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올림픽이 마주한 새로운 과제

하지만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국가의 몸값에 집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멀리 서울올림픽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후로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국가의 위상을 높여줄 영웅을 찾아왔다. 비인기 종목의 스포츠인들이 올림픽만 바라보는 것은 그 무대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중산층으로 살아갈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과거 올림픽과 무관하게 인기를 누리던 야구도 어느 순간 올림픽 성적이 인기를 좌우하고 선수의 몸값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이번 올림픽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스포츠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사회적 응집력이 필요했던 정부는 'K-방역'이라는 말을 만들어가며 달라진 국가의 위상을 끊임없이 호출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국위선양'을 경유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과연 국가의 몸값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장기 불황 속에서 마땅한 사회적 응집의 수단을 찾지 못하고 연대를 상실한 일본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올림픽은 이제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 간에 발생한 신냉전 속에서 2022년 초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를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서방 국가들에서 포착된다. 비싼 개최 비용과 도시 개조로 인한 집값 상승 등을 이유로 2024년 빠리올림픽과 2028년 LA올림픽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 역시 쉽사리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정부와 서울시는 2032년 서울-평양올림픽을 계획하고 있다. 남·북과 미·중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그 비싼 몸값에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이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준다. 도시의 몸값을 높이고 국가의 몸값을 높이고 올림픽의 몸값을 높여온 이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냉전과 신냉전을 넘어선 평화지대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경관 개조,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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