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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벗을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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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벗을지가 중요하다

[창비 주간 논평] "또다시 누군가를 '갈아 넣고서' 마스크 벗으려 해서는 안 돼"

우리는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2월만 해도 금방 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이었지만, 최근 여러 논란이 이어지면서 의심과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당초 정부가 목표한 11월에 집단면역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대통령 지지율도 함께 하락했다는 최근 여론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논란이 된 백신 수급의 어려움은 미국, 영국과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이다. 세계 인구수만큼 많은 백신을 생산하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백신 자국민 우선주의도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높은 효과성을 위해 3회 접종에 나서며 백신 원료 수출을 통제하고, 일부 백신에서 희귀한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에 수요가 집중된 것도 또 다른 난관이다.

이 일들을 모두 예상하긴 어려웠지만, 백신 개발과 접종이 팬데믹 종식을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많은 이들이 지적했다. 일부 정부 당국자처럼 곧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거나 집단면역의 시점을 못 박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랜 방역조치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겠지만, 어차피 쉽게 끝날 팬데믹이 아니라는 점은 이제는 많은 국민들도 짐작하고 있다. 집단면역으로 가는 길에는 백신 확보와 접종을 넘어 숱한 부작용과 의심 증상을 관리하고, 작은 문제가 백신 거부로 번지지 않도록 대응하고, 1차 접종자들이 2차 접종을 회피하지 않도록 하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접종을 이어가야 하는 등 어려운 과제들이 놓여 있다. 희망에 기댄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냉철한 예측과 협조 요청이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이 어려움을 음모론의 소재로 삼는 이들과 언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가 공급 부족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느리게 접종하고 있다고 비난하거나 웃돈을 얹어서라도 백신을 구해 오라는 식의 주문은 현재의 문제 원인인 이른바 '백신만능주의'를 더 부추길 뿐이다. 백신 계약은 단지 웃돈 얹어서 물건 가져오는 시장의 흥정이 아니며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명시할 것인지, 접종 데이터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등 다른 민감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신을 구해 오라는 식의 주문은 다국적 기업의 협상력만 높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백신 확보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들을 가려버린다.

백신 수급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지자, 정부는 화이자 백신 추가 구입 계약을 공개하고 '속도전'으로 접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확보한 백신을 연내에 서둘러 접종하려면 나중에 가서는 하루에 100만 명을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작년 한국의 방역 성공은 지역 보건인력과 최전선 의료인력을 이른바 '갈아 넣은' 결과이다. 이들을 히어로라고 부르며 헌신에 감사한다고 말해놓고 이번에는 막대한 수의 접종을 새로운 부담으로 안길 수 있다. 백신 확보에만 열을 낸 나머지, 확보한 백신을 접종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설과 인력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정부의 접종 계획이 현실적인지, 민간병원과의 분담은 적절한지 살피는 노력은 관심 밖에 놓여 있다. 마스크를 하루빨리 벗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벗는가도 중요하다. 또다시 누군가를 '갈아 넣고서' 마스크를 벗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신 수급에만 온 관심과 역량을 쏟는 과정을 '백신만능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확진자 수에만 집착하는 과정은 '확진자만능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 사는 우리는 매일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그 추이를 안전의 기준으로 삼는 데 익숙해졌다. 확진자 수가 500명이면 안도하고 700명으로 증가하면 불안해하는 일상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계속되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쳐 있으면서도 왜 확진자 수가 방역조치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왜 1000명이 넘어가면 위협적인지, 하루 수만 명이 확진되는 독일은 어떻게 의료체계가 붕괴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명제는 아니다. 우리가 관찰하고 경험했듯이, 당장의 생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방역조치에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경제적 피해가 지속되면 누구도 안전의 규범을 준수하며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역과 경제는 서로 대립되는 가치도 아닐 텐데 우리는 확진자 수에 주의를 기울이며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말만 계속 듣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자마자 오류율 높은 자가진단키트에 근거해 방역조치를 완화할 것처럼 말한 것은 비판받아야 할 일이지만, 현재의 일방적인 방역정책에 이견을 내고 토론을 한 점은 의미가 있다.

정부당국이 확진자 수 증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중증환자 수도 늘어나고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확진자 수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지만, 확진자 수가 지금보다 좀 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마련하고 취약한 집단을 보호하는 방안을 미리 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상을 최대한 확보하고 운영효율을 늘리고 감염병에 취약한 노인들이 많은 요양병원 등을 잘 보호한다면 확진자 수 증가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높은 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할 수도 있다. 어떤 방역정책이 더 옳은지 논쟁할 생각은 없지만, 한가지 방식의 정책을 정해놓고 다른 방식은 경제를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려는 것이라고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고통을 참고 협조해주었다면 좀 더 시민들을 믿고 공론장에서 더 나은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일을 시도해봤으면 한다. 시민들이 백신 접종 현황과 확진자 수 추이만 지켜보면서 힘든 일상을 견디며 마스크를 벗게 될 날만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감염병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후에도 팬데믹이 또 일어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백신 접종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것인가? 사회적 공론화가 방역에 혼선을 가져올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시민을 믿고 다양한 방안을 놓고 토론했으면 한다. 중증환자를 치료할 의료체계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면 공론의 영역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정부가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시민들도 정부에 마스크를 언제 벗게 해줄 것인지만 묻지 말고 어떻게 벗는 것이 위기 이후의 공동체에 더 나은 교훈을 남기게 될 것인지 함께 토론해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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