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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화를 통해 본 북한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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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화를 통해 본 북한의 모습은?

[2021 평화통일시민강좌 퇴근 후 학교] 유영호 유튜브 왈가왈북 대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1평화통일시민강좌 퇴근 후 학교'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북한바로알기,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 통일방법론을 주제로 4월 15일부터 12월 16일까지 매월 세번째주 목요일 저녁 7시반, 6.15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 15일 "북한 영화로 보는 북한사회"를 주제로 진행된 유영호 '유튜브 왈가왈북' 대표의 강의 주요 내용입니다.

논어를 익히듯 학습을 위해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북한의 영화는 남한의 영화와 목적과 용도가 다르다. 남한은 영화가 문화상품이다. 상품은 유행이 있고 영화도 사람이 끌리는 주제와 영상으로 만들어진다. 유행이 지나거나 스토리를 알고 나면 영화를 또 보는 것은 특별한 재미는 없다.

하지만 북한의 영화는 교양물이다. 우리는 영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중요하지만 북한은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역사책을 여러 번 다시 보듯이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도 텔레비전을 통해 다시 보여준다. 교양을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북한의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원형인물이 있다. 원형인물에 약간의 픽션을 더해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대학생이었다>는 안순금이라는 김일성종합대학 법학과 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 전원이 전쟁에 참전한다. 인텔리들이기 때문에 총 들고 싸우기보다는 대부분 정치공작원 일을 많이 했는데 안순금은 정치공작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미처 올라가지 못하고 희생당했다. 이런 영화를 10년, 20년 뒤에도 텔레비전에서 또 틀어준다.

북한은 '백두산 대학'이라 할 정도로 김정은 위원장도 백두산에 자주 가고 당 간부들도 백두의 칼바람을 맞아봐야 한다며 백두산에 자주 보낸다. <백두의 붓나무>는 김일성종합대학 나온 여자가 백두산 혁명 전적지 중에서도 제일 외지고 험한 '구시물동'이라는 곳으로 자원해서 가서 안내원을 하는 이야기다. 실제 있는 이야기고 이 여성은 지금도 구시물동에서 안내원을 하고 있다.

▲ 유영호 '유튜브 왈가왈북' 대표 ⓒ평화통일시민행동

여성 항일운동가 10명을 꼽으라고 하면, 북한 사람들은 단번에 술술술 답해

남한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여성 항일운동가를 대라고 하면 바로 '유관순'을 답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상의 대답을 잘 못할 것이다. 유관순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하고 상징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밖의 여성 항일운동가는 잘 모른다. 북한 사람들에게 여성 항일운동가를 대라고 하면 너도 나도 10명 정도는 거뜬히 언급할 수 있다.

<만병초>는 민생단사건으로 위기에 몰렸던 '장철구'라는 여성에 관한 영화다. 장철구는 작식대원으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사람이다. 북한 사람중에는 장철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북한의 제일 유명한 상업대학이 평양상업대학이다. 그 상업대학의 정식 명칭이 '장철구 평양상업대학'이다.

김일성의 부인이자 3대 백두장군이라 불리는 '김정숙'의 영화는 매우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 <기다려다오>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이 모두 일제에 의해 희생당한 김정숙이 혈혈단신으로 있다가 만주 항일 유격대에 결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평양의 혁명열사릉은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 대성산 맨 위에는 항일운동의 혁혁한 성과가 있다고 인정된 12명의 항일운동가가 묻혀 있는데 그중에 2명이 여성이다. 한명은 김정숙이고 다른 한명은 '최희숙'이란 여성인데 관동군에 잡혀서 두 눈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니들이 내 눈을 뺏어도 내 눈에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도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화성의숙에서의 한여름>은 김일성이 화성의숙부터 시작해서 만주로 가서 항일운동하기 시작하는 내용의 영화이고 이후 김일성의 항일운동은 영화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고난의 행군 시기는 <밀림이 설레인다>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형상되고 있다.

8권의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에 뛰어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1945년 해방이 되면 끝난다. 분단되기 이전의 일제 강점기만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 표현물이다.

북한영화의 최고봉 '이름 없는 영웅들'

북한영화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장면도 많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시기를 다룬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은 강사 본인이 뽑기에 최고의 영화다. 2002년 통일부에서 탈북자들을 인터뷰해서 '통일인이 보아야 할 북한 영화 50선'을 뽑았는데 이 중에 <이름 없는 영웅들>도 있다.

이 영화는 1952년 여름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 맺을 때까지의 이야기로 1년 동안 전쟁이 어떻게 휴전으로 끝났는지를 알 수 있는 영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반공포로 석방, 정형고지 전투 등이 담겼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20부작에 걸쳐 만들어진 흑백영화인데 최근 칼라영화로 재현되었다.

<축포가 오른다>는 1211고지 포탄이 날아오는 와중에 인민군이 화선악기로 연주를 하는 이야기다. 악기가 없으니 나무를 깎고 유리병이나 탄피에 채우는 물의 양을 달리하여 도레미파솔라시도 음을 내게 하여 화선악기를 만든다.

전쟁 중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이 연주회를 계기로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은 전국의 전투중인 부대에서 화선악기 연주회를 열 것을 지시한다. <축포가 오른다>는 전쟁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는 장면들이 나온다.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승리에 대한 낙관주의를 심어주는 영화다.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는 공화국영웅 안영애에 관한 영화다. 안영애는 전쟁 중에 죽는데 죽으면서 마지막에 한 이야기가 당증을 건네주며 "이번 달 당비가 여기있소"다. 북한 사람들이 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원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로 북한에서 매우 유명한 영화다.

아이들아, 폴란드에 가서도 우리의 말과 역사를 배워야 한다

▲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보아스필름

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란 영화가 있다. 전쟁 직후 폴란드로 간 1500명의 북한 아이들에 관한 영화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남과 북에는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 났다. 남한은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키는 방법을 택했지만 북한은 해외에서 위탁교육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북한에서는 만경대혁명학원, 해주혁명학원, 남포혁명학원 등 도 단위에서 최대한 고아들을 보살피지만 전쟁직후에는 고아들이 너무 많아서 루마니아나 폴란드에 위탁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이 주제를 다룬 영화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다. 북한이 전후 복구로 너무 힘드니 같은 사회주의권 나라들에 아이들을 키워주고 교육시켜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그 나라들에 아이들만 보낸 것이 아니다. 우리말과 역사를 모르면 안된다 해서 국어선생과 역사선생을 같이 보낸다.

그런데 추상미 감독은 결론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한다. 1958, 59년에 북한은 그곳의 아이들을 다 소환한다. 이미 다 컸고 북한의 전후복구 사업이 어느 정도 되었으니 아이들을 다 불러들이는데 추상미 감독은 북한이 천리마 운동을 시작하는데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들였다고 결론 내린다.

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을 보살폈던 폴란드 교사들이 북한에서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받았는데 남한 출신 고아들이 적지 않다고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영화 <새세대를 위하여>나 <그들의 모습에서>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때 남한에도 엄청난 학살이 진행되었고 고아들이 많이 생겨났다. 인민군이 남한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이때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데리고 올라갔고 이 아이들이 나중에 폴란드로 갔음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 때 9살짜리 금순이가 일제에 의해 공개 처형되었으며, 영화 <태여나 아홉해>는 그의 삶을 담고 있다. 금순이는 김일성 사령부가 있는 유격구에 있다가 민가에 내려간 사이에 관동군 토벌대에 잡혔다. 토벌대는 금순이가 김일성 사령부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문을 했다. 하지만 금순이는 끝까지 말을 안하다가 끝내 공개처형 당한다.

이것이 인도를 비롯한 몇몇 아시아 나라의 신문에 일본의 잔혹성을 보도하는 기사로 보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 북한의 건국과 일제 강점기에 관련한 영화들은 역사책 넘기는 것처럼 짜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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