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신문에 말도 안 되는 프랑스어 간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읽고 나니 한국어학과 교수로서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를 즐겨 쓰는 시대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연결해서 간판으로 만든 것이 가엽기도 하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옛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중국을 여행하던 중에 한글로 해설을 해 놓은 것 중 틀리는 것이 너무 많아서 실망한 적이 있는데,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간판을 보면 바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한다. 물론 단어를 조금 바꿔서 표절을 피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쓰면서 이상한 내용이 나오기도 하고(어느 신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하얀 반려동물의 집’이라고 쓰려고 한 것이 ‘백인의 방귀’라는 엉뚱한 해석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관사를 잘못 붙인 것은 애교가 될 정도로 틀린 것이 많아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의 말에는 외래어가 많다. 예부터 외국어의 수용에 관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말 중에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 엄청나게 많고, 일본에서 유래한 한자어, 일본말에서 온 단어, 그리고 근자에 영어의 영향 등으로 우리말 명사의 많은 부분을 외래어가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팩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치면서 보아도 키보드, 모니터, 스마트 폰 등등 많은 외래어 단어들이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온 단어들로는 바리깡, 와이로, 짬뽕, 담합, 수순 등이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외래어(우리말로 표기하기보다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외래어라고 한다.)를 차용해서 쓰는 것을 용인하되 그 발음을 가능하면 원어에 가깝도록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독창성이 강해서 그런지 나름대로 자기 입맛에 맞게 발음하고 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외래어들의 발음과 실제 표기가 다른 것이 너무도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 안에 있는 것이 국립국어원에서 지정한 바른 표기법이다.
1.알미늄(알루미늄), 2.호일(포일), 3.알카리(알칼리), 4.알콜(알코올), 5.애드립(애드리브), 6.앰블란스(앰뷸런스), 7.업사이드(오프사이드), 8.엔돌핀(엔도르핀), 9.짚시(집시), 10.카톨릭(가톨릭), 11.카페트(카펫), 12.컨닝(커닝), 13.콩쿨(콩쿠르), 14.타겟(타깃), 15.판넬(패널), 16.플랑카드(플래카드), 17.함박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
위에 나열한 것은 대부분이 우리가 많이 잘못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들이다. 이것 외에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나 주변에서 자주 틀리게 사용하는 것들만 모아 보았다. 위의 것들은 TV 자막을 보아도 그렇고, 출연자들의 발음을 들어도 좌측에 있는 것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쿠킹호일’이라고 했지 누가 ‘쿠킹 포일’이라고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전에도 ‘foil’은 “포일 : 금, 알루미늄 따위의 금속을 종이같이 얇게 편 것, 특히 요리나 포장에 쓰는 알루미늄박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다. 분명히 호일이 아니고 ‘포일’이 맞다. 우리말 표준어는 ‘서울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다. 그러면 ‘호일’이 표준어가 되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 외래어 표기법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 규정에 맞게 표기하고 발음해야 한다. 가능하면 본토(?) 발음에 비슷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이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부분이 왼쪽에 있는 것으로 발음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언어에 자신이 없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규정에 맞게 발음하고 써야 한다.
한국어도 잘 모르면서 외국어를 논하기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언어가 자신의 인격임을 생각한다면 바른 표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교양인다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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