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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테두리' 안에서도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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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테두리' 안에서도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최창렬 칼럼] 절제된 규범에서 멀어진 정부

1892년 미국 집권당인 민주당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원했을 때 후보 지명을 거절했다. 이유는 세 번째 출마가 당시의 '성문 헌법' 위반은 아니지만,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3선을 거부해서 생긴 '성문화 되지 않은 헌법', 즉 '규범'을 위반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이 규범을 위반하고 3선에 당선됐다. 루스벨트의 규범 위반은 결국 임기를 제한한 수정헌법 22조(대통령 임기의 제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는 미국 민주주의를 지켜 온 중대한 규범들이다. 이러한 자제의 규범은 내각제보다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대통령제에서 핵심 가치이다.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지배한다. 위법은 아니지만 법적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적 경쟁자를 영원히 퇴출시키겠다는 적의(敵意)가 작동한다. 이를 미국 법학자 마크 터쉬넷은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라고 명명했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러한 태도는 극단적 정치 분열로 이어지고 배타적 승부의 세계만 남는다. 상대 정당은 이미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되고, 이러한 정치문화는 민주주의에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정쟁도 규범과 관습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제에서 입법부와 사법부는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과 사법도 행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협조할 의무가 있다. 야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권력이 분열되면 야당이 제도적 범위 내에서 최대한 권한을 휘두르려 할 것이다. 이 때의 입법부와 사법부는 대통령을 감시하는 견제견이 아니라 투견이 된다.

여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할 때는 여당은 헌법적 의무보다 대통령의 권력 강화에 집중하며 야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 감시견의 역할보다는 권력에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전락할 수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공저)

전자와 후자 어떤 경우라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지만 한국정치는 이에 정확히 일치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와 합법적 제도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전형적 경우다. 민주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정의할 수 있지만 권력운용이란 면에서 본다면 주권자에 의해 선출된 집단이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조직화된 집권세력에게 핵심 권력자본은 인사권이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 야당 동의 없는 장관 임명, 법관 탄핵,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배제 시도, 환경부 산하 기관에 대한 무리한 인사 등 관용과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규범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권력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경우 재판에 개입한 점은 분명 국회의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분리라는 대전제라는 측면에서 검찰에 남겨졌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대형참사·방위사업)까지 모두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검찰에게 기소권만 남긴다는 것도 찬반은 있지만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장관 임명도 인사청문회의 보고서 채택이 장관 임명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그러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의 경우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가 검찰개혁의 방향이지만, 공청회나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도 생략되고 수사청 설치 시 예상되는 무수한 문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 소동도 그렇다.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정수석이 이 과정에서 배제되어도 제도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 제도는 왜 있으며 법무부와 검찰 갈등을 완화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비검찰 출신 민정수석 기용이라는 원칙마저 깨면서 신임 민정수석을 임명한 이유는 뭔가.

적폐라는 이름의 뒤틀린 관행은 척결해야 하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규범이 권력의 편의에 따라 무시되는 것은 과도한 권력 운용 이상 이하도 아니다. 제도의 틀 내에서 주어진 권한이라 할지라도 야당의 동의 없이 빈번히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의 자제의 규범이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계급 간 적대감과 이념 갈등도 제도적 특권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것에 기인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권력을 얻는다"는 원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을 세웠다. 성문화 되지 않은 절제된 규범이 기능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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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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