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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한 풀어달라" 성폭행범 혀 깨문 70대 여성 재심청구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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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한 풀어달라" 성폭행범 혀 깨문 70대 여성 재심청구 기각

당시 적용된 중상해죄 다툴 여지 없다 판단...재판부,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은 공감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돼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던 최말자(75) 씨가 56년 만에 청구한 재심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최 씨에게 적용된 중상해죄의 증거와 혐의를 바꿀 근거가 부족하다면서도 그의 용기와 외침에 대한 공감하면서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권기철 부장판사)는 18일 최 씨가 제기한 재심청구를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및 제7호에서 정한 재심 이유가 없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 부산지법 앞에서 최말자 씨 재심 청구를 촉구하고 있는 여성·시민 사회 단체 일동. ⓒ프레시안(박호경)

이 사건은 최 씨가 18살이던 지난 1964년 5월 6일 오후 경남 김해 집에서 나섰다가 마주친 노모 씨가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달려드는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던 최 씨가 갑자기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을 느끼고 힘껏 깨물며 저항하면서 노 씨의 혀가 1.5cm가량 잘렸다.

최 씨는 힘겹게 자리를 벗어났지만 노 씨는 자신의 혀가 잘렸다며 보름 뒤 흉기를 들고 친구들과 최 씨의 집에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 이후 노 씨는 최 씨를 상해죄로 고소했고 검찰 소환장을 받고 검찰을 찾은 최 씨는 이유도 모른 채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성폭행 가해자였던 노 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최 씨는 정당방위를 외쳤으나 검찰은 오히려 그에게 중상해죄 혐의를 적용했고 노 씨에게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 침입,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했다.

결국 최 씨는 노 씨(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서야 구속된 후 6개월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풀려날 수 있었다.

50년 동안 혼자 속으로만 고통을 삭혀오던 최 씨는 지난 2018년 본격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벌어지자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변호인단을 꾸린 결과 사건이 발생한 지 딱 56년 만인 지난해 5월 6일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재심청구 재판부는 지난해 8월 21일, 12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심문을 진행했지만 사건 당시 검찰에서 제시한 중상해 혐의가 형사소송법에 따라 원심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증거가 있거나 확정판결로 증명된 범죄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검찰이 적시한 혐의가 최 씨가 노 씨의 혀를 절단해 '최 씨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만들었다는 부분에 있어서 전문가인 의사가 만든 상해진단서와 감정서 같은 객관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판단했고 실제로 상당한 언어능력 장애가 발생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형법상 중상해죄의 구성요건인 '불구'의 개념이 반드시 신체 조직의 고유한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만을 의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확정판결도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당하는 불구'를 형법상 중상해죄로 인정했기에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최 씨 측은 당시 검찰은 긴급 구속 요건이 인정되지 않았음에도 최 씨를 불법 구금하고 불리한 진술을 강요해불법체포‧감금죄,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 협박죄를 저질렀고 재판부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범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생면부지의 건장한 남성으로부터 힘으로 눌려 성범죄를 당한 순간, 열아홉 소녀는 오로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입안에 들어온 혀를 깨문 것이다. 과연 오늘날과 같이 성별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고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에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정해져 있는 법에 따라 혼란을 방지하고 우리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가꾸어 간다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기둥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고 회자되었던 '혀절단' 사건의 바로 그 사람인 청구인이, 반세기가 흐른 후 성별간 평등의 가치를 선언해 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러한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답변한다.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한편 재심청구 기각에 대해 최 씨 변호인 측은 즉시 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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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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