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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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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다

[희망뚜벅이 김진숙] 나의 다른 이름 김진숙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했다. 월요일을 빼고 매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이다. 2월 7일을 도착일로 하는 행진은 애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50~60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실을 예정이다.

지난 해 여름이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다. 35년 해고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모습은 나에겐 아픔이었다. 2020년 아시아나항공 하청의 재하청에서 기내 청소 노동자로 일하다 코로나19로 정리해고 되어 나 또한 해고자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부당하고 억울하고 분한 일인데 김진숙의 얼굴은 밝고 환했다.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35년 해고의 아픔을 간직한 얼굴이라고 하기엔 그의 표정은 너무 평화로웠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다시 보고 싶어 1월 17일 17번째 희망뚜벅이에 참여했다.

황간역에서 심원보건 진료소까지 김진숙과 나란히 걸었다. 김진숙의 발걸음은 너무 빨랐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나는 쉽게 따라붙을 수가 없었다. 매서운 바람이 콧등과 귓볼을 스쳐 지났고 함께 걷는 사람들은 서로 귀마개를 건네 씌워줬다. 몸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에서 보낸 35년의 세월. 그렇게 마지막 한 번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외침에 정부도 자본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과 자본이 결탁해 부당하게 해고시킨 책임을 아무도지지 않았다.

김진숙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증언을 들었다. "해고자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고, 평생 한으로 남아 저승까지 가져가면 저승에 내 자리로 찾아갈 수는 있을까"라는 그녀의 목소리에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진숙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김진숙은 또 다른 나의 이름이었다.

직장갑질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간 실직 경험을 물었더니 비정규직 노동자 37%가 실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그 중 한 명이 나였고,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은 공평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해고에 눈을 감고 있다.

부산, 대구, 대전을 거쳐 김진숙이 서울로 오고 있다. 김진숙의 발걸음 하나마다 사연을 싣고 청와대를 향해 오고 있다. 수백, 수천, 수만의 김진숙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희망뚜벅이’. 나는 이 이름이 참 좋다. 김진숙의 얼굴에 평화가 깃들어 있는 이유는 그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김진숙의 발걸음에 내 작은 발걸음을 보탠다. 김진숙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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