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행정부는 경제 관련 기능은 줄이면서 복지, 국민안전, 총괄조정 기능은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획예산과 경제기능의 분리로 전반적인 국정총괄 기능강화, 과학기술 기능을 국가R&D와 혁신의 총괄 역할로 활용하기 위한 조직분리, 조직과 인사의 통합으로 행정부 관리역량 강화, 산업 관련 기능의 통합 및 조직 축소가 필요하며 복지와 보건의 분리가 필요하다. 아울러 부처내에서 가급적 실장을 없애고 자체 개혁을 위한 혁신차관보를 두기를 권한다. 이러한 기능 및 조직 개편 후 정부운영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채용, 보직, 평가 등 인사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필자)
정부조직 개편의 원칙
그간 행정부는 국가적 의사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우리 행정부의 권한은 국회, 지방정부, 시장, 시민사회를 모두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행정부가 모든 국가적 결정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다양한 가치가 추구되고 있어 국가적 목표설정에 국회, 지방, 시민사회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복지, 국민안전 및 질서 등 행정부가 더욱 확대해야 할 분야도 있다. 그러나 경제 관련 기능은 행정부가 더 축소해야 한다. 이와 같이 정부는 앞으로 더 확대해야 할 기능과 축소해야 할 기능을 선별하여 이를 정부조직 개편에 반영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정부 조직을 개편해왔다. 그러나 그간의 조직 개편은 정부가 하는 일은 그대로 두고 이를 부처로 그룹핑 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부 조직 개편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행정부 기능 중 국회, 지방, 시장에 기능을 이관하고 진정으로 중앙정부가 수행할 기능은 더 키워야 한다. 기능개편이 조직개편보다 더 중요하다. 둘째, 중앙 관리 부처의 역할을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국무총리실의 부처 간 조정기능, 기획예산의 총괄기능, 과학기술의 R&D혁신 총괄기능, 그리고 정부개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지금은 2008년 조직 개편 이후 부처 규모가 커져 한 부처에 2명의 차관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부처에선 내부 소통과 장관의 부처장악이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다. 거대 부처를 기능별로 분리하여 장관의 부처 장악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장관 숫자가 늘어나면 ‘큰 정부’라는 오해가 있으나 큰 정부는 장관 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넷째, 소부처주의에도 불구 시너지 창출을 위해 통합이 필요한 부처는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상의 원칙을 바탕으로 부처 단위의 조직개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
지금의 기획재정부는 2008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하면서 탄생하였다. 경제정책을 총괄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경제침체가 일상화 되다 보니 기획재정부가 분기별 고용 및 성장률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획재정부의 예산실은 이제 고용, 성장률 등 단기 성과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느낌이다. 기획예산 기능에는 중장기적 관점이 중요하나 경제 기능에는 단기 지표가 중요하다. 중장기 목표와 단기목표가 충돌할 때에는 늘 단기목표가 승자가 된다. 기획예산 기능과 경제기능을 분리해야 중장기적 관점이 살아 난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경제 부처이면서 예산, 미래 전략, 공공기관 관리 등 중앙 관리 기능도 수행한다. 경제 부문 대표 선수로 뛰면서 심판까지 보는 셈이다. 예컨대 기재부는 공공기관을 총괄 관리하면서도 한국수출입은행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이다. 기재부가 투자 개방형 의료 기관 설립을 지지하면 복지부는 기재부가 경제 논리로 사회문제를 재단한다고 비판한다. 기획예산 기능은 경제 기능이 아니다. 이를 경제 부처로부터 독립시켜 중장기적 관점을 가진 총괄 조정 및 국정기획 기능을 수행케 해야 한다. 분리된 경제기능에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통합하여 국내 금융정책(금융위원회)과 국제금융(기획재정부)으로 분리되어 있는 금융정책 기능을 일원화 해야 한다. 반면 금융감독 기능은 별도로 분리해야 한다. 그간 금융위원회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모두 수행하다 보니 두 기능간 충돌이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획예산 기능은 1999년~2008년까지 존속되었던 기획예산처 형태로 두거나 김대중 정부 초기의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위원회 체제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조직 및 전자정부 기능을 인사혁신처와 함께 신설 행정혁신처로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 정부조직 기능은 지방자치나 안전기능보다 인사 업무와의 관련성이 더 높다. 단, 조직인사 기능에서 각 부처에게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남는 지방자치 및 안전 기능은 내무부 혹은 주민지원부 등 이름으로 전환하길 권한다. 이렇게 되면 1998년 이전의 내무부-총무처 체제와 유사하게 된다.
앞으로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정책과 국가 R&D 배분을 넘어 대한민국 혁신성장의 핵심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전 부처에 대한 R&D 배분권도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권한 조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기술사업화 관련 예산에 대한 총괄 조정권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는 물론 산업부와 중소벤처부의 기술사업화 기능을 포괄하여 전반적인 혁신성장의 자원배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과기부가 혁신 총괄부처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다. 먼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로 분리되어야 한다. 정보통신이 과학기술의 매우 중요한 분야이기는 하나 과학기술에는 그 외에도 많은 영역들이 있다. 과학기술이 한 분야에서 벗어나야 중립적이고 총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25개 과기계 출연연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마찬가지로 국무총리실로 이관해야 한다. 그간 과학기술부는 심판(자원배분)과 선수(출연연)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앞으로 국가 R&D의 중심은 정부출연연이 아니라 대학이 되어야 하는데 과기부가 출연연을 관장하는 한 중립적 자원배분 부처로서의 중립적 역할이 어렵다. 대신 PBS의 폐지 등 정부의 통제를 대폭 줄이고 과기부의 관리 기능을 대폭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이관해야 한다. 한편 새로운 정보통신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통합하면 될 것이다. 이 때 방송통신위원회의 합의제적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결정은 비상설 협의체를 거치도록 하던지 국회 보고를 의무화 하면 될 것이다. 정보통신부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미디어 정책 기능까지 모으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통합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책대상 기업의 규모에 따라 부처를 나누는 것은 유니콘 기업이 탄생해야 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두 부처 통합 과정에서 그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그 인력은 기능이 확대되는 타 분야로 이동시켜야 한다. 한편 통상 기능은 분리하여 통상교섭처를 신설하는 것이 좋겠다. 통상교섭은 국내산업 보호라는 관점을 넘어서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수세적 무역정책이 필요하므로 통상 기능을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면 외국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입장이 많았으나 이제는 달라진 우리의 국가위상을 고려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되어야 한다. 이 두 분야는 향후 그 기능이 더 커져야 하는데 양쪽을 다 잘 아는 장관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같이 하는 일이 많아 논리적으로는 두 부처를 통합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정치적 함의까지 고려한다면 현행 유지도 가능하다. 복지부에 노동부의 고용 업무까지 포함하는 대통합을 이루는 방안도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거대 부처가 탄생하는 문제가 있어 복지부와 고용노동부를 그대로 두고 두 부처간 협력 및 조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1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국토교통부도 국토부와 교통부로 분리를 검토할 수 있으나 국토와 교통의 시너지도 의미가 있으므로 현행대로 존치하는 것이 좋겠다.
끝으로 상설 정부개혁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각 부처는 자신의 권한을 국회, 지방, 시장으로 이관하는 일은 절대 스스로 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가 정부조직법을 관장하고 있으나 정부가 더 해야 할 일, 그만 할 일을 골라 내는 일을 추진할 힘도 의지도 부족하다. 행정부를 개혁할 별도의 추진 주체가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벤치마킹하면 될 것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위원장을 상임으로 하길 권한다. 정부의 기능을 조정하는 일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정부가 존속하는 한 지속되어야 한다. 위원회의 과반 위원은 민간 전문가로 하고 주요 부처 장관을 당연직으로 위촉해야 한다. 사무국 구성원 중 국장급 이상은 모두 민간 계약직으로 채우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각 부처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분야별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분과를 사무국의 국장급이 지원토록 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사무국의 과장 이하 직급에는 신설될 기획예산처(혹은 기획예산위원회)나 행정혁신처 공직자들을 주로 파견하면 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부처내 조직개편
각 부처 안에서의 조직 개편도 필요하다. 먼저 가급적 실장을 줄이고 혁신차관보를 두도록 하자. 예산실, 세제실 같은 경우는 예외이나 많은 부처는 1급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국을 실 단위로 묶어놓고 있다. 관련성도 낮은 국을 실장 밑에 두는 것은 불필요한 결재 단계를 추가하는 일이다. 자연히 실장은 국장급과 장차관 사이에서 애매한 존재가 된다. 반면 차관보는 소관 국을 총괄하는 역할이 아니므로 결재 단계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차관보는 여러 국이 관련된 종합적 업무를 장차관으로 위임받아 수행하는 자리로서 해당 부처를 개혁하는 업무가 차관보의 대표적인 업무가 되어야 한다. 각 부처별로 혁신차관보를 두도록 하자. 이 자리는 개방형으로 하여 외부의 민간전문가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다. 한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장 아래의 부국장격인 기획관 등은 불필요한 자리이다. 국장이 총괄하기 벅차다면 국을 두 개로 쪼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조직 개편만큼 중요한 것이 의사 결정 절차이다. 이젠 상명하복 대신 수평 조직 간 회의로 집단적 의사 결정을 해보자. 우리 정부에선 하급자가 상급자와 상의하고 그 결과를 그 위 상급자에 보고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명하복 문화가 작동한다. 우리에겐 수직적 의견 교환만 있을 뿐 수평 조직 간 의견 교환이 드물다. 과거에는 수직적 의사 결정 체계가 효과적이었다. 의사 결정과 집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빠른 집행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더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좋은 아이디어는 다양성과 융합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세종시 이전 이후 수평적 의사 교환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특정 정책을 담당하는 라인의 의견만 모아지고 있다. 앞으로 중요 사안은 장관 주재 실국장급 회의에서 결정해보자. 부처가 작아지면 이런 집단적 의사결정이 더 쉬워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장 주재 과장급 회의에서 국의 주요 안건을 결정해보자. 이 때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없다면 회의는 무의미하다. 상명하복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장관의 생각이 바뀌면 변화가 시작된다.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한다.
인사제도 개편
정부의 기능과 조직을 바꾼 후에는 이를 운영하는 방식, 즉 인사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 공무원 인사제도의 문제점은 공무원이 부처 이기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며 잦은 보직이동으로 전문성과 책임성이 없어 면피정책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5급 공채를 폐지하고 모두 7급으로 뽑자. 7급 공채자는 대체로 과장으로 정년을 마치게 된다. 대신 현행 20%로 되어 있는 개방형 직위를 100%로 늘리자. 이렇게 하면 공직자의 한 자리 재임기간이 길어지고 책임성과 개방성이 높아져 위에서 언급한 공직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평가담합을 깨기 위해 상위 평가자에게는 보직선택권을 부여하자. 정부의 기능, 조직과 함께 인사제도를 바꾸어야 정부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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