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더불어민주당·추미애 법무부 장관 대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구도를 감안하더라도 여권의 윤 총장 압박은 정도(正道)를 벗어나고 있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건곤일척의 싸움에서도 적장에 대한 예우와 금도를 넘지 않는 기품이 있을 때 역사는 값진 승리로 기억한다.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수사를 정권에 도전하는 정치행위로 규정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불거진 대검찰정의 특수활동비를 윤 총장의 정치자금으로 설정하여 공격한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추 장관의 특활비를 문제 삼는 졸렬한 정치행태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처음에는 진정성을 가지고 검찰개혁에 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더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보수정권에서도 추진했던 사안이다. 지난 해 패스트트랙의 논란과 파행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의 대의 앞에서 국민의힘의 공수처 설치 반대는 명분을 잃었다. 물론 윤 총장도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윤석열 검찰은 공수처에 반대하며 검찰의 거대권력을 가지고 정권에 저항하는 정치검찰의 전형으로 설정됐다. 검찰은 기득권을 표징하는 최악의 존재로 전락했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적폐를 수사할 때와 지금의 검찰은 다른 검찰인가. 무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검찰개혁은 이제 상대를 제압할 때 등장하는 식상한 단어가 됐다. '검찰개혁'이라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진부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권이 이 언어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도 구성원의 동의와 지지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검찰개혁의 대의가 정권핵심들의 정치적 이기주의의 수단으로 오염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윤 총장의 국정감사장에서의 모든 발언은 물론, 검찰 내 행사 때의 원론적 발언도 정권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규정하여 전방위적으로 그를 압박한다. 정권과 검찰총장 대립의 연원을 살필 때가 됐다. 필자의 개인 생각이지만 논리의 단순함과 투박함을 무릅쓰고 여권과 윤 총장 갈등의 현실적 측면들을 추론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 때 검찰은 그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후보자 압수수색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여권핵심에게 대통령 인사권에 저항한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장관 내정자를 소환도 없이 압수수색했고 다른 수사에 비해 그 횟수도 상식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조 후보자에 대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일각에서 장관불가론이 고개를 들었고 조국 청문회 개최 여부가 최대 이슈로 부상하는 상황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의혹투성이' 장관이 정권의 핵심부처에 임명된다면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정권은 빛을 잃을 수 있고 이는 정권을 아끼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임명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을 윤 총장이 했을지 여부는 추론의 영역이고, 이 생각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후 청와대 인사들이 관련된 수사들이 있었고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권 핵심들은 이를 윤석열이 대통령의 인사권과 정권에 대한 도전한다는 논리의 연장에서 본 것이다.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온 추 장관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잘 알 것이고, 그의 윤석열 압박은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에 입각했다. 2005년 이후 처음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행사됐고, 급기야 국감에서 윤석열의 이른바 '작심 발언'이 이어지면서 정권과 윤 총장의 대립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급기야 특활비를 문제 삼았지만 추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에는 특활비를 배정하지 않았다는 여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윤 총장이 대검 특활비를 주머니 돈처럼 쓴다'는 추 장관의 주장도 입증되지 않았다. 무리한 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이 드러났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여권의 행태는 민주당 의원 일반의 지지에 기반하는가. 아니면 친문의 총대를 맨 몇몇 의원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것인가.
물론 윤 총장의 발언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평검사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나오는 말을 검찰이라는 '거대권력'의 조직적 저항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어차피 특정 사태가 진행되면 양비론적 관점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추 장관이 윤 총장보다 잘못이 많다는 여론조사와 조사 방식·설문에 대한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의 대권 주자 선호도 1위의 여론조사의 함의도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권력은 자제되고 절제될 때 힘을 갖고 설득력을 발한다. 윤 총장 공격에 앞장섰던 이철희 전 의원은 총선 직후 민주당에 탈당계를 내면서 "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쓰면 얼마 못 버틴다"라는 말을 했다. 민심의 눈높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권력이 관용을 잃고, 수적 우세에 몰입되어 상대를 반개혁의 낙인을 찍어 쫓아내려는 행태는 당당하지 않다.
국민 일반이 동의하고 있는 검찰개혁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문제, 공수처가 원하면 수사정보 등 수사관련 일체를 넘기는 문제 등에 대해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제도화와 관련한 논쟁과 토론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여권이 제시하는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반개혁으로 몰아붙인다면 이 행태는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의 '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윤 총장 사퇴가 정권창출에 긴요하고 정권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라면 차라리 윤 총장을 해임하면 된다. 검찰총장의 임기제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미 여권은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가진 정치검찰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면 적어도 형식논리로는 윤 총장을 해임하는 게 맞다. 인사권은 권력핵심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 아닌가. 대통령 인사권에 저항했다고 이미 규정한 인사를 해임하는 게 무엇이 이상한가. 아직 윤석열의 결정적 치부를 발견 못해서인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정치검찰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도 사람의 행위이고 모든 사안에는 정도(程度)가 있는 법이다. 이쯤에서 멈추는 게 정권을 지지하고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보통수준의 인식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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