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 말은 보수 진보, 여야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인용된 말 중의 하나로서 가히 어록에 수록되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사회에서 기회가 더 평등해졌고, 과정의 공정함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로 가기 시작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힘이 정의이고,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말은 플라톤의 '대화편' <공화국>에서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로 하여금 내리게 한 정의(正義)의 정의(定義)이다. 또한 '대화편' <골기아스>에서 소피스트인 칼리칼레스는 도덕을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약자의 발명품'이라고 비난한다.
아들 병가 연장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서 추미애 장관의 국회 답변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추 장관은 올해 초 인사청문회를 포함한 국회 답변에서 시종일관 '보좌관에게 지시하지 않았고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결과도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에 대해 추 장관은 "국민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면서도 야당에 대해서는 자신과 아들에 대한 "근거없고 무분별한 정치공세"라고 비판했다. 자신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나 해명도 없다. 야당이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신을 공격의 소재로 삼기 위해서 무리한 주장과 공격을 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추 장관 아들 휴가 관련 의혹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언론 보도가 없지 않았고, 야당이 이 사건을 정치적 공세의 장으로 삼으려 했다는 지적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정당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 1월에 고발된 사건을 뭉개다가 수사를 본격화한지 불과 20여일 만에 수사 결과를 내놓고, 그것도 지난 22일 추 장관 아들 서 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이후 불과 6일 만에 결과를 발표한 것 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지원장교인 김 모 대위가 처음에는 "휴가를 승인했다"고 했다가 나중에 번복한 사실 등에 대해 대검이 보강 조사를 지시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등 추 장관 측 검찰 인사가 방향을 정해놓고 맞춤형 수사를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야당이 특검을 주장하지만 여당이 받을 리도 만무하고 특검을 한다고 진실이 밝혀지겠는가. 정치의 장에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태는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이지만,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는 법무부의 수장이 보여 준 행태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정권의 철학으로 내세운 정부라면 장관의 거짓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률적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하더라도 '정의'를 관장한다는 부처의 수장이 개인적인 문제에서 국민을 속였다는 사실은 법을 위반한 행태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며, 정권의 성격과 도덕성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회에서 국민들을 향해서 명백하게, 그것도 누차 거짓을 말한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검찰개혁을 추진할 명분을 가질 수 있는가. 도덕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도 쉽지 않은 것이 기득권의 저항이고 개혁이다.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당사자인 고위공직자의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대표성과 책임성이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라는 당위가 아니더라도 평균적 자연인에도 못 미치는 도적 수준과 정의의 관념을 가진 공직자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이를 인식하는 지성과 정의감이 리더십의 용기이고 결단력이다. 강성 지지층과 팬덤의 맹목적 지지는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정의와 공정의 잣대를 정확히 적용하고 협애한 법의 영역을 벗어나 시민들의 정의와 도덕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정치철학에 입각하면 된다.
"공직으로부터 무능과 부패를 몰아내고 공공의 복리에 이바지하는 가장 훌륭한 인물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방법의 발견 – 이것이 정치철학의 과제이다." 1926년 출판되자마자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단기간 내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윌 듀렌트의 저서인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곱씹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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