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공부하며’를 모토로 후학 양성에 앞서왔던 사명기 충북도교육청 국제교육원장이 31일 교편을 내려놓고 정들었던 교육 현장을 떠났다.
지난 38년간 교사로 봉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사 원장은 개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송고를 도내 83개 고교 중 3위에 오르게 하는 등 남다른 열정과 노력을 불살랐는가 하면 국제교육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원어민을 활용해 온라인 교실을 선제적으로 제작해 코로나19에 대응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사 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걸어온 길과 교사로서의 바람직한 자세, 후배 교사들에 대한 조언 등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전화로 이루어졌다.
프레시안 : 교사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명기 : 군에서 제대 하자마자 서울의 기업체에 입사했다가 업무에 시달려 회사를 그만 두고 잠시 교사의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둘 계획이었다. 그러나 배를 두 번 갈아 타고 출근해야 하는 단양 영춘중에서 교사를 시작하고 난 후 학생들이 감나무에서 익은 감을 따서 교탁에 가져다 놓거나 옥수수 삶아 교탁에 몰래 올려놓고 가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교육 현장이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사람을 가르치고 젊은 아이들과 만나서 교육하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이후 교사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커 가는 것인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교직 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한 가지만 소개해 달라
사명기 : 단양 영춘중에서 충주여고로 옮긴 후 가르쳤던 여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달 전쯤에 그 제자로부터 손으로 쓴 6장짜리 편지를 받았다. 졸업 후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제자로부터 편지를 받아 읽다가 그 여고생이 떠올랐다.
이 제자는 제가 담당했던 서양철학과 윤리 수업 시간 도중 수업 내용에 관한 책을 충주에서 구하지 못하자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고3이 됐을 때 철학과를 가겠다는 것을 설득해 서울대 사회학과를 보냈다.
편지 내용을 읽어 보니 제가 수업 시간에 ‘서양의 역사, 문화, 철학을 이해하려면 서양사의 두 가지 핵심인 헬레니즘과 히브리즘(또는 헤브라이즘)을 알아야 하고 헬레니즘을 공부하려면 그리스·로마신화를 알아야 하고, 히브리즘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당시 그 제자가 봤을 때 저는 크리스찬이 아니었음에도 ‘절대자인 신을 만나면 행복해할 것이다, 그래서 단두대에서도 찬양을 하면서 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보면 신을 만나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제자는 회상하고 있었다.
그 제자는 저의 말에 크리스찬이 아니었음에도 대학에 입학한 후 크리스찬 관련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졸업을 하자마자 결혼한 후 남편을 신학대학에 보내 목사의 길을 걷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경기도 일산에서 선교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6장의 편지지에 손으로 꼼꼼히 써서 제게 보내왔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말도 어떤 학생에게는 일생에 영향을 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편지는 눈물로 읽었다.
프레시안 :고교에서 가르치는 수업 내용 치고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 아니었나
사명기 : 제가 교사로서 가지고 있는 신조는 ‘교사는 가르치기 이전에 공부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밤을 새워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지적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도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지적 겸허’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공부를 하지 않는 교사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교직은 첫째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수업시간이 아주 재미있게 느껴진다. 또한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며 진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교사들에게 “책상 위에 있는 참고서를 모두 서랍에 넣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참고서에 나와 있는 지식은 매우 단편적인 것이고 교사는 전문직인 만큼 대학교에서 전공했던 전공서적, 새로운 연구 저널 등을 놓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면 훨씬 더 스스로에게도 위안이 되고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권유했다.
프레시안 : 오송고 교장 재직 시절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첫해에는 공부에 흥미를 많이 갖지 않고 있는 학생들이 입학을 했고 사 원장님이 공모교장을 부임했던 다음 해에는 자율형공립고로 전환되면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해 학력격차가 심했고 남녀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등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을 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어떻게 학교를 성공적 궤도에 올려놓았는가
사명기 : 개교 1년 후 부임했다. 김홍준 당시 교감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안정을 시켜 놓았다. 부임 후 첫 번째 강조한 것은 벌점으로 인해 강제전학을 시키거나 자퇴를 시키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학교에서 내보낸다면 이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 적응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오송고에는 생활지도 상 봉사 등 좋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학술 관련 또는 특기적성 동아리 등 학생 자율동아리도 아주 많이 활성화돼있었다. 1학년 입학하면 미래의 명함 만들게 해 방향을 정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전교생에게 ‘돌다리’라는 설계노트를 지급해 10년, 20년 후의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등 노력을 펼친 결과 인근 아파트에서 민원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했던 1회 입학생들이 3학년이 됐을 때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밤 11시가 다돼서 교실을 돌아보면 3학년 교실은 정리가 깔끔하게 잘돼있었다. 생활을 안정적으로 잘해줘서 학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으나 대학진학률은 매우 좋았다. 수시진학에 많이 합격했고 서울로도 많이 진학했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지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함께 노력해준 교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인사를 드린다. 당시 오송고 교사들은 혼연일체로 모두가 열심히 해줬다. 함께 노력을 한 결과 개교 후 초창기 어려움을 겪던 오송고가 83개 고교 중 4위까지 올린 것은 참 보람됐다.
프레시안 :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심정은
사명기 : 40년 가까이 지내면서 스스로에게 ‘학생들을 편견을 가지지 않고 대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해 자문을 해봤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저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아이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정서적으로 어렵거나 가정적으로 힘들었던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접근해서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했던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니 부끄럽기만 하다.
교사들에게도 조직발전을 위해 소통하자고 했고 이를 위한 대화의 장을 많이 마련했지만 나의 의사에 반하는 입장을 표명한 교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가 생각해보니 그들을 이해하는데 노력하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교사 각자의 역량이나 특성이 다른데 보편적인 입장에서 교사들을 대하려고 했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특성을 이해하려고 한 부분은 너무 부족했다. 제자들과 교사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많이 든다.
또 도교육청 학교정책과에 근무할 당시 학교정책, 교육과정, 방과후학교, 참여교육, 국제교육 등 여러 부분을 담당하는 장학관으로 일했다. 그렇게 많은 정책들을 한 것이 지금 돌아보면 정말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모두 필요한 것이었는가를 뒤돌아보면 그 중 일부에 대해서는 좀더 세심하게 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든다.
프레시안 : 공식 퇴임식을 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기타를 연주해줬다고 들었다.
사명기 : 코로나19로 공식퇴임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기념품만 전달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으려고 했는데 직원들이 몇 사람만 모여서 약식으로 퇴임식을 하자고 제안해왔다. 그런데 직원들이 기타를 가지고 와서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해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랑’을 불렀다. 그 노래를 들은 모 직원은 본인에게 하는 말씀이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웃음)
프레시안 : 후배 교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사명기 : 평생 살아오면서 모토가 ‘사랑하며, 공부하며’다. 교권은 이 두 가지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하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잘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남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 소양,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소질이나 역량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 시각으로 보면 학생들이 공부 못하는 것, 게으른 것, 청소 안하는 것 등 나쁜 것만 보게 된다. 긍정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 ‘이 학생은 공부는 못하지만 착해’, ‘이 아이는 노래는 잘한다’, ‘이 아이는 게임의 명수야’, ‘너는 의리 있어’, ‘너는 야구 잘해’ 라는 등 아이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이 보이게 된다. 교사는 공부하면서 사랑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나 자신도 행복하고 나로 말미암아 학생과 동료들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 이 내용은 퇴임사에서도 말씀드렸다.
마지막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요즈음 베스트셀러인 이서윤 저(著) ‘더 해빙(The Having)’이다. 부와 행운을 바라는 인식의 관점을 바꾸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의 계획은
사명기 : 앞으로의 시대는 언택트 시대다. 그동안 잘 못했던 이웃 섬기기와 자그마한 봉사를 배우고 싶다. 우선 당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담배꽁초 줍는 일을 하고 싶다.
대담/ 김규철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본부 편집국장
충북 강내면에서 태어난 사명기 원장은 충남고와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9월 단양 영춘중을 시작으로 충주여고, 충주예성여고, 금천고, 충북대사범대학 부설고, 진천농고, 진천고 등에서 평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충북도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를 거쳐 청운중과 흥덕고, 목도고에서 교감으로 근무했으며 충청북도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오송고 교장, 율량중 교장 등을 거쳐 2019년 3월 충북도교육청 국제교육원 원장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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