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발어사라는 것이 있다. 사실 우리말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일본어에도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00 선생님께서 훈시를 하실 때마다 “마! 시방부터……” 이렇게 시작하는 분이 계셨다. 학생들은 “와! ~~”하고 웃었지만 선생님께서는 꿋꿋하게 훈시를 마무리하시곤 했다. 말을 할 때 말머리에 시작하기 어색하니까 “에 ~~또.”, “마~~”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발어사인데 위에 언급한 것들은 모두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외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사람들의 말 중에 “사장님은 항상 말씀하실 때, 야 이 C8놈아! 하고 시작해요.”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실제로 우리 학교 한국어학과에서는 해마다 11월 첫째 주 수요일이면 외국인 한국어말하기대회를 개최했었는데, 그때 외국인 근로자가 한 말이다. 더 슬픈 것은 그 근로자는 “야 이 C8 놈아!”하는 것이 발어사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모두 말을 시작할 때 그렇게 시작하는 줄 알았다고 하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시작할 때 꼭 “저기요! 있잖아요.” 하고 시작한다. 한두 명이 그런다면 웃고 넘어가겠는데,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학생들의 애교 섞인 말투려니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필자는 다시 묻는다. “있긴 뭐가 있는데?”라고 하면 아이들은 멈칫거리며 다음 할 말을 잊는다. 어른한테 “저기요!”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거기에 ”있잖아요.“는 왜 붙이는 것일까?
과거에는 ‘무릇’, ‘대저’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한문에도 “凡物不得平則鳴(범물부득평즉명 : 무릇 만물이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우는 것이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부천지자 만물지역여 : 대저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다.)”와 같이 ‘범(凡), 부(夫)’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발어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제대로 된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행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른들이나 문장을 쓰는 경우에는 발어사를 써도 무방하지만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발어사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학생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발표 차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시간을 벌려는 목적으로 “음~~~”이나 “에~~~” 등의 발어사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사는 한두 번에 그쳐야지 말끝마다 이런 어사를 붙이면 자신이 없어 보인다.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발어사를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간결한 문체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원래 횡설수설이라는 말은 이색(묵은)이 정몽주(포은)의 시를 평할 때 썼던 말이다. 횡설수설이 무비적당(橫說竪說 無非適當 : 가로 세로 하는 말이 적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이라고 해서 바르게 잘 표현한 것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좋은 의도로 말했던 것인데, 현대에 와서 의미가 많이 바뀐 것이 바로 횡설수설이다. 이와 같이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말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발어사를 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문장을 이어갈 때마다 발어사를 연발하는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예전에 필자는 언어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한 적이 있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맞는 어휘를 사용해야 하며 지나친 외래어의 사용이나, 앞뒤 없는 말, 의미 없는 발어사의 남발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젊은 시절에 언어를 바르게 하는 습관은 평생 존경받을 수 있는 언어행위를 약속한다. 입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법에 맞고 논리 정연한 말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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