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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경과 능지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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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경과 능지처참

오늘은 사극과 관련된 한자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필자는 사극을 잘 안 본다. 왜냐하면 흥미위주로 연출하다 보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몽>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몽과 소서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주몽의 나이 18세 때 소서노는 32세의 아들 둘이 있는 과부였다. 주몽은 연타발(소서노의 아버지)의 경제적, 군사적 배경이 필요했고 연타발은 과부가 된 딸의 미래를 해결해 줄 사위가 필요했다. 주몽은 북부여에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서노와 사랑(?)에 빠져 결국은 고구려를 건국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북부여에서 유복자(유리왕)가 내려오니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하여 십제와 백제를 세우고 두 번째 건국을 한 대단한 여인이다. 엄청나게 차이 나는 나이도 그렇거니와 극 속의 대화에 나오는 용어들도 실제 의미와 다른 것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필자는 사극을 즐겨보지는 않는다. 『효경』에 보면 “세상에는 다섯 가지의 형벌이 삼천 종류나 있는데, 그 중 제일 죄질이 나쁜 것은 불효다.(五刑之屬三千 罪莫大於不孝)”라는 말이 있다. 그 형벌 중에 우리가 아는 것이 다 있는데, 실상 사극에서 보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쓰인 것이 많다. 우선 ‘오형(五刑)’이란 ‘궁형(宮刑 :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 대벽(大辟 : 목을 베는 형벌), 비형(剕刑 : 월형刖刑이라고도 한다.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 아킬레스건을 잘라 절름발이가 되게 하는 형벌), 의형(劓刑 : 코를 베는 형벌), 그리고 묵형(墨刑 : 경형黥刑이라고도 하는데 이마에 먹물로 죄를 써 넣는 형벌, 묵자가 이 형벌을 받았다는 설도 있음)’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이 중에 먼저 경을 치는 것에 관해 말해보기로 하자.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을 많이 사용했다. ‘경을 친다’는 것은 ‘경형에 처한다.’는 의미로 죄인처럼 “이마나 팔뚝에 먹물로 죄를 새겨 넣는다.”는 뜻이니, 전과자로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아니면 전과자가 될 놈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혹간에는 ‘타야경(打夜更)’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을 치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통금을 위반한 사람에게 경을 치게 한 뒤에 풀어주었다는 것인데, 의미의 확대가 심한 것으로 본다. 아니면 경을 치듯이 곤장을 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해석한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경을 친다’는 말은 이마에 먹물로 글씨를 새기는 형벌을 주겠다는 것으로 보는 것에 좋겠다. ‘친다’는 말은 ‘먹줄을 친다’고 할 때 쓰는 말과 동일한 뜻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엄청나게 잘못 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능지처참이다. 능지(陵遲)라는 형벌은 하루에 살점을 조금 씩 떼어내서 고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형벌이다. 조금 씩 살을 떼어내는 만큼 고통은 심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달(?) 정도 지나서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목을 끊어서 마무리하는 아주 잔인한 형벌이다. 처참(處斬)은 대역죄를 범한 죄인에게 과하던 극형으로 죄인을 죽인 뒤 머리, 몸, 팔, 다리를 잘라 토막을 내어 각지에 돌려 보이는 형벌이다. 그러니 능지처참을 하면 아주 천천히 죽여서 온 몸을 토막내어 각지에 돌려 보이는 형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극 속에서 ‘능지처참’하라고 하면 바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사약(賜藥임금이 내리는 독약으로 먹으면 죽은 것, 지금은 死藥(죽이는 약)으로 잘못 알고 있는 말)을 내릴 때도 다섯 가지 종류가 있었다. 바로 죽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먹으면 서서히 창자가 썩으면서 한참 후에 죽는 약까지 다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가장 악독한 죄인에게 서서히 죽는 약을 먹인다.

세상이 변하면서 언어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본래의 의미를 일부러 바꿔서는 안 된다. 사극은 그 시대를 반영해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그것을 통해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하면 역사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과거의 욕은 형벌과 관련된 것이 많았는데, 요즘의 욕은 성기와 관련된 것이 많다. 시대가 저질스러워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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