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봉쇄, 이동 제한, 생필품 부족, 매일 집계되는 사망자 통계, 바이러스 공격의 확산,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 코로나19로 인해 알게 된 세상은, 내가 겪은, 가장 전쟁에 가까운 경험이다. 이렇게 말하면 전쟁세대는 전후세대의 철없음이 야속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여기에 폭격과 살상의 공포까지 더해지면 그건 지옥이었겠다. 전쟁세대의 고통은 어디나 비슷할 텐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회에 따라 다르다.
노병의 뒷마당 행진
영국의 4월은 캡틴 톰(Captain Tom)의 100세 생일 잔치로 기쁘게 끝났다. 그는 2차대전 참전 장교였다. 버마(미얀마)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평범한 한 노인이 온 나라의 영웅이 된 4월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2020년 4월 6일, 딸과 손주들이 그의 이름으로 한 온라인 기부 사이트에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의 공공의료서비스) 의료진을 돕는 긴급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100세 생신을 기념해서 의미 있는 이벤트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거다. 모금 목표액은 1000파운드(약 150만 원)이고 기간은 생일날인 4월 30일까지로 정했다. 이 모금을 위해 99세 노인 캡틴 톰은 정복을 입고 가슴에 훈장을 단 채 보행기를 천천히 밀면서 뒷마당을 걷기 시작했다. 모금 기간 동안에 마당을 100번 왕복하겠다고 했다. 그를 BBC라디오에서 인터뷰했다. 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4월 16일에 100번째 마당 걷기가 끝났지만, 그는 계속 걸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모금에 동참했다.
그의 걷기는 생일날 아침에, 뒷마당에 도열한 젊고 건장한 장병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끝났다. 그날 공군은 2차대전 당시 전투기 2대로 집 상공에서 에어쇼를 해주었다. 그 장면은 모두 TV로 생중계되었다. 4월 30일 밤, 모금은 종료되었다. 24일 동안 150만명이 넘는 사람이 기부한 돈은 3280만 파운드(약 500억 원)였다.
앞마당에서의 승전 파티
5월이 되면서부터 우리 동네 사람들은 8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했다. 5월 8일은 유럽 승전의 날(Victory of Europe Day)이다. 독일이 항복하여 유럽에서 전쟁이 끝난 날이다. 어떤 집은 며칠 전부터 색색 리본을 집 앞에 길게 걸어두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것 중 하나는 골목의 발견이다. 3월 23일에 록다운(Lockdown, 도시 봉쇄)된 뒤로 우린 모두 집에 갇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웃의 문이 열렸다. 목요일 저녁 8시마다 다들 문밖에 나와서 NHS 의료진을 지지하는 박수를 보내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골목에 누가 사는지 그 집 고양이들 이름까지 안다.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려면 '공동의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이 봉쇄상태를 우리 모두 '함께' 경험하면서, 모종의 연대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칠 때는, 나도 외국인 이민자라는 사실을 잊고 그저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경험하고 있는 골목의 구성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이루어지는 이 의례가 좋았다.
'유럽 승전의 날'엔 하루 종일 골목이 시끄러웠다. 아침부터 각자 자기 집 대문 앞에 잔치 음식과 술을 갖다 놓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모여 있지만 거리 두기를 지키는 이런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록다운 이후에 이런 파티는 처음이다. 아니, 이렇게 골목 잔치를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다. 누군가 스피커를 밖에 설치하고 1940년대 음악을 틀었다. 캡틴 톰의 주제가가 된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이 무한 재생되었다.
남편(그는 영국인이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밖에 나갔다가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져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다시 나가지 않았다. 지난 3월부터 박수 치기에 동참한 나는 골목 구성원임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이게 '그들의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 자신을 다시 외국인 이민자의 자리에 서게 했다. 그들이 축하하는 '승전'의 경험이 나에게는 없다.
이기지도 끝내지도 못한 전쟁
우리는 그 전쟁에서 패전국의 식민지였다. 부당하게도 패전의 대가를 대신 치렀다. 아니, 여전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종전 후, 일본이 아닌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곧 우리끼리 '동족상잔'의 전쟁을 했다. (일본은 오히려 6·25 한국전쟁을 계기로 경제를 회복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2018년 봄, 남북정상회담 후 머지않아 전쟁이 끝날 것 같아서 설레고 기뻤다. 지금은 그때의 흥분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식민도 분단도 청산하지 못한 채 우리 안에서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많은 일들에서 편이 갈린다.
'유럽 승전의 날'을 축하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모두를 연대하게 하는 역사적 기억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자꾸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 게 없다면 너무 억울하다. 너무 가난해서 슬프다. 작년은 3·1운동 100주년이었고 올해는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라는데, 그것으로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을까? 그게 부족하다면 역사적인 날 중에서 찾을 수 있을까? 6월만 해도 기념할 날은 많다. 현충일, 6·10 민주항쟁, 6·15 공동선언, 6.25 전쟁. 나는 이 중에서 우리 모두를 연결시킬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6·25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단, 이게 연대의 경험이 되려면 전쟁이 끝나야 한다. 전쟁이 끝나는 날이 비로소 승전의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패자가 없는 승전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전쟁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의 삶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봄을 보내면서 캡틴 톰의 행진과 사람들의 동조가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서도 퇴역군인의 이런 행진이 가능할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노병의 실천 행위를 지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마을의 잔치도 부러웠다. 모두가 모여 축하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것에 샘이 났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2차대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잠깐 이야기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을 거다.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사람들이 모이는 계기가 된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곧 6·25 전쟁 70주년이다. 우리의 전쟁은 무한 반복되면서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이곳의 여름은 화창한데, 나는 그 햇살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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