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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헐크' 마크 러팔로, 전 지구적 환경 오염을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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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헐크' 마크 러팔로, 전 지구적 환경 오염을 고발하다

[함께 사는 길] 듀폰·SK 등 글로벌 화학기업의 거짓말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토드 헤인즈 감독, 2019)는 전 세계 150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Dupont)이 미 동부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커스버그라는 마을에서 일으킨 화학물질 사고를 롭 빌럿이라는 변호사가 1998년부터 20여 년간 파헤친 실화를 그리고 있다.

<다크 워터스> 그리고 <슬로우 데스>

1998년 파커스버그의 듀폰 공장 인근에서 가족 농장을 운영하던 테넌트가 신시내티에 있는 빌럿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다. 문제의 시작은 1980년대 그의 농장 일부 터를 듀폰에 매립지 용도로 매각한 후부터였다. 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생동식물이 죽어 나갔고, 냇가에선 물고기가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말 들어서 농장 소들은 내부 장기가 비대해지면서 죽기 시작했다.

2009년에 출간된 책 <슬로우 데스(Slow Death by Rubber Duck)>(릭 스미스·브루스 루리에 지음, 임지원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에 테넌트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소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피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어요. (중략) 그런데 바로 그 소의 고기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여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치 목에 무슨 덩어리가 콱 걸려서 빼낼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테넌트 부인의 증언이다. 실제로 테넌트 가족은 호흡기 질병과 다양한 종류의 암에 걸렸다.

테넌트 가족은 2001년 듀폰과 합의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암을 유발하는 독성 화학물질이 이 지역 식수원까지 유입됐다. 이 문제로 인해 2001년부터 3500여 명의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듀폰은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독성 화학물질은 기준치 이내라며 주민 질병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2017년 법원은 듀폰이 6억7500만 달러(약 8000억 원)를 보상하도록 판결했다.

롭 빌럿의 역할은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헐크로 알려진 마크 러팔로가 맡았다. 할리우드 밖에서 마크 러팔로는 환경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2011년 뉴욕에서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이 기본적인 인권'을 핵심 가치로 삼는 '워터 디펜스(Water Defense)'라는 NPO를 설립해 모 에너지 회사가 천연가스 채취 과정에서 발생시키는 수질오염 문제를 비판하는 활동을 벌였다. 러팔로는 2015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캠페인'을 벌이면서 태양열 트럭으로 운반한 피자를 모든 참가자에게 나눠준 일화도 유명하다.

러팔로는 201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이 롭 빌럿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보고 <다크 워터스> 제작 단계부터 참여해 토드 헤인즈 감독에게 각본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러팔로는 <다크 워터스>를 통해 "환경 혁명을 이끌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팔로는 2019년 11월 미 하원 과학위원회에서 <다크 워터스>에서 문제가 됐던 물질의 규제 필요성을 증언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환경단체 중 하나인 시에라 클럽에서는 이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를 '에코 헐크'라고 부른다.

화학물질 유출 기업을 법정에 세운 영화라고 하면 이전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 1998년 존 트라볼타 주연의 <시빌 액션(Civil Action)>(스티븐 자일리언 감독)과 2000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가 대표적이다.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다만 <시빌 액션>과 <에린 브로코비치>가 지역적 오염 문제를 다뤘다면, <다크 워터스>는 지구적 차원의 오염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슬로우 데스> 저자들은 "파커스버그 이야기는 지구의 어느 작은 마을이 지구 전체와 그 안의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의 오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최초의 환경재앙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 영화 <다크워터스> 포스터(왼쪽)와 원작 <슬로우 데스> 표지(오른쪽).


'어디에나 있어' 위험한 화학물질

"어디에나 있다(It’s everywhere)." 마치 범신론의 종교적 언명처럼 느껴지는 이 표현은 사실 듀폰이 자신들이 생산한 테플론(Teflon)을 홍보하면서 사용한 문구다. 듀폰이 이런 표현을 자신 있게 쓴 이유는 뭘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테플론이 어떤 물질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테플론은 듀폰이 1938년 만든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olytetrafluoroethylene, PTFE)이라는 혼합물질에 붙인 상표명이다. 1920년대 제너럴모터스와 듀폰이 새로운 냉매물질인 염화불화탄소(CFC)에 '프레온'이라는 상표를 붙인 것과 마찬가지다. 테플론은 듀폰이 제너럴모터스에 특허권이 있는 프레온가스를 대체할 목적으로 신규 냉매물질을 연구하다 우연히 나온 물질로서 웬만한 금속을 다 녹여 버리는 왕수(aqua regia)에서도 버텨냈다. 이런 성질 때문에 1943년 맨해튼프로젝트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담는 용기 보호막으로 사용됐다.

테플론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프랑스의 화학자가 이 물질을 활용해 1954년 눌어붙지 않은 프라이팬을 판매하면서부터다. 이 회사 이름이 테팔(Tefal)이다. 1950년대 유럽에서만 100만 개가 판매됐고, 미국에 진출해 백화점 상품목록에 오른 후 단 이틀 동안 200만 개가 판매된 기록도 있다고 한다. 또 방수와 통기성 기능으로 알려진 고어텍스도 테플론을 활용해 만든 상품이다. 이외에도 2차 대전시 탱크 방수제, 1970년대 미국인 우주복에 사용됐다. 현재는 식품 포장지, 얼룩 방지 카펫, 콘택트렌즈 등 일상생활 여러 방면에서 테플론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듀폰은 테플론이 ‘어디에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테플론 제조 시 사용되는 과불화옥탄산(perfluoro octanoic acid, PFOA)은 '어디에나 있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과불화옥탄산은 탄소 8개로 이루어진 분자구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C8'이라고도 불린다. 보건학 전문가인 임종한 인하대 교수는 지난 3월 18일 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PFOA는 우리 몸에서 잘 배출되지 않는 잔류성 유기화합물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과불화옥탄산에 대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발암 가능성 있는 물질'로 분류했고,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도 발암물질(Group 2B)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 듀폰 집단 소송에서 과정에서 역학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과학위원회는 장기간에 걸친 파커스버그 6만9800명 주민의 혈액 표본 분석 등을 통해 과불화옥탄산이 신장암, 고환암, 갑상샘 질환 등 6가지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과불화옥탄산과 같은 물질은 사람뿐만 아니라 생물에게도 축적되고 있다. <슬로우 데스>에 따르면, 북극곰 체내에서 과불화옥탄산과 같은 과불화화합물이 양이 2000년 이후 약 2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마크 러팔로가 "과불화옥탄산은 우리 몸에 축적돼 중증 질병과 암을 유발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지구상 99퍼센트 생물의 몸 안에 있고 우리도 감염됐다. 기업은 최소 40년 동안 이 약품을 유출해왔고 이를 숨겨왔다"라고 외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오염 공장에 지배당한 마을


미국을 상징하는 글로벌 대기업을 상대로 20년간의 싸움인 만큼 어려움이 상당했다.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듀폰은 원고 측에 사무실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서류를 보낸다. <슬로우 데스>에 따르면, 민사소송 동안 원고 측 변호인이 3년 동안 검토한 서류는 200쪽 도서 7500권(거의 작은 도서관 급)에 해당하는 150만 쪽에 이르렀다. 법률 수수료와 각종 비용만 약 2200만 달러(약 281억 원)가 들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같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빌럿에게 "당신 혼자서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을 상대하겠다고?"라면서 대기업을 상대로 돈 많이 드는 소송 중단을 종용했다. 법률사무소 슈퍼펀드 전문 변호사로서 '파트너 변호사'(공동 CEO)로 선정될 만큼 잘 나갔던 빌럿은 듀폰과의 소송 과정에서 네 번이나 감봉당해 자녀들 학비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분위기도 녹록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석유가 나왔고 가죽 공장, 조선소 등이 들어서면서 상업이 번성했다. 이때부터 이 지역 오피니언 리더 그룹은 웨스트버지니아를 친기업적인 환경으로 조성했다. <슬로우 데스> 저자들은 "친기업적인 환경은 환경보호와 노동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말을 감추고 있는 정치적인 암호"라고 꼬집었다. 친기업적인 환경이란 다른 말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데 행정기관과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파커스버그는 북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이다. 듀폰은 여기에 '워싱턴 워크'라는 대형 화학공장을 세우면서 2000여 가구에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했다. 듀폰 이름이 붙은 공공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비슷한 규모의 간접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슬로우 데스> 저자들은 파커스버그가 이런 '듀폰터(Duponter, 듀폰 사람들)'에 의해 장악돼 있어서 공장의 미래를 위협하는 변호인과 일부 주민들을 반역자로 인식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일부 등장하지만, 소송에 참여한 주민들은 듀폰터로 추정되는 주민들로부터 노골적인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영풍의 석포제련소 주변 마을 분위기가 그렇다. 낙동강 최상류에 있는 석포제련소는 크고 작은 오염물질을 낙동강으로 방류해 문제를 일으켰다. 납·카드뮴·비소 등 중금속에 의한 토양오염이 벌어졌지만, 석포제련소 측의 원상 복구는 지지부진하다. 더욱이 때를 가리지 않은 화학물질 성분 악취로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정작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환경단체의 현장 조사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한 종류의 산업에 종속된 지역의 특징이다. 다른 말로 오염 배출 공장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염 공장에 지배받는 주민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듀폰은 1951년부터 파커스버그 공장에서 테플론 생산에 과불화옥탄산을 사용했다. 1961년 듀폰은 과불화옥탄산에 노출된 쥐의 간이 비대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1년에는 과불화옥탄산을 다루던 8명의 여성 중 2명이 거의 비슷한 형태의 기형아를 출산했다. 듀폰은 두 여성을 공장 다른 부서로 이동시켰다. 이어 진행 중이던 인체 건강 연구 역시 중단하고 비밀에 부쳤다. 이러한 사실은 원고 측 변호인들이 듀폰의 150만 쪽 자료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글로벌 화학기업의 거짓말

글로벌 대기업의 거짓말은, 특히 화학기업의 거짓말은 거짓말의 매개가 화학물질이고 그 대상이 인간과 자연생태계라는 점에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듀폰은 연간 25조 원이라는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듀폰이 8000억 원 보상금은 지구적 차원으로 볼 때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가 듀폰의 배상금을 10억 달러는 예상했는데 이보다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듀폰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고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운동을 하고 있는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다크 워터스>는 단순히 미국 사례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 현실을 적용할 수 있는 실사판"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듀폰 관계자는 자신들이 인류 발전을 위해 안전한 화학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마치 옥시와 SK케미칼 등이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가습기살균제에 넣고도 인체에 안전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게 되었다. 배 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라고 지적했다. 거의 60여 년 전인 1962년에 한 말이다. 또 불임 등 수많은 질병은 태아기 때 독성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거의 모든 환경문제의 근원

<슬로우 데스> 저자들은 과거 '환경오염' 이미지가 검은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굴뚝이었다면 이제는 그것과 함께 독성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까지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 등 난스틱 제품 사용 자제, △플라스틱 용기 사용 자제, △되도록 천연 세제 사용 등을 실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도둑맞은 미래(Ourstolen Future)>(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공동 저자인 테오 콜본은 "호르몬 교란 현상은 기후위기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화석연료 중독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흔히 발견되는 대부분의 환경호르몬이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화학물질 전문가인 김신범 노동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화학물질 문제는 핵과 기후 위기와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인류 공동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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