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은 거대정당의 대결구도 강화로 어느 때보다도 박빙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많은 여론조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예견했다. 보수진영에서는 숨은 보수표의 존재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우세를 예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집권당의 전무후무한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의 승리라는 전망은 틀리지 않았지만 단독 180석 획득은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이번 선거결과 예측도 빗나갔다. 이번 선거 역시 집단지성은 위력을 발휘했고 유권자의 선택은 절묘하고 위대했다. 유권자는 선거로 제1야당을 심판함으로써 보수로 위장한 수구세력에 강력한 경고와 준엄한 평가를 내렸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선거를 관통하는 사회경제적 쟁점이나 정치적 이슈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라는 거대변수가 다른 이슈를 덮었기 때문이다. 선거 초반 코로나 사태는 민주당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 했고, 정권 심판론이 작동할 것 같았다. 총선거는 회고적 투표 성격의 중간평가론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 심판론의 대척에 야당 심판론이 자리 잡고 있었고 결과론적으로 야당 심판론이 선거 판세를 갈랐다.
코로나19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선거에서 유권자가 감춰진 여야의 정치적 쟁점과 경제적 이슈에 대해 어떠한 가중치를 두고 평가를 내릴지가 관심이었다. 코로나19 재난이 민주당과 통합당의 두 거대정당들의 약점들을 덮었으나 유권자는 잠복한 쟁점을 잊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통합당의 '폭망'에 가까운 참패는 박근혜 탄핵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부재한 수구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냉혹한 평가라고 해석해야 한다. 탄핵 이후 민주당의 대선과 지방선거의 승리의 연장에서 이번 선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승패 요인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선거 승패를 해석하느냐는 향후 정치세력들의 입지와 행보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조국 이슈와 청와대 관련 수사 의혹 등은 여당에게는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할 듯했고, 경제침체는 중간평가의 프레임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정치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좌파독재와 좌파사회주의 프레임을 동원한 시대착오적이며 냉전사고에 대해 근본적 수술을 요구한 것이다.
통합당의 공천 잡음,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의 한계, 막말 논란 등의 부정적 요인들도 있었으나 민주당 역시 선거기간 중에 여러 실책이 있었다. 이러한 선거공학적 요인 이외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선거를 통해 국민이 여야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정확한 독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극단적 불균형을 결과한 국민의 선택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그들의 압승이 조국 사태에서 보여준 편향된 진영의식과 친문세력에 대한 전적인 국민의 승인이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승리는 시대에 역행하는 냉전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심판과 탄핵 반대 세력에 대한 응징으로 가능했다.
보수세력은 극단적인 여야의 불균형을 선택한 주권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냉철하게 천착해야 한다. 극단적 주장과 구호를 일삼는 냉전세력과 선을 긋고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강경투쟁과 반대를 일삼는다면 대안세력으로 태어날 수 없다.
적대에 의지하여 촛불정신에 대한 맹목적 반감으로 일관하는 퇴행을 청산하고 합리적 중도와 보수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진보적 정책도 과감히 수용함으로써 중도층과 무당층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2년 후의 지방선거와 대선도 유권자의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2016년 20대 총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21대 총선 등 4번에 걸쳐 승리한 정치세력에게 또 다시 승리가 돌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특정세력의 독주는 정치의 건강성과 친화적이지 않다.
통합당이 해체에 가까운 인적쇄신과 가치의 재정립을 위한 발상의 대전환과 사고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보수의 입지는 한층 협소해 질 것이다. 21대 총선은 통합당과 보수진영에 치명적인 메시지를 던진 선거다. 민주주의에서의 선거의 의미와 주권자의 선택에 대한 평가·해석은 전적으로 통합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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